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변칙 승계’ 길 터준 법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무죄”

2024-02-06 00:00:00 게재

“합병목적·과정 모두 적법”

국정농단 대법원 판결과 배치

항소심서도 논란 계속될 듯

1심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경영권 부당승계’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단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회장 지배력 강화를 위해 부당하게 추진되지 않았다고 본데 따른다. 이미 성장 정체에 있던 물산이 위기 극복 방안으로 모직 경영진과 협의를 거쳐 양사가 직접 합병을 추진했고, 합병은 물산과 물산 주주들에게 오히려 이익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1심은 ‘국정농단’ 대법원 판결과 달리 해석했다. 대법원은 2019년 합병을 이 회장을 위한 승계작업으로 보고 뇌물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1심은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했을 뿐 불법성을 따진 건 아니라면서 승계 과정에 불법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항소심에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5-2부(박정제 부장판사)는 자본시장법 위반 등 19개 혐의에 대한 이 회장의 선고공판에서 “이 사건 합병이 승계작업을 위한 목적만으로 이뤄졌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등 삼성전자 전현직 임직원과 삼정회계법인 관계자 등 13명 모두도 무죄를 받았다.

이 회장이 19개 혐의 모두 무죄를 받은 것은 무엇보다 재판부가 ‘프로젝트G’에 대한 검찰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를 ‘약탈적 불법 합병계획을 담은 승계계획안’이라고 봤지만, 재판부는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보고서”라고 판단했다. “계열사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효율적인 사업 조정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업무”라는 것이다. 당시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 사망시 막대한 상속세 납부, 순환출자 등 외부 규제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합병은 물산의 사업적 목적”이라고 봐야 해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회장이 19개 혐의 중 16개 혐의 무죄를 받은 자본시장법(제178조 등) 위반도 재판부가 검찰과 달리 판단한데 따른다. 재판부는 이 부분 혐의 모두에 대해 “부정한 수단을 사용한 것이라 볼 수 없다”, “검찰의 주장은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증거가 부족하다” 등의 이유로 검찰측 공소사실을 배척했다. 그러면서 △엘리엇의 합병 반대가 있었지만 사실대로 공시 △한화투자증권 보고서와 여론 등도 왜곡 없고 △KCC에 물산 자사주 매각에 ‘부정한 수단’이 사용되지 않았다고 했다. 나아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추진에 대해서도 “부정한 수단이 사용됐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2개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2014회계연도 재무제표를 거짓 공시했다고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콜옵션이 주주와 회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실질적 권리가 되기 전까지는 공시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2015회계연도 재무제표에 대해 검찰은 종속회사였던 에피스를 관계사로 변경한 것은 매출부풀리기의 분식회계라고 했지만, 재판부는 분식회계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종속회사는 지분가치가 장부가액(3000억원)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관계사는 공정가치(4조8000억원)로 인식한다.

이같은 1심 판단에 참여연대가 즉각 반발하며 검찰에 항소를 주문했다. 참여연대는 “이재용 회장과 삼성 미전실은 이 부회장이 정당한 댓가 없이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했다”면서 “그리고 마치 합병이 오로지 삼성물산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홍보했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심지어 이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뇌물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만큼 이번 1심 판결은 국정농단 대법원 판결에도 배치되는 결과”라며 “그동안 재벌들은 수많은 위법과 편법을 저질러도 국가경제의 발전과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징역을 회피해 왔다. 이로 인해 일반 국민들은 사법부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불공정한 재판을 하고 있다는 불신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날 선고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이 회장 등 사건 1심 판결에 대해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을 면밀하게 검토·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항소 기한은 오는 13일까지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