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는 예술’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

2024-03-22 13:00:01 게재

‘군사동맹 배제, 편들기 안함, 외국군기지 불허, 무력 불사용’의 4노(no)정책 … 자국 실리 극대화 추구로 성과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0일 하노이 베트남 공산당 본부에서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와 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VOA 홈페이지
시진핑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겸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2월 13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보 반 뚜엉 베트남 주석과 회담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베트남의 외교 정책은 흔히 ‘대나무 외교’라고 일컫는다. 여러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융통성 있게 자기주장을 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작년 12월 12일자 뉴욕타임즈는 이를 “단단한 뿌리가 지탱하는 대나무의 유연한 가지”로 비유했다. 대나무 외교는 대외 관계에 있어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나무 외교정책은 4가지 ‘아니오(No)’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유연한 외교를 말한다. 즉 (1)군사 동맹 배제 (2)다른 국가에 대항하여 특정 다른 국가 편들기 안함 (3)베트남 영토 내 외국 군사기지 불허 (4)국제관계에 있어서 무력 불사용이다. 이 원칙은 베트남이 1986년 친소련 고립정책과 고별을 한 이후 베트남의 대외 접근을 규정해 왔다.

◆작년 바이든 시진핑 모두 방문한 유일국가 = 이러한 아이디어의 바탕에는 모든 나라와 친구가 되고 어느 나라와도 적이 안 되려고 하는 의지가 깔려있다. 대다수 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간의 점증하는 경쟁을 전전긍긍 하면서 쳐다보고 있다.

반면, 베트남은 이를 기회로 바라본다. 1억 인구의 베트남은 두 강대국 모두에 우호적이다. 베트남은 중국 남부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3천km 의 해안선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위치로 인해 두 강대국 모두 베트남에 구애하고 있다.

베트남은 작년에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모두 국빈으로 맞이한 유일한 국가였다. 베트남은 바이든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를 중국, 러시아 및 한국 등과 대등한 지위(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업그레이드 했다. 이는 노련한 균형잡기 외교이며 베트남은 이를 통해 정치,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고 있다.

자국의 경제를 중국 경제로부터 디커플(decouple) 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은 중국내 외국인 투자자들이 기업 활동의 일부를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을 유도하고 있으며 베트남은 다른 어떤 아시아 국가보다 이러한 위험 회피(‘차이나+1’로 알려진 디리스킹)로부터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베트남의 대미 관계 격상이 이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과 공세적 주장에 대한 대비책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환상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중.베 두 나라의 전략적 관점에는 항상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중국은 부상하는 초강대국으로서 미국 주도의 탈냉전 질서의 단극 체제에 도전하고 지역에서 주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국으로서 단호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이에 반해 베트남은 중견국으로서 미.중 경쟁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고 역사적으로 긴밀한 대러시아 관계를 여전히 중시함으로써 최대한 많은 혜택과 안보를 얻어내려고 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인근 국가의 2배 달해 = 베트남의 외국인 투자 갈망과 베트남의 저임금은 베트남을 20년 전의 중국과 비슷하게 보이게 한다. 베트남의 중국과 튼튼한 관계는 이러한 외국 기업 활동의 베트남으로의 이전을 아시아의 거인에게 도전으로 보이기보다 훨씬 더 넓은 지역 차원의 윈윈으로 보이게 한다. 왜냐하면, 부분적으로 베트남에 기반을 둔 제조업체들은 중국 산 부품에 매우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2023년 첫 3분기에 베트남은 GDP 점유율 기준 인도네시아, 필리핀 또는 태국의 2배나 되는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했다. 그들은 40년의 개혁.개방을 이룬 베트남의 사례에서 배워야한다.

베트남의 레닌주의 집권당이 80년대 중반 집단주의를 버렸을 때 베트남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 이후 무역과 투자가 급증하자 베트남의 일인당 GDP는 6배나 올라 3700달러 수준으로 증가했다.

중.미 관계가 틀어지기 전에 조차도 베트남은 중국의 상승하는 임금에 흥미를 잃은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하고 있었다. 애플과 삼성 등 대형 브랜드를 포함 가장 최근 베트남에 투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베트남이 가치사슬을 올라가도록 도와주고 있다. 베트남의 미국에 대한 최대 수출 품목은 더 이상 옷감류가 아니며 아이폰과 같은 첨단기술 제품이다.

