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부진했던 '아세안 5' 경제, 수출환경 개선돼 '꿈틀'

2024-01-05 10:38:50 게재

세계 교역량 증가 예상, 아세안경제에 긍정 역할 기대 … 미국과 중국의 경기 둔화 예고는 부정적 영향 우려

박번순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 10국 중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그리고 베트남 등 5국은 모두 수출주도형 경제를 추진하는 중규모 개방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 5국은 2022년 아세안 전체 GDP의 84%, 인구의 88%, 그리고 면적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경제적 성과가 아세안 전체의 경제성과를 결정짓는다 할 수 있다. 지난 12월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지난해 아세안의 성장률을 인도네시아 5.0%, 말레이시아 4.2%, 필리핀 5.7%, 태국 2.5%, 베트남 5.2% 등으로 추정 발표했다. 태국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성장률로 보이지만 이들이 개발도상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썩 훌륭한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외환경에 큰 영향받는 아세안 경제 = 지난해 대외환경의 변화는 아세안 5국의 경제성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세계경제 성장률은 3.0% 정도로 2022년 3.5%보다 낮아졌는데, 실제로 미국을 제외하면 선진국 시장은 경기 침체를 겪었다. 특히 아세안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된 중국경제는 수출부진과 부동산 부문의 구조조정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경기하락으로 아세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세계경기의 둔화는 교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로 인한 공급망의 훼손이 복원되면서 2022년에는 물량 기준으로 상품수출입이 4.1%와 2.6% 증가했으나 2023년에는 수출물량은 제자리걸음을 했고, 수입물량은 오히려 0.5%나 감소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세안의 수출 부진은 당연한 것이었다. 태국만은 수출이 경제성장에 플러스 효과를 미쳤지만, 태국의 성장률 자체가 낮았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경기둔화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계속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었는데 세계 전체의 인플레이션은 2023년 6.9%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미국이 고금리를 유지하면서 아세안의 외환 및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쳤다. '아세안 5'의 통화가치는 2023년 중반까지는 상당한 약세를 보였는데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기 시작한 하반기에는 다소 안정세를 찾았다.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통화가치는 연말이 되면 연초 수준으로 복귀했지만, 말레이시아의 링깃화와 베트남 동화는 각각 4.5% 및 2.6%만큼 가치가 하락했다.

1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국립기념물(MONAS)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가운데 곳곳에서 새해맞이 불꽃놀이가 벌이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외 경제환경의 악화로 수출의 기여가 낮아지면서 정부지출을 포함한 소비가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민간소비의 증가에는 관광부문의 회복도 한몫했는데 태국과 말레이시아에는 11월 말까지 2460만 명과 2610만 명의 외국인이 방문했고, 베트남에도 1120만 명이 방문했다. 이는 모두 2022년 같은 기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관광수입의 증가와 서비스 산업의 생산 및 고용의 호조가 민간소비를 지탱한 한 축이 되었다. 이에 비해 고금리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투자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특히 태국은 투자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여 경기 침체의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베트남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연초 6.0%에서 연말 4.5%로 정책금리를 인하했지만 다른 나라들은 모두 금리를 인상했다.

◆민간소비, 아세안 경제의 중심 역할 = 올해에도 아세안 5국의 경제성장에는 세계 전체의 경제 상황, 금융시장 여건, 그리고 무역과 산업 환경 등 대외여건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성장률은 올해 각각 1.8% 및 4.5%로 지난해의 2.4% 및 5.2%에 비해 낮아질 전망이다. 미국 경제는 장기적 고금리의 누적효과로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것이고, 중국에서도 부동산 부문의 문제가 완전히 정리될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중요한 시장인 미국의 경기둔화, 양국의 무역 갈등 미해소 등은 중국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중국 경제의 둔화는 아세안의 대중국 자원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신 미국이 경기둔화를 방지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고 인플레이션이 더 진정된다면 중국이나 아세안의 금융정책 운용 공간이 다소 넓어질 가능성이 크다.

