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내 저소득국에서 고소득국으로 인구이동

2024-03-08 13:00:03 게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싱가포르로 … 인도네시아에서 말레이시아로 …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캄보디아 이주 건설 노동자들이 태국 방콕 시내의 건물 현장 밖에서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태국 건설업의 3.6%가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다. 사진 VOA
아세안 역내에서는 역사, 문화, 지리적 환경을 배경으로 오랫동안 저소득국에서 고소득국으로 인구가 이동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인이 싱가포르로 이동하고, 인도네시아의 저숙련 노동자가 같은 이슬람권인 말레이시아로 이동했다. 태국에는 국경을 접한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주로 노동인구가 이주했다.

그 결과 2021년 현재 태국에 거주하는 3국의 인구가 360만명,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말레이시아인들이 113만명, 그리고 말레이시아에 있는 인도네시아인 역시 124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 이주인구 규모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규모이고, 실제로는 고용 기간이 끝난 노동자나 밀입국한 노동자가 많아 정확한 규모를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싱가포르·말레이·태국, 외국 노동력 의존 = 지난 1월 보도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에는 공식적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250만명이 있고, 불법체류 노동자도 적게는 150만명에서 많게는 350만명이 있다. 합법 노동자만 해도 말레이시아 전체고용의 15%이다.

태국에서도 2023년 9월 현재 합법적으로 260만명이 있고, 비합법적 노동자가 100만명 정도 있다고 평가된다. 이들은 저임금을 받으면서 부가가치가 낮은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외국인 노동자는 싱가포르 제조업 고용의 46.4%, 건설업 고용의 71.4%를 담당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는 농업부문의 31.9%, 제조업의 21.5%, 건설업의 22.5%, 그리고 가사도우미의 86%를 차지하고 있었다. 태국에서도 제조업의 8.2%, 건설업의 3.6%가 이주노동력이다. 사실상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이들 3국은 경제 운용이 불가능하다.

코로나 종식과 함께 국가의 통제가 강한 싱가포르와는 달리 말레이시아나 태국에서는 불법체류자 문제를 포함하여 이주노동력 문제가 다시 한번 정책의 관심이 되었다. 정부는 코로나시기에 누적된 불법체류자 문제를 해결하여 노동 시장의 고도화와 국제사회의 비난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이에 비해 기업이나 사업자 단체는 이주노동자의 공급을 늘리라고 요구한다. 일례로 말레이시아의 팜오일 플랜테이션 부문은 약 80%의 노동자가 인도네시아인들 인데, 외국인 노동자를 2만 명 늘릴 수 있다면 올해 40억링깃(8.5억달러)에 달하는 생산을 늘릴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정부는 3월 1일부터 불법 혹은 체류기한을 넘긴 외국인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귀국할 때 소액의 벌금만 부과하고 법적 처벌을 면제하는 외국인송환프로그램(migrant repatriation programme)을 시작했다. 정부는 연말까지 시행할 이 제도의 대상은 60만명 이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태국 정부도 지난해 하반기에 두 차례에 걸쳐 외국인 노동력의 체류를 연장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한, 11월 10일을 기해 주변 4국에서 오는 입국자들에게 비자비용을 2000바트에서 500바트로 인하하고, 임시 체류 신청도 1900바트에서 500바트로 인하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고용되고 노동시장 안정을 기하자는 것이다.

◆ 이주노동의 경제적 파급 효과 = 저숙련 노동력의 이주는 당사자의 삶뿐만 아니라 단기적으로 송출국과 수입국의 임금 수준에 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으로는 산업구조와 경제발전, 그리고 아시아 전체의 분업 체계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노동력 수입국은 외국인 노동력을 활용하면서 국내 임금을 안정시킬 수 있고, 송출국은 국내에서 노동력 공급이 감소하기 때문에 임금 상승률이 높아질 수 있다.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의 최근 4년 평균 최저임금은 이전 4년 평균에 대비해 46.0% 및 38.6%가 상승했으나 수입국인 말레이시아는 35.4%, 태국은 이보다 훨씬 낮은 10.3% 인상에 그쳤다. 캄보디아가 달러 표시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있고, 말레이시아의 통화가치가 대폭 하락했다는 점에서 달러 표시 상승률은 더 낮아진다고 봐야 한다.

