신문로

독한 한국인, 이대로 주저앉을 셈인가?

2023-11-24 11:42:28 게재
박세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상임이사

얼마 전 지인들과 어울려 북한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의외로 외국인 방문객이 많았다. 외국인과 대비해 한국인의 특성을 관찰해보았다. 한국인들 대부분이 독기를 품고 있음이 확연히 느껴졌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인은 독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경영의 귀재로 불린 미국의 잭 웰치도 한국인을 두고 이렇게 억척스러운 독종은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독종' 표현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유난히 자존심 센 성향도 포함한다. 이 같은 특성은 한국인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대외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한국인은 일제 식민 지배를 포함해 오랫동안 강대국의 등쌀에 시달려 온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약소국 백성으로서 온갖 서러움과 멸시를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강대국의 위세에 굴복하거나 기가 죽지 않았다. 상처 입은 자존심을 어루만지며 이를 악물고 오기를 키워왔다. 한국인은 자신을 극도로 무시하고 경멸했던 강대국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기를 갈망했다. 이는 타국 사람을 표현하는 언어 습관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특성

한국인은 강대국 사람들에게 종종 비하와 경멸의 의미가 담긴 '놈들' 자를 붙였다. 미국 놈들, 일본 놈들, 중국 놈들 하는 식이다. 반면 자신과 비슷하거나 약하다고 여기는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국력이 비슷하다고 여기는 나라 사람들에는 대체로 '애들'이라는 표현을 붙인다. 영국 애들, 프랑스 애들 하는 식이다. 과거에는 러시아 놈들이라고 했다가 한국이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다소 앞서자 러시아 애들로 표현이 바뀌었다.

우리보다 국력이 약한 나라에는 주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붙였다. 아프리카 사람들, 남미 사람들 하는 식이다. 아프리카 놈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시건방진 인간 취급했다.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특성은 한국이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출발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가장 빠르게 선진국에 진입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제분업 체계 속에서 선진국이 외면한 1차산업과 노동집약적 공업에 특화해 발전을 도모했다. 덕분에 중진국으로의 발전은 쉬웠으나 선진국으로의 도약에 실패했다. 한국은 처음부터 선진국이 아성을 구축하고 있는 자동차·전자·조선·철강 등 분야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한국의 도전은 국제 사회에서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은 한국의 기업을 '너희들 주제에 뭘 하겠다고 까부느냐'며 대놓고 경멸했다.

하지만 한국인은 이 모두를 감내하면서 세계인의 눈을 의심하도록 만든 놀라운 기적들을 연거푸 만들어냈다. 한때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의 전자업체들은 세계 시장을 한 손에 쥐고 흔들었던 절대지존이었다. 한국의 전자업체가 머지않아 일본을 추월하리라고 상상하기란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어 한국은 상상조차 불허했던 한계선을 넘어 일본 전자산업을 추월했다. 오랫동안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미래를 점치기 힘들 정도로 미미한 존재였다. 1980년대 초 중화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사업 포기 압력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던 현대자동차가 미국의 GM과 포드마저 제치고 글로벌 톱3에 진입했다. 세상을 만만하게 보기 시작한 한국인들은 그저 그런 일로 여겼지만 수십 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과였다. 한국은 기존 선진국들과 달리 식민지 수탈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식민지 수탈을 경험했던 개발도상국들 처지에서 롤 모델로 삼기 안성맞춤인 나라이다. 한국의 향후 행보는 여러모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신발 끈 동여매야 할 시기

문제는 한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다. 선진국 진입 이후 새로운 미래로 도약할 좌표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함께 꿀 수 있는 꿈이 뚜렷하지 않다. 청년 세대 다수가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면서 사회 전체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생산성은 정체와 퇴보를 반복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온 건데 이대로 주저앉을 수 있겠는가? 선진국이 되었다고 어깨를 으쓱대더니만 꼴 좋다! 라는 비아냥거림이 이웃 나라로부터 들려올지도 모른다. 한국인 특유의 독기를 되살리면서 다시 한번 신발 끈을 동여매야 할 시기이다.

박세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