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세포 속 세계 탐구할 현대판 현미경 ‘염기서열해독기법’

2024-02-13 00:00:00 게재

생물의 기반이 되는 DNA RNA 단백질 같은 생체분자에 담긴 정보를 해독하는 기법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분자들은 세포라는 화학공장이 저마다 적합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복잡하게 작동한다. 이들의 정보를 해독해내, 맛과 향이 더 좋은 과일을 맺는 식물, 감염병에 더 잘 저항하는 동물, 또는 유전병을 앓는 사람 같이 차별점을 띠는 생물이 지닌 특징을 규명하는 것이 주된 목표다. 작디 작은 생체분자에 담긴 정보를 더 명료하게 해독하는 현대판 현미경을 활용해 생물이라는 복잡한 현상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생체분자가 지닌 주된 특징은 비유하자면 마치 실에 꿰인 구슬처럼 한 줄로 이어져있다는 것이다. 구슬의 색과 종류는 저마다 다르다. DNA와 RNA에는 네 가지 색을 띠는 구슬이 꿰여져 있고, 단백질에는 스무 가지 색을 띠는 구슬이 꿰여있는 식이다. 색과 순서가 바뀌면 분자의 기능도 바뀐다. 그러니 이 실에 꿰인 서로 다른 색의 구슬이 어떤 색을 띠는지, 어떤 순서로 연결돼 있는지 해독해 그 기능을 이해할 수 있다.

DNA나 RNA에 꿰여있는 구슬 하나하나를 염기라고 부르며, 염기의 종류와 서열을 해독한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기법을 염기서열해독기법, 또는 시퀀싱(sequencing)기법이라 부른다. 이 정보를 비교분석하면 생물이 서로 다른 이유를 찾아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다만 이 서열정보를 해독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구슬의 크기가 워낙 작아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길이는 또 무척이나 길어 한번에 그 색과 순서를 읽어내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RNA는 한 분자에 수천개의 구슬이 엮여있는 형태이며 한 세포 안에 수천 가짓수 이상 존재한다. DNA는 사람이라면 염색체 하나에 평균 1억3000만개의 구슬이 엮여 있는 수준이다.

한번에 수만개 서열정보 읽을 수 있어

이 긴 분자에 담긴 서열정보를 읽어내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화학적 광학적 기법이 총동원된다.

문제는 현존하는 어떠한 기술로도 한번에 1억개에 달하는 정보를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장 널리 쓰이는 해독 기법은 주로 수백개 정도 되는 길이의 분자만 해독할 수 있어 그보다 긴 DNA나 RNA는 조각을 내 분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는 최근 염기서열해독기법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상당 부분 해결되고 있다. 이는 한번에 읽어내는 길이가 훨씬 길어졌다는 의미에서 롱리드(long-read) 시퀀싱기법이라 불린다. 이 고도화된 염기서열해독기법은 몇몇 외국 업체에서 제공하고 있다. 한 업체에서는 한번에 수만개의 서열정보를 매우 정확하게 읽어내는 기법을, 다른 업체에서는 최대 수백만개에 이르는 서열정보를 충분한 정확도로 읽어내는 기법을 제공한다.

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 기법으로는 탐험하기 어려웠던 복잡한 형태의 생체분자 다양성에 대한 정보를 대량으로 확보하는 데 널리 쓰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분자 다양성으로는 변이정보를 꼽을 수 있다.

흔히 돌연변이로 널리 알려진 변이는 생물 사이에서 나타나는 DNA의 차이를 가리킨다. 이러한 DNA에 존재하는 변이 중 일부는 생물이 서로 다른 생김새와 특징을 지니도록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해 정확하게 판독해야 한다. 이전 기술로는 대개 생물마다 DNA 염기 1개 정도가 다른 색깔의 구슬로 바뀐 수준만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보다 훨씬 큰 수십개 이상의 구슬이 통째로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경우, 아예 다른 서열로 뒤바뀌는 경우 등 어떠한 변이도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러한 기술 발전 덕분에 생산성, 맛과 향, 감염병 저항성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커다란 변이들이 여러 작물에서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인간집단에 대한 변이정보도 빠르게 수집

이처럼 염기서열해독기법이 발전함에 따라 세포 속 더 작은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기회가 늘고 있다. 마치 현미경이 개발되며 세포나 미생물처럼 작은 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현재는 인구집단이 지니고 있는 변이에 대한 정보도 전례없는 높은 품질로, 아주 빠르게 수집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47명이 지닌 거의 모든 변이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고품질 DNA 지도 정보가 공개되기도 했다. 아쉽게도 한국인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DNA 정보는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변이를 찾아내는 연구 등에 널리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유전병의 원인이 해결되기를,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먹거리 생물이 다양하게 확보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 준 충남대 교수 생명시스템과학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