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4년 전보다 큰 위기 자초? “절박함 안 보인다”

2024-04-05 13:00:30 게재

2020년 황교안 ‘큰절 읍소’ … 보수층 움직여 ‘낙동강 전선’ 지켜

한동훈 “서서 죽겠다” … 읍소·심판 동시에 “캠페인 효과 제약”

홍준표 “사즉생 각오로 화난 국민들에게 마지막까지 읍소해라”

4년 전인 2020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제1야당 미래통합당은 참패 위기감에 휩싸였다. “범여권이 개헌선(200석)을 넘길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선거를 1주일 앞두고 황교안 대표가 무릎을 꿇었다. “대한민국을 살려달라”며 ‘큰절 읍소’를 시작했다. 그때까지 정권심판론을 외치던 미래통합당도 “기회를 달라” “부족했다”며 읍소 전략으로 급선회했다.

사전투표 후 기자회견 하는 한동훈 비대위원장 4.10 총선 사전투표 첫날인 5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대위원장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주민센터에서 투표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미래통합당이 절박함을 호소하자, 외면하던 보수층이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결국 미래통합당은 103석을 얻어 개헌선을 지킬 수 있었다.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랐던 ‘낙동강 전선(PK)’이 버텨준 게 큰 힘이 됐다는 분석이다. 미래통합당은 PK에서 32석을 얻어 민주당(7석)을 압도했다.

4.10 총선을 닷새 앞둔 5일 여야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정양석 선대위 부위원장은 11일 전국 254개 지역구 가운데 ‘박빙지역’을 55개로 꼽으며 “초박빙 지역에서 상당수 선방하면 국민의힘이 반드시 승리한다. 반대로 여기서 무너지면 개헌 저지선마저 뚫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박빙지역’에서 패하면 100석도 안될 수 있음을 인정한 것. 물론 ‘선방’하면 ‘승리한다’고 자신했지만, 여권에서조차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우려가 많다. 여권 출신의 시사평론가는 “반전카드를 찾지 못하면 개헌선(100석)을 지키는 데 만족해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사전투표하는 이재명 대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일인 5일 오전 대전 중구 대전평생교육진흥원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여권을 둘러싼 위기감은 4년 전 못지 않지만, 여당의 대응은 사뭇 다른 분위기다. 4년 전처럼 심판론에서 읍소전략으로 180도 방향을 바꾸지 않고 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저희의 부족함, 잘 알고 있다. 실망을 드린 일도 적지 않다. 염치없는 줄 알면서도 고개 숙여 국민께 호소드린다”며 읍소했다가, 지난 3일에는 “누가 저한테 ‘옛날에 국민의힘 계열이 계속했던 것처럼 선거 막판에 큰절을 하자’고 했다. 범죄자와 싸우는 데 왜 큰절을 하느냐. 서서 죽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지못해 “호소드린다”며 읍소했지만, 큰절까지 동원한 읍소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속내를 비친 것이다. 이같은 ‘저강도 절박함’으로 보수층의 위기감을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인 대목이다.

국민의힘은 ‘어정쩡한 읍소’를 하면서 동시에 ‘야당 심판론’도 고수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4일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자식들에게 조 국, 이재명처럼 남을 속이며 살라고 가르친 건가”라며 ‘이조 심판론’을 거듭 강조했다. 읍소와 심판을 동시에 구사하는 전략인 셈이다.

여당은 ‘어정쩡한 읍소’를 하고 있지만 야당은 오히려 더 절박하게 표를 호소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참패할 것 같다, 이런 소리도 나오는 것 같고 다 엄살” “국민의힘이 아니라 민주당이 위기”라고 주장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4일 “4년 전 (미래통합당은) ‘민주당이 200석 얻는다. 막아달라’는 읍소전략을 통해 보수층을 결집시켜 PK를 지켜낼 수 있었다”며 “국민의힘도 보수층의 위기감을 고조시켜 투표장으로 나오도록 해야하는데, 지금까지는 위기감을 제대로 (보수층에)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민주당이 ‘위기’라고 읍소하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윤 센터장은 “(국민의힘이) ‘잘못했다’고 읍소하면서 동시에 ‘저쪽(야당)은 더 나쁘다’며 심판론을 주장하는 건 메시지 충돌”이라며 “캠페인 효과가 제약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4일 한 위원장을 겨냥해 “국민 앞에 엎드려 절하는게 무엇이 어렵냐? 아직도 검사 곤조가 남아 항일 독립투쟁도 아닌데 이육사 선생처럼 꼿꼿이 서서 죽겠다는 거냐? 사즉생의 각오로 화난 국민들에게 마지막까지 읍소해라. 그게 사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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