무역과 산업 환경은 다소 개선될 전망이다. 세계의 교역량은 지난해에는 제자리걸음을 했으나 올해는 경제성장률의 둔화에도 불구하고 기저효과와 재고 감소 효과로 인해 상품수출입이 물량기준으로 각각 3.1%와 3.2% 증가할 전망이다. 무역량의 증가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세안 경제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한편 지난해 아세안 경제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민간소비는 올해도 여전히 의미있는 역할을 하겠지만 성장의 기여도는 다소 낮아질 것이다. 예컨대 태국의 가계 부채는 2023년 상반기 현재 GDP의 91.5%이고 말레이시아는 67.5%에 이른다. 정부 채무도 태국은 54%, 말레이시아는 63.3%이다. 또한, 지난해 관광객 유입이 급증한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의 경우 관광객 유입은 증가하겠지만 증가속도는 완만해질 전망이다. 투자의 경우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기업 채무가 GDP의 80% 이상인 상태에서 고금리가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신 중국의 교역환경이 악화되면서 다국적기업과 중국기업이 아세안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들을 얼마나 유치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인니 지난해 수준, 말레이 기대 = 아세안 최대 경제국인 인도네시아의 올해 성장률은 지난해와 같은 5.0%로 전망된다. 자원가격 하락세가 부정적인 효과를 미치겠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채무비율이 낮은 인도네시아는 인프라 투자 등 정부지출을 늘리면서 성장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것이다. 경공업 부문의 수출수요가 증가하기는 어렵지만, 인플레이션이 진정되어 루피아도 안정될 가능성이 있어 금리 인하도 가능할 것이다. 금리가 인하된다면 투자도 더 살아날 것이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물가수준에서 견실한 소비가 경제를 지탱할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는 지난해보다 더 높은 4.6% 정도 성장할 전망이다. 팜오일 등 자원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난해 부진했던 전기전자 부문의 수출이 다소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플레이션은 2%대의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며, 기업과 가계의 높은 부채비율에도 불구하고 전기전자 부문에 외국인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관광객 유입이 견실하게 증가할 것으로 보여 소비 역시 중요하다. 그렇지만 전기전자 부문의 수출이 호황기 때보다는 부진할 것으로 완전한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태국 경기 부진, 베트남 호조 = 태국은 지난 20여년 동안 군부의 강력한 정치 개입으로 아세안의 지진아가 되었다. 코로나 이후에도 기저효과조차도 살리지 못했으며, 지난해에도 2.5%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경제는 올해에도 아세안 주요국 중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인데 이는 태국이 제조업을 다각화했으나 경쟁력이 높은 산업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태국의 가계나 기업부채가 아세안에서는 가장 높아 소비 확대에도 한계가 있다. 한때 아세안에서 압도적으로 중요한 관광국이었으나 베트남, 캄보디아 등 다수의 경쟁국이 생긴 탓에 관광 서비스 산업의 성장도 한계가 있다.

필리핀 역시 수출이나 투자보다는 소비 주도의 경제이다. 이런 추세는 올해도 계속되어 지난해의 5.7%보다 더 높은 6.2%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다. 제조업은 IC 반도체 중심으로 다소 회복되겠지만 수출비중이 낮아, 내수가 여전히 중요하다. 내수의 한 부문을 지탱하는 IT/BPO 부문이 호조를 보일 전망이고, 또 코로나 이후 감소했던 해외 필리핀 노동자의 송금도 증가하여 아세안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달성할 전망이다.

아세안의 제조업 허브로 코로나 시기에도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했던 베트남은 지난해에는 예외적으로 경기 침체를 겪었다. 중국의 경기둔화에 따른 해외수요의 부진, 정치적으로 부정부패에 단속 등도 정부나 실업계에 영향을 미쳤다. 올해 베트남의 성장률은 지난해 5.2%보다 더 높은 6.0%를 기록할 전망이다. 정부는 인프라 부문에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고, 수출환경 개선도 성장에 기여할 전망이다. 지난해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베트남은 금리를 인하했는데, 이는 올해의 경기진작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 부진했던 외국인투자도 점차 회복되어 성장회복에 기여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