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없는 지구, 자연에서 배운다

2024-02-26 13:00:02 게재

지구는 38억년 가동한 실험실…자연 모방하는 혁신이 산업 변화의 핵심

인터페이스사의 카펫타일 엔트로피 출처 인터페이스사 프레스룸
1974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탄생한 인터페이스는 세계 최초로 바닥재 시장에 ‘카펫타일’을 선보인 기업이다. 실내공간 전체에 하나의 카펫을 설치하는 게 아니라 카펫을 가로·세로 50㎝ 정사각형 타일로 이어 붙이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연간 수십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는 인터페이스사의 고(故) 레이 엔더슨 전 회장은 대표제품 ‘엔트로피’를 만든 사연을 ‘지구환경보고서’ 25주년 특집호 ‘탄소 경제의 혁명’(2008)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인터페이스의 수석 디자이너 데이비드 오우키는 “자연이 바닥 커버링(지표면 덮기)을 어떻게 설계하는지 알아보라”며 디자인팀을 숲속으로 보냈다. 오우키는 다음과 같은 지침을 내렸다. “나뭇잎 디자인을 가지고 돌아오면 안됩니다. 자연의 디자인 원칙을 찾아오세요.”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카펫

디자인팀은 숲속과 시냇물 바닥을 관찰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자연은 완벽한 혼돈 속에 있고 똑같은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뭇잎도 나뭇가지도 돌도 똑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제각기 다른 그 혼돈 속에는 아름답고 유쾌한 질서가 있었다.

디자인팀은 스튜디오로 돌아와 어떤 타일도 같은 디자인을 가지지 않는 카펫을 설계했다. 인터페이스는 이 제품을 ‘엔트로피’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이 제품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엔트로피의 장점은 놀라웠다. 쓰레기도 거의 나오지 않았고 품질도 훌륭했다. 어떤 타일도 똑같지 않다는 다양성이 시공상 하자를 없애주었다. 시공자는 문양을 맞추려고 기다릴 필요 없이 타일이 도착하는대로 박스에서 꺼내 나뭇잎을 펴듯이 무작위로 펼치기만 하면 바닥이 완성됐다. 문양을 맞추기 위해 창고에 보관해야 했던 엄청난 양의 재고도 사라졌다.

카펫 사용자는 카펫 전체를 교환하던 금전적 부담이 없어졌다. 손상된 타일만 부분적으로 교체하면 됐다. 무엇보다 엔트로피의 가장 큰 장점은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인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앤더슨 회장은 1994년 미국의 환경운동가 폴 호켄이 쓴 ‘비즈니스의 생태학’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카펫은 쉽게 폐기하기가 어렵다. 매년 엄청난 양의 기름을 태워야 했다. 그는 인터페이스가 얼마나 자연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고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모든 방식을 바꿨다.

엔트로피는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지 않는 공장에서 재활용물질로 만들어진다. 인터페이스는 1994년부터 환경보호를 기업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진정한 의미의 자원순환 모델을 구축했다. 카펫타일 소재를 수집하고 생산하는 모든 과정이 환경에 그 어떤 악영향도 끼치지 않도록 재조정됐다.

2016년부터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0으로 줄이자는 ‘미션 제로’ 목표를 ‘기후 되돌리기(Climate Takeback)’로 끌어올렸다. 전세계 제조공장의 에너지는 89%가 재생가능에너지다. 카펫타일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도 89%까지 줄였다. 바다에 버려지는 폐어망을 재활용하고 폐어망 수집처인 동남아시아 지역경제 활성화를 돕는다.

카펫타일을 바닥에 접착할 때 발생하는 유해물질을 줄이기 위해 접착하지 않아도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 소재를 개발했다. 다 쓴 카펫타일은 회수해 다시 카펫타일 소재로 재활용한다. 1996년 이후 현재까지 이 회사 모든 제품의 제조 과정에서 배출된 누적 이산화탄소량은 0이다.

리사이클링을 넘어 업사이클링으로

뉴질랜드의 에코커버사(EcoCover Limited)는 농업용 멀칭비닐을 대체할 수 있는 유기물 매트를 개발했다. 이 매트는 쓰레기매립장으로 갈 폐지들을 재활용해 실직자들이 생산한다. 유기물 매트는 토양의 생산성을 높이고 토양 습도를 유지해 물 사용량을 줄여준다. 이 매트는 화학비료와 살충제 등 흙과 물을 오염시키는 화학물질 사용량을 줄여준다. 잡초는 줄어들고 농작물 생산량은 늘어난다. 토양에는 유기물과 영양분이 풍부하게 공급된다. 이는 폐기물의 단순한 리사이클링을 넘어 생산적인 토양을 만드는 업사이클링이다.