이제 이름과 불투명성 측면에서만이 공산주의인 베트남의 집권당은 베트남을 2045년까지 부유한 나라로 만들기를 열망하고 있다. 이는 실책의 여지를 거의 남겨두지 않는다. 베트남의 아시아 호랑이식 출현에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의 향배에 베트남의 이해관계 역시 크게 걸려있다.

◆경제성장 배경은 미국과 관계개선 추구 = 다수의 전문가들은 베트남의 놀라운 경제성장의 배경에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베트남식 독특한 외교가 주목을 받는 이유라 하겠다. 우리는 여기서도 대나무 외교가 작용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베트남의 경제체제 전환과 성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 안정은 체제 전환 국가들은 물론이고 개발도상국 사이에서도 뛰어난 성취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베트남의 경제성장 배경으로 흔히 도이모이(Doi Moi)라는 베트남의 경제 개혁이 자주 언급되는데, 그에 못지않게 베트남의 성공 가도에는 베트남의 적극적 대외관계 개선 모색, 특히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성장 전략 추구가 있었다.

미국은 베트남의 통일 이전인 1964년부터 시작해 1994년까지 베트남에 대해 무역제재를 가했다. 이 제재 레짐은 1994년 클린턴 행정부 시기까지 이어졌다. 1993년 최초 미국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했으며, 같은 해 클린턴 대통령은 베트남의 IMF에 대한 채무를 면제하는데 동의하고 이로서 베트남이 국제금융기관의 지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1994년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1995년 상호 대사를 교환하고 관계 정상화를 이루었다. 이후 미-베트남 관계는 꾸준히 진전되어 2001년 미-베트남 무역협정이 체결되었다. 베트남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미국의 경제 제재 해제는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뿐만 아니라 국제 금융 기관의 지원과 미국 외 다른 국가들의 대 베트남 투자를 크게 촉진시켜 베트남의 경제성장을 가져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미.중사이에서 최고조의 균형을 유지” = 대나무 외교는 베트남 사람들의 선택하지 않고, 상호모순적인 아이디어라도 품고 살아가는 유연하고 몸에 밴 성향을 반영한다. ‘자난 가네쉬’(Janan Ganesh) 파이낸셜 타임즈 칼럼니스트는 금년 2월 24일자 ‘베트남과 선택하지 않는 예술-미.중 사이에서 최고조의 균형을 유지하는 나라로부터의 교훈’ 제하의 칼럼을 통해 베트남 사람들의 타고난 선택 기피 성향을 해부했다.

저자는 보행자와 운전자가 미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공존하는 하노이의 도로를 건너는 도전을 예시하면서 사회주의 원칙이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번창하는 경제와 공존하는 베트남 사회의 이중적 성격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이중성은 은행권에 인쇄된 호치민 주석의 사진 이미지와 ‘뱅엔올룹센’ 같은 사치품 브랜드가 나란히 병존하는데서 전형적인 예를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베트남이 특히 미.중 사이 현존하는 경쟁 구도에서 볼 때 동남아의 지정학적 지형에서 중추적 플레이어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면서 동남아가 미.중 경쟁에서 경첩(hinge)이라면 베트남은 경첩 중의 경첩이라고 공평하게 주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나무 외교기조는 베트남인 DNA에 각인 = 작년 시드니 소재 ‘로위 연구소’ 보고서는 이 지역의 어떤 나라도 미.중 두 강대국 사이에서 싱가포르와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베트남보다 외교적, 문화적, 군사적, 상업적으로 등거리인 국가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칼럼은 상호 모순적인 아이디어를 동시에 수용하는 지적 유연성은 베트남의 지정학적 위치와 같은 복잡한 지형을 항해하는데 있어 소중한 특성으로 보여 진다고 분석한다.

칼럼은 특히 증대하는 지정학적 압력에 비추어 보아 베트남의 비동맹 입장의 지속 가능성을 의문시 하면서 베트남이 진화하는 전략적 도전에 직면하여 대륙 지향 또는 해양 지향 같은 상이한 지향점 사이에서 선택을 하지 않는 예술, 마스터클래스(master class)를 계속할 수 있을지 의아해 한다.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는 지정학적 압박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베트남 사람들이 고대 시기 약 천년간 중국의 지배를 당하고 20세기 들어와서 프랑스.미국.중국 등 강대국들과 세 차례 큰 전쟁을 치르며 현재에는 계속되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을 겪으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라고 볼 수 있다. 대나무 외교의 기조는 베트남 사람들의 몸 속에 DNA로 형성되어 역사를 관통하면서 세대 간에 계속 전승되고 있다.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는 유사하고 험난한 지정학적 딜레마에 처한 나라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정해문 전 태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