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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은 인류가 최초로 발견한 상온 양자현상

2023-12-12 14:00:48 게재
박용섭 경희대 교수, 물리학

스마트폰 손잡이나 무선충전 배터리 등을 자석의 힘으로 부착할 수 있는 액세서리가 인기다. 일상에서도 냉장고 자석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까지 다양한 곳에서 자석이 사용된다. 그런데 자석의 밀고당기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자연에 존재하는 자석의 기록은 약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석은 영어로 마그넷(magnet)인데, 이는 오늘날 튀르키예의 마니사(Manisa) 지방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의 지명 마그네시아(Magnesia)에서 유래한 돌이라는 뜻이다.

인류는 수천년 동안 자석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이를 나침반 등으로 이용하기도 했지만 자석이라는 돌맹이가 가지는 힘의 근원에 대해서는 1820년대에 와서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이때쯤 덴마크의 외르스테드, 프랑스의 앙페르, 영국의 스터전 등이 전선에 전류를 흘리면 자기장이 만들어지고 전자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원자는 핵 주변을 전자가 공전하는 것이라는 모형에서 공전하는 전자의 움직임을 전류로 생각하면 원자는 작은 전자석이 된다. 이 원자자석의 NS극이 서로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하면 커다란 덩어리 자석이 되는 것이다.

전자 스핀이 각각의 원자를 자석으로 만들어

눈에 보이는 크기의 물질에는 어마어마한 개수의 원자가 있으므로 이들 원자자석의 집단적 성질을 연구하는 통계물리학의 발전이 덩어리 자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였다. 결국 원자자석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고 상호작용의 세기 역시 적당하면 원자자석은 몇가지 형태로 일정하게 정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경우에 따라 모두 한 방향으로 또는 번갈아가며 반대 방향으로 정렬하거나 정렬 방향 없이 무질서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원자자석이 잘 정렬되어 만들어진 큰 자석의 온도를 올리면 원자자석의 무질서도가 증가하면서 자성이 사라지는 상전이 현상도 통계물리학으로 아주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 특히 온도가 올라가면서 자석의 세기가 서서히 작아지다가 퀴리 온도라고 불리는 특정온도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퀴리-바이스 법칙도 통계물리적 이론 예측이 실험 결과와 완벽하게 잘 맞았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원자의 구조가 좀 더 자세히 밝혀지자 상황이 묘하게 전개됐다. 양자역학 파동방정식을 풀어서 밝힌 원자 내부의 전자는 핵 주위를 돌지 않고 핵 주변에 확률적으로 분포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처럼 전자가 핵 주위를 돌지 않으니 전류가 없고 작은 전자석으로 생각했던 원자자석은 그 근원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구나 팽이 같은 고전역학적 물체는 공전을 하거나 자전을 하면 각운동량이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적 미시입자인 전자는 공전이나 자전하지 않아도 각운동량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크기가 없는 전자는 자전할 수 없지만 고전역학의 자전에 해당하는 각운동량인 양자역학적 '스핀'이 존재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마치 전자의 질량이 전자 고유의 성질인 것처럼 스핀 역시 전자가 움직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전자의 순수한 양자역학적 특성이다. 결국 원자에 붙어 있는 전자의 각운동량을 모두 더해 얻은 총량을 원자자석의 세기로 볼 수 있게 됐다.

이로써 고전적 원자자석에서 출발한 퀴리-바이스 법칙을 비롯한 통계물리학의 결과들이 양자역학적 관점에서도 타당하다는 것이 증명됐다. 미시세계 전자의 순수한 양자역학적 존재인 스핀이 각각의 원자를 자석으로 만든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속물질 안의 전자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상온에서 자석이 되는 흔한 금속물질들인 철 니켈 코발트 등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전자가 스핀을 가진 작은 자석이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면 어떻게 규칙적인 방향으로 정렬되어 거시 세계의 자석이 될 수 있을까? 물리학자들은 또 고민에 빠졌다.

양자역학 정립으로 알게 된 자석의 성질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고체물질의 밴드구조 이론이 확립되어야 했다. 이를 통해 움직이는 전자 중에서 스핀의 방향이 서로 다른 전자가 존재하는데, 한 방향 스핀의 숫자가 더 많아서 거시세계의 자석이 된다는 사실을 확립했다. 오랜 논쟁과 복잡한 양자역학적 이론이 개발된 후의 일이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자석은 전자의 순수한 양자역학적 성질인 스핀이 양자역학적 이유로 한 방향으로 정렬한 결과다. 인류는 2500년 동안이나 자석을 눈앞에 두고도 이것이 상온에서 나타나는 거대 양자현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박용섭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