디자이너 토시 후카야(Toshi Fukaya)가 발명한 ‘바이오미미크리 핀(BIOMIMICRY PIN, 생체모방 핀)’은 실리콘 압정이다. 기존의 압정은 상자에서 꺼내거나 벽에 박을 때 손이 찔리기 일쑤였다. 실리콘 압정은 고양이 발톱에서 영감을 받았다. 발톱을 세웠다 넣었다 하는 고양이처럼 핀 부분을 부드러운 실리콘 안에 넣어서 사용할 때만 노출되도록 만들었다.

‘벨크로 테이프’ 일명 ‘찍찍이’도 생체모방 아이디어다. 1941년 스위스 전기기술자 조지 드 메스트랄(George de Mestral)이 옷에 잔뜩 붙은 도꼬마리 열매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갈고리 모양의 끝부분이 섬유 올에 고리처럼 걸려 있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가로 방향으로 강하게 붙으면서 세로로 약간 힘을 주면 쉽게 떨어지는 부착포를 개발했다.

유명한 도마뱀 로봇 ‘스티키봇’은 도마뱀붙이 발바닥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도마뱀붙이(Gecko)의 발바닥은 미세한 섬유조직으로 이뤄져 있고 발가락의 털 수백만개는 벽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게 하지만, 발을 옮길 때는 사뿐히 움직일 수 있다.

일본의 신칸센 기관차는 물총새 부리 모양을 본뜬 것이다. 고속주행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고민하던 엔지니어들이 물총새가 빠른 속도로 물속으로 다이빙할 때 거의 물을 튀기지 않은 것을 보고 열차 앞부분을 디자인했다.

연잎은 비가 와도 젖지 않고 방울방울 물방울이 맺힌다. 물방울이 뭉쳐 점점 커지면 연잎이 고개를 숙여 물을 털어낸다. 더러운 먼지도 물방울과 함께 떨어져나가기 때문에 늘 깨끗함을 유지한다. 이런 연잎의 특성은 외장형 페인트, 물이나 오염물질이 달라붙지 않는 옷감 등 많은 곳에 응용된다.

거미줄 원리를 이용한 단백질 섬유는 같은 굵기의 강철 와이어보다 강하다. 수술할 때 이 실로 상처를 꿰매면 저절로 녹기 때문에 실밥을 뽑을 필요가 없다. 2017년 스웨덴 중국 스페인 등이 참여한 국제연구진은 거미의 거미줄 생산기관인 ‘방적관(spinning ducts)’을 본뜬 장치를 개발했다. 과학자들은 대장균 유전자에 거미줄 유전자를 넣어 ‘거미줄 단백질’을 만들고 그 단백질을 거미 방적관을 흉내낸 좁은 유리관을 통과시켜 인공 거미줄을 만들었다. 세균배양액 1리터 속의 단백질로 인공 거미줄 1㎞를 생산할 수 있었다.

우리만의 고향이 아닌 지구에서

‘생체모방(Biomimicry)’의 저자 재닌 베니어스(Janine Benyus)는 “자연은 광범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그 방식은 인간들과는 전혀 다르다”고 설명한다.

인간 문명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화석에너지를 사용하지만 자연 생태계는 모두 태양에너지를 쓴다. 자연은 모든 과정에서 나오는 산출물을 다른 과정의 투입물로 사용하기 때문에 폐기물을 만들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의 숲에는 쓰레기가 하나도 없다. 심지어 동식물의 사체나 배설물까지도 숲에 영양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지구 생태계는 38억년 동안 운영된 경험 많은 실험실이다. 자연을 모델로 하는 혁신은 산업문명을 변화시키는 핵심 원리다. 자연은 햇빛만 있으면 제조업체들이 절대 생산할 수 없는 다양하고 풍부한 제품들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공기, 마실 수 있는 물, 동식물이 자랄 수 있는 토양까지.

제1차 산업혁명은 대량의 원료를 가열하고 분해하는 비효율적인 제조공정을 거쳐 지구를 일회용품이 넘쳐나는 쓰레기 별로 만들었다. 이제 새로운 산업혁명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 자연을 모방하는 우아한 산업혁명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새로운 길이 될 것이다.

재닌 베니어스는 “우리가 자연처럼 행동하고 자연처럼 보일수록 우리의 고향이지만 우리만의 고향이 아닌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세계적인 기업인 인터페이스 카펫, AT&T, 3M, 듀폰, GE, 나이키, 파타고니아 등은 생체 모방을 통해 혁신을 추진하고 우수한 제품을 설계한다. 자연에서 배우는 원칙에 따라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생산과정을 만든다. 깨끗하고 자연친화적인 설계로 자원 사용을 줄이고 지난 세기 인간문명이 지구에 진 빚을 갚아나간다.

남준기 기후재난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