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의 한반도 워치

다시 돌아온 ‘한반도 전쟁위기’

2024-02-08 13:00:02 게재

2024년 갑진년 구정이다. 새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새해 덕담과 함께 혹시나 있을 법한 액운의 기미를 미리 짚고 피해 갈 수를 찾는 것 역시 필요한 새해 행사다. 올해 모두가 주의할 액운 1호는 한반도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다.

올해 상황은 30년 전인 1994년 6월 ‘한반도 전쟁 위기’가 대두되었던 흐름과 비슷하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는 정말 심각했다. 한국발 외신에 불이 났다. 한국 거류 중인 외국인들과 정보가 빠른 일부 한국인들의 ‘한국 빠져나가기’ 항공 티케팅이 마비될 정도였다. 눈치 빠른 강남 일대에서는 라면 참치 캔 촛불 방독면이 동났다.

있을 법한 조짐으로서의 ‘전쟁위기’를 과장할 뜻은 전혀 없다. 객관적으로 보아 1994년에 비해 2024년의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은 훨씬 낮다. 1994년 6월 당시에는 북측이 체제의 존망을 걸고 결사적인 상태였고 미국도 전쟁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

현재의 북측은 전쟁에 존망을 걸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북측이 1994년에 이어 올해 벽두부터 제2의 전쟁 위기를 외치는 강경노선으로 전환하게 된 공통의 이유가 있다. 이 점을 잘 살펴보자.

북, 소련 붕괴 후 국체보존으로 중심이동

‘하나의 조선’ 원칙 아래의 민족 노선, 통일 노선을 파기하겠다는 최근 김정은의 발언은 한국의 남북 관계 연구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많은 이들이 북측 체제의 성격상 선대 지도자들이 천명해 온 노선을 파기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달리 볼 수 있다. 이미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북측의 국가의지는 통일보다는 ‘조선’이라는 국체의 보존 쪽으로 중심이 옮겨갔다. 민족과 통일 이전에 자신의 국체 보존과 존속이 최우선이다. 그랬기에 1991년 북측은 유엔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에 동의했다. 그렇게 보면 김정은의 ‘두 국가 신노선’은 선대 노선으로부터의 일탈이 아니라 오히려 ‘조선’이라는 국가의지의 일관된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코리아 두 국가 노선’은 1991년 이미 시작된 셈이다. 한국은 1989년 노태우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먼저 신호를 보냈다. 남북이 국가로 상호인정하고 평화공존하자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냉전 종식, 다른 한편으로 1987년 한국 민주화 압력의 결과였다.

노련한 김일성이 과감하게 이에 응했다. 변화된 세계정세를 인정하고 남북 유엔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에 동의했다. 여러 기록을 보면 일단 변화를 인정한 후 그의 대응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남북이 그렇게 합의했던 상호인정의 새로운 노선을 남측은 ‘남북연합’이라 했고, 북측은 ‘낮은 단계의 연방’이라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당장 한국과 미국의 대북 강경파가 당장 이 합의를 막기 위해 아주 강경하게 ‘북한붕괴론’을 밀어붙였다. 결국 1994년 5~6월 ‘한반도 전쟁위기’가 터졌다. 백악관에 워-타워가 설치됐고 괌과 오키나와의 미군 전폭기는 엔진을 켜두었으며 한국 여러 곳에서 생필품이 동났다. 전쟁 발발을 막았던 것은 1996년 6월 15~16일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의 전격 북한 방문을 통한 김일성과의 긴급 회담이었다.

그러나 남북합의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게 된 데는 내적 취약성도 있다. 서로를 인정한다고 하면서 상대를 국가로 인정하는 실체적 조치가 없었다. 기본합의서에 대한 법적 비준도 없었고, 상호 대표부를 교환하지도 않았다. 아무런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없었으니 반대 세력의 집요한 공격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보면 서로의 호칭부터 애매하다. ‘한국’과 ‘조선’이라는 양국의 엄연한 국호 대신 ‘남과 북’이라 칭한다. ‘정명(正名)’이 없다. 그 애매한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했다. 유명한 구절이다. 매끄러운 표현이 부끄러운 현실을 가린다. 마치 양측을 나라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양쪽이 하나로 되는 순수한 통일 열망의 불길인 것처럼 덮는다. 겉으로는 인정한다면서 속으로는 인정하지 못한다. 국가로서 인정하지도 못하면서 무슨 ‘연합’이고 ‘연방’인가. 밥도 안 지어놓고 비빕밥 볶음밥 따지는 격이다.

