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혁신 막는 디지털 플랫폼 정책

2024-02-16 13:00:06 게재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외 플랫폼 기업에 대한 강력한 사전규제를 담고 있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가칭) 추진을 발표했으나 최근 원점에서 법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유가 법안의 부적절성에 대한 자각이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 미국의 강력한 통상마찰 우려 제기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은 유럽에서 올 3월 시행 예정인 ‘디지털시장법’(DMA)을 벤치마킹한 것인데 이러한 강력한 규제가 우리에게 필요한지, 그리고 우리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의문이다. 오히려 혁신서비스 등장을 막고 국내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벤처·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억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소비자 효용을 저해하게 될까 우려스럽다.

미국의 강력한 반발로 재검토 밝힌 공정거래위원회

국내 디지털플랫폼시장은 검색 전자상거래(E-commerce) 동영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서비스별로 각각 차이가 있지만 중국 미국 유럽 등과는 다른 양상이다. 중국은 해외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으며 강력한 자국 기업 보호주의를 꾀했다. 이는 충분한 내수 규모와 사회주의 경제를 표방하는 중국이나 가능한 모델이다. 미국은 혁신기술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자국 기업이 글로벌 대세다. 반면 유럽은 미국의 거대 플랫폼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므로 이를 견제하기 위해 강력한 규제법을 시행한다. 즉 DMA는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로 인한 신규 혁신기업의 진입 곤란, 반(反)멀티호밍, 지배적 서비스에 대한 고착(Lock-in) 등이 전제된 규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상황은 유럽 시장과 다르다. 우리나라는 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 등 국내기업이 구글 페이스북(인스타그램) 틱톡 등 해외 거대 플랫폼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과 자국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거의 유일한 경우다. 특정 기업이 지배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3~5개 기업이 상호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혁신기업(당근마켓 여기어때 빗썸 등)이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특성을 간과한 채 해외 거대 플랫폼 기업의 견제가 주된 목적인 유럽의 DMA식 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국가 경제에서 디지털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해지고 있는 만큼 그에 부합하는 안정적 정책추진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디지털 정책은 일관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채 오락가락하며 시장 혼란만 부추겼다. 2017년에는 플랫폼 서비스를 기간통신산업이나 방송산업처럼 규제하려는 일명 ‘뉴노멀법’이, 2020년과 2021년에는 플랫폼 산업을 ‘대규모유통사업자’처럼 규제하려는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이 업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범국가 차원의 예측 가능한 플랫폼 정책 시행돼야

2023년은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자율규제’ 의지를 보여온 정부의 정책 전환으로 자율정책 추진의 시발점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또다시 정부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가칭)이라는 초강수 규제법안을 추진하겠다고 함으로써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우리 플랫폼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중국이나 미국이 안정적 디지털 플랫폼 육성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사뭇 대비된다.

중국은 디지털 경제가 ‘경제성장의 주요 엔진’임을 강조하면서 범국가 차원의 중장기 ‘디지털 중국’ 추진전략을 시행하고 있고, 이에 맞서 미국은 첨단기술 산업 육성을 위한 ‘미국혁신경쟁법’(USICA)을 통과시키고, 2500억달러 규모 예산을 투입해 국가 차원의 디지털전략을 추진 중이다.

경제적 포퓰리즘 또는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압력에 영향을 받은 비효율적이며 경쟁이나 혁신을 제한할 수 있는 디지털 정책 추진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백년대계는 아니더라도 10년이라도 예측 가능한 범국가 차원 디지털 플랫폼 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김현경 서울과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