아세안에 진출한 일본제조업체에서 일하는 3년 경력의 단순공의 연간총급여(2023년)와 각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2022)을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소득대비 급여총액 비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낮은 49%와 66% 수준에 불과하다. 대신 노동력을 송출하는 인도네시아는 156%, 캄보디아 216%, 미얀마 136%, 라오스 92% 등이다. 노동력 수입국은 임금안정으로 노동소득 분배율이 낮아지고, 결국 국민경제 전체로 소득 불균형을 낳게 된다.

◆ 저임금 의존, 기술개발 게을리 해 = 더 중요한 문제는 말레이시아, 태국의 제조업 부문을 장악하고 있는 다국적기업이 저임금을 즐기면서 기술개발이나 첨단장비 도입을 게을리 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아시아의 분업체제 속에서 부가가치가 낮은 조립부문에 치중한다. 한때 중국보다 앞섰던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제조업은 중국에 밀려난 지 오래되었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진 근본적인 이유도 산업구조 고도화의 실패 때문이고 이는 인위적으로 임금 안정을 도모한 데 기인한다.

말레이시아는 최근 외국인 노동력의 활용 때문에 국내 임금 수준이 낮아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산업구조 고도화가 지체되며, 고급인력이 싱가포르나 대만 등으로 떠나는 ‘두뇌 유출’ 문제도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저임금의 저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을 2022년 25%나 인상했고, 기업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의 쿼터를 동결했다. 태국 정부도 소득분배 악화를 방지하고 소비진작을 위해서 최저임금의 대폭적인 인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기업의 목소리가 가장 큰 것이 현실이다.

◆ 이주노동을 둘러싼 송출국의 문제 = 아세안에서 이주노동의 파급효과는 송출국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얀마와 라오스의 상황은 이를 잘 말해준다. 미얀마 군부 당국(SAC)은 2023년 9월부터 에이전시의 중개로 해외에 취업한 노동자들에게 월 급여의 25%를 SAC가 인정하는 공식 채널로 송금하도록 했다. 송금액은 당연히 시장환율보다 훨씬 낮은 환율을 적용받게 된다.

또한, 10월 1일부터 총소득의 2%나 과세대상 소득 25% 중에서 낮은 쪽을 택하여 세금을 납부하도록 했다. 현지에서 소득세를 납부하는 노동자들은 이중으로 세금을 부담하는 셈이다. 군부에 저항하여 난민으로 태국이나 외국으로 탈출한 사람들조차 취업을 하게 된다면 군부 체제의 유지를 위해 세금을 납부해야 할 수도 있다.

SAC는 2월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을 포함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징병제를 재개하기로 했다. 18-35세의 남자와 18-27세의 여자는 2년간 병역을 마쳐야 하며 긴급 상황에서는 최대 5년간 복무해야 할 수도 있다. 지금 미얀마를 탈출하려는 젊은이들이 2주간의 무비자 체류 제도를 이용하여 태국으로 입국하고 있고, 또 많은 사람이 희미한 희망을 안고 비자를 얻기 위해 태국 대사관 앞에서 진을 치고 있다.

◆ 라오스 청소년, 학업포기 태국으로 = 한편 라오스에서는 취업기회 부족, 높은 인플레이션, 경제난으로 이제 10대 청소년까지 해외 취업기회를 찾고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2022/2023년 학년도(2022년 9월~2023년 8월)에 북부 태국과 가까운 라오스 사야부리주의 팍 레이(Pak Lay)에서만 5632명의 고등학생 중 1039명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했다. 이들은 라오스 현실에서 학업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태국에서 벌 수 있는 한 달 1만 바트는 라오스의 서너달치 소득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적자원의 축적은 저개발국이 중장기적으로 빈곤을 탈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그러나 10대 소년들이 현실을 피해서 태국으로 도피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는 한 교육체제의 붕괴는 불가피하고 장기적으로 인적자원 개발은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태국은 18세 이상만 고용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는데, 고등학교를 떠나는 소년들은 대부분 18세 미만이기 때문에 비합법적인 루트를 통해서 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군부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태국으로 밀입국하는 미얀마의 젊은이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라오스를 떠나는 소년들은 태국 당국의 엄한 감시의 눈을 피해서 일을 해야 하고 이 때문에 더욱더 낮은 임금, 강제노동 등 부당한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는 한-아세안 연대구상(KASI)을 추진하고 있다. 아세안과 자유, 평화, 번영을 위해 협력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외국인 인력 정책에서 아세안의 젊은이들을 좀 더 고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박번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