남북 현실 실체적으로 인정하는 게 핵심

솔직해지자. 남과 북 모두에 이런 모순된 두 마음이 있다. 겉으로는 인정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인정하지 못한다. ‘겉 다르고 속 다른’ 두 마음을 확실히 털어내는 거대한 일보가 필요하다. 그래야 서로를 ‘한국’과 ‘조선’이라는 영토와 주권과 국민을 보유한 엄연한 국가로서 상호 인정하고 법과 제도를 이에 맞게 바꾸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의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이미 절대다수가 ‘평화로운 양국 공존’을 지지한다. 만약 한다면 북쪽도 비슷할 것이다.

6.25전쟁을 치르고 70년이 넘었는데 아직 그 전쟁을 못 끝내고 있다. 평화를 가장 바라면서 가장 폭력적인 현실을 우리는 살고 있다. 진심으로 평화로운 공존을 바라면 두 국가의 현실을 실체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 점이 핵심이다. 그 방향으로 갈 때 평화가 있고, 그 방향에서 멀어질 때 전쟁 위기가 온다. 반복적으로 확인한 사실이다. 1991년 기본합의서가 1994년 전쟁 위기로 뒤집어질 때 그랬고, 2018년 남북미 합의가 올해의 ‘전쟁 위기 버전2’로 뒤집어진 현실이 그렇다.

엄밀히 보자. 애초부터 북핵이 전쟁위기의 원인이 아니었다. 북을 인정하지 않고 붕괴시키려 했기 때문에 북이 끝내 핵무장을 하게 되었다. 30년 북핵 개발의 역사가 그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북측 스스로 이 점을 분명히 밝혔다. 2018년 김정은은 트럼프를 만나 북미수교를 하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1992년에는 김정일이 특사를 미국으로 보내 북을 인정하면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하고 핵개발 의지가 없음을 확실히 보여주겠다고 했다. 당시 북미 그리고 한조수교가 이루어져 조선의 국가적 지위가 안정되었다면 북핵은 시초 단계에서 막을 수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도 바라던 바였다.

전쟁위기 되풀이되는 이유 제대로 짚어야

2018년 남북미간 합의의 핵심은 북미수교 그리고 코리아 두 국가체제의 현실화였다. 실마리는 풀었으나 실타래를 마저 풀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30년 만에 ‘전쟁위기’가 다시금 대두되었다. 무엇이 재앙의 근원인지, 이제 우리는 반복적 교훈을 통해 잘 알게 되었다.

지난 대선에서 남북공존 대신 북한붕괴를 내세운 윤석열정부가 들어서게 된 가장 큰 원인은 2018년의 남북합의를 이어가지 못했던 문재인정부의 무능과 무정견 탓이었다. 2020년 4.15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후에 문재인정부는 왜 2018년의 남북합의를 국회 비준하지 않았던가? 핵심 문제를 회피하고 지엽적인 문제에 골몰하다 결국 허망하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문제를 알면 결국 풀 수 있다. 남북 모두가 겉과 속 한결같이 상대를 국가로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반복적으로 돌아오는 재앙을 피할 수 있다. 양국 관계가 정상화되더라도 그 관계가 당장 100% 정상이 될 수 없다. 긴 시간 서로 인내와 관용을 가지고 상대의 입장을 존중해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국의 현 정부가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고 해서 이 길이 영영 닫혀버린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하나씩 그 방향으로 준비해 가면 결국 그렇게 된다.

국제정세도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중국이 자국 문제에서는 ‘하나의 중국’ 노선을 고수하지만, 한반도 문제에서는 단연코 두 국가체제를 선호한다. 러시아도 그렇다. 미국도 당장 다음 대선의 결과에 따라 다시금 코리아 두 국가체제에 우호적인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 문제를 정확히 알면 액운을 행운으로 바꿀 수 있다.

경희대 교수 ‘붕새의 날개,문명의 진로’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