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한국형 밸류업 프로그램 성공조건

2024-03-27 13:00:01 게재

정부는 2월 기업가치제고를 위한 ‘상장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기업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주가이익비율(PER)은 미국 영국 같은 선진국은 물론, 대만 같은 신흥국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라고 한다. 최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글로벌 자본시장과 비교한 한국 자본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37.5% 수준으로 추정됐다.

최근 정부는 자본시장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고, 주주가치 확립을 위해 배당절차 및 물적분할 제도를 개선하는 등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에 더해 한국형 상장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서는 상장기업이 이사회 중심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이행하고 연 1회 자율적으로 공시하도록 했다. 또한 기업의 밸류업 노력을 자본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코리아 밸류업 지수와 상장지수펀드(ETF)를 개발하고, 스튜어드쉽코드에 이러한 항목을 반영해 연기금의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최근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은 밸류업 프로그램 후속 조치로 자사주를 소각하거나 배당을 확대하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와 배당소득세를 낮추는 방안도 언급했다. 하지만 기대와 함께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한국 자본시장 저평가 원인은 기업지배구조

기업의 본질가치는 기업이 벌어들이는 미래 현금흐름을 사업위험이 반영된 자본비용으로 할인해 산출된다. 기업이 창출한 현금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재투자되거나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형식으로 주주에게 환원돼야 한다. 따라서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자는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높은 현금흐름을 창출해야 하며, 창출된 현금은 엉뚱하게 쓰이지 않고 투자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는 효과적인 제도가 구축되어야 한다.

그러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에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경영자와 분배받는 주주 간의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배주주가 경영자인 경우 일반주주와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SM엔터테인먼트 같이 지배주주가 자신이 소유한 개인회사와 거래를 통해 부를 이전시키는 경우 투자자로부터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 LG에너지솔루션처럼 모자회사를 동시상장 하는 경우 대주주는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자본조달이 가능하지만 모회사 일반주주는 주가하락에 따른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

자녀에게 지분을 상속하고자 하는 고령의 지배주주인 경영자는 상속세를 낮추기 위해 오히려 주가를 낮출 유인도 존재한다. 따라서 기업의 현금창출과 배분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경영자와 주주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업지배구조가 효과적으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한국 자본시장의 저평가 원인으로 지목되는 주주환원 부족과 낮은 자기자본수익률(ROE)은 본질적으로 기업지배구조에 기인한다. 경영자와 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좋은 기업지배구조 하에서는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경우 창출된 현금흐름을 재투자하면 주가가 상승한다. 만약 잉여현금이 있다면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으로 주주에게 환원하면 된다. 경영자도 비영업용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기업가치를 높이고 부실한 계열사에 대한 부당 지원도 하지 않게 된다.

기업의 자율적인 참여와 제도개선이 동반돼야

정부가 발표한 상장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가치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공시함으로써 경영자와 주주 간 정보비대칭을 낮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스튜어드십코드 개선으로 연기금이 적극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구체적인 방안이 보이지 않고,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과세제도 및 일반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법제도 개선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기업가치 밸류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향후 후속대책에서 진전된 방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