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세차례 갈림길에서 ‘반전 기회’ 놓쳤다

2024-04-08 13:00:24 게재

중도냐 보수냐 … 박근혜 찾아가 보수 결집에 무게

당정차별이냐 일치냐 … 갈등 때마다 ‘어정쩡 타협’

읍소냐 심판이냐 … 고개 숙이며 심판해달라, 혼선

이틀 앞으로 다가온 4.10 총선에서 거센 정권심판론 탓에 국민의힘이 열세를 면치 못한다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반전을 꾀할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총선 이후 책임론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공방을 예고하는 모습이다.

당진 찾은 한동훈 비대위원장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7일 충남 당진시장에서 정용선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8일 여권 관계자들은 “총선 승리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때 ‘140석+알파’로 제1당을 바랐지만, 선거 막판 이종섭·황상무·대파 논란과 함께 정권심판론이 몰아치면서 판세가 뒤집혔다는 게 복수 여권 관계자의 분석이다. 다만 여권 일각에서는 총선을 진두지휘한 한 위원장의 ‘패착’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한 위원장이 세차례 갈림길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바람에 반전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첫번째 갈림길은 ‘중도냐 보수냐’의 선택이 꼽힌다. 국민의힘이 122석이 걸린 수도권에서 선전하면서 제1당이 되려면 중도 표심을 잡는 게 급선무라는 관측이 많았다. 4년 전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보수·영남 편향’의 길을 걷다가 중도 표심을 잃으면서 수도권에서 ‘16(미래통합당) 대 103(민주당)’으로 참패했다. 국민의힘이 미래통합당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탈보수’ 탈영남‘ 기조의 행보를 보였어야 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지난달 26일 갑자기 대구에 거주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2017년 국정농단 수사를 했던 한 위원장이 박 전 대통령을 찾은 건 보수층과 TK 표심에 대한 구애로 해석됐다. 박 전 대통령을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 대통령’으로 기억하는 중도층의 심경이 복잡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두번째 갈림길로는 ‘당정 차별이냐 일치냐’가 거론된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아바타’라는 야당의 조롱과 함께 여당 지휘봉을 잡은 한 위원장은 지난 1월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을 겨냥해 “국민 눈높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발언했다가 대통령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으면서 ‘윤-한 1차 갈등’을 겪었다. 한 위원장의 ‘당정 차별’ 행보는 호재로 작용했다. 한국갤럽(3월 5~7일 조사,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이 차기대선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한동훈(24%) 이재명(23%) 조 국(3%) 홍준표 이준석 오세훈 이낙연(2%)로 나타났다. 정치에 입문한 지 석 달도 안된 한 위원장이 차기경쟁에서 선두권에 올라선 것. 총선 판세에서도 여당에 훈풍이 불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명품백 논란’을 더이상 거론하지 않으면서 어정쩡하게 매듭 지었다. 한 위원장은 이종섭·황상무 논란을 놓고 대통령실을 향해 ‘시급한 결단’을 촉구하다가 대통령실이 뒤늦게 ‘이종섭 귀국’ ‘황상무 사퇴’로 대응하자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됐다”며 서둘러 봉합했다. 대통령실의 ‘늑장 대응’은 정권심판론을 극대화시켰지만, 한 위원장은 더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확실한 ‘당정 차별’을 피한 것이다. 한 위원장과 여당에 불던 훈풍도 더이상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세번째 갈림길로는 ‘읍소냐 심판이냐’가 꼽힌다. 4년 전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참패 위기감이 커지자, 당시 황교안 대표가 무릎을 꿇고 “대한민국을 살려달라”며 읍소했다. 황 대표의 읍소가 보수층 결집을 부르면서 개헌 저지선을 넘길 수 있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선거 막판까지 ‘읍소’와 ‘심판’ 메시지를 동시에 발산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7일 “사실 저희만 잘하면 된다. 저희가 제일 못하고 있다. 저희가 반성하겠다”면서도 “범죄자들이 독재로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것을 막아달라”고 주장했다. ‘내가 잘못했다’면서도 동시에 ‘저쪽이 더 잘못했으니 심판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읍소든 심판이든 한쪽만 해야지, 반성하면서 심판해달라는 건 메시지의 혼선”이라며 “캠페인 효과가 제약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사즉생의 각오로 화난 국민들에게 마지막까지 읍소해라. 그게 사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엄경용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