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빈번한 스태그플레이션 발생을 우려한다

2024-05-17 13:00:00 게재

5월 15일 투자자들이 기다리던 4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됐다. 3월 CPI는 전년 동기대비 3.5% 올라 시장에 충격을 주었다. 금리인하를 기대하던 투자자들은 미 연준의 매파적인 성향이 보다 강화돼 올해 금리인하가 어려울지 모른다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3월 발표 이후 시장에서는 4월 수치가 어떻게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미국 CPI에 대한 높은 관심은 물가지표가 경기과열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근원 소비자물가지수(근원 CPI)는 변동성이 큰 에너지나 식품을 제외하고 계산되는데 계절요인이나 공급측면 요인을 뺀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을 측정하는 지표다. 근원 CPI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소비지출을 늘려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지표는 현재의 경제여건이나 경기과열 여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에 중앙은행의 정책 판단 근거지표로 사용된다.

미국의 경우 4월 근원 CPI는 헤드라인 CPI 3.4%보다 높은 3.6%였다. 3월에 비해 0.2%p 떨어졌으나 소비자들의 1년 후 기대 인플레이션이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반면 최근 우리나라에서 보다 관심을 끄는 소비자물가 지표는 헤드라인 CPI라고 불리는 통상적인 소비자물가지수다. 우리나라는 경제구조 상 원자재 수입 등 대외의존도가 높아 이들 가격변화에 따라 물가가 요동친다. 대외적인 요인 외에도 지난해 국내 사과 배 등 과일류 작황이 안 좋아지면서 농산물가격이 올라 올 초부터 소비자물가가 상승한 바 있다.

1분기 GDP 깜짝 성과의 이면

우리나라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2.9%로 3월(3.1%)보다 하락했지만 코로나19 이후 급등한 물가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근원 CPI는 헤드라인 CPI보다 낮은 2.3%로 전월 2.4%보다 0.1%p 하락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지역과 달리 근원 CPI가 헤드라인 CPI보다 낮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의 공급측 요인인 에너지 식품가격 변동에 상대적으로 더 영향을 받아 수요측 요인을 반영하는 근원 CPI가 낮다. 그만큼 우리나라 체감물가와 경기가 좋지 않은 상태임을 시사한다.

근원 CPI가 높은 미국은 아직 금리인하를 하기 어려운 여건이라면 우리나라의 경우 공급측 요인에 의한 체감물가는 높아진 반면 내수 경제는 활력을 잃어가는 모습이라 정책당국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물가지표 통계와 달리 최근 발표된 2024년 1분기 경제성장률 추계치는 정부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전분기 대비 1.3% 상승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아직 우리 경제가 회복세라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수출이 주도하는데다 그중에서도 반도체 자동차 쏠림, 그리고 워낙 낮았던 내수 기저효과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국내외 주요 연구기관들은 1분기 GDP 발표 이후 성장률을 상향조정하고 있지만 이는 주로 수출 회복에 기인한 것이고 내수부진은 지속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표상으로 3월 상품소비는 고금리 기조와 조업일수 감소 등의 영향으로 대부분 감소했으며 소매판매 역시 전년 동월 대비 줄었다. 설비투자 역시 전년 동월 대비 감소폭이 확대됐고 건설투자도 부진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수출을 견인하는 반도체와 자동차를 제외하면 사실상 수출성장은 제자리다. 수출 활황세가 다른 업종이나 중소기업에는 확산되지 않아 성장의 온기를 체감하기 어렵다. 또한 작년부터 이어진 긴축재정으로 인해 정부부문의 성장기여도가 떨어져 1분기에 0%인 상황에서 내수회복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1분기 성장률 1.3%는 정부 예상치 0.5%를 훌쩍 넘는 수치다. 예상 밖 성장세에 대해 당국은 회복의 청신호라며 반색하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시장에서는 신중론이 우세한 듯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경우 내수 회복과 관련한 구조적인 여건이 녹록치 않아 보인다.

여전히 주요 선진국에 비해 높은 가계부채와 최근 빠르게 증가한 기업부채로 인해 우리나라의 민간부채가 세계 수위권을 차지한다. 결국 이러한 높은 부채 수준은 민간의 채무상환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금리 지속으로 인한 부담이 소비나 투자 등 내수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며 경제충격에 취약하게 만든다.

더욱이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축적은 높은 부동산자산 선호와 관련이 있다. 부동산자산은 규모가 크며 유동성이 낮다 보니 돈을 묶어두는 효과를 갖는다. 경제에 돈이 돌아야 할 텐데 많은 돈이 부동산에 묶여 있고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산가격 버블만 양산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부동산가격 상승이 주거비 상승으로 이어져 또 다른 내수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울러 부동산자산 선호와 보유로 인해 젊은세대들에게는 빚 문제가, 노년세대에게는 그야말로 ‘자산부자 현금거지’ 현상이 발생하고 노후빈곤 문제까지 야기시킨다.

마지막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이슈도 구조적인 저성장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고령화 과정을 앞서 겪고 있는 일본의 1990년대 자산가격 버블 사례를 우리나라 역시 따르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도 크다. 버블 파열 이후 일본이 경험했던 가장 큰 어려움은 경기침체와 물가하락이 함께 발생한 디플레이션 지속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디플레이션 상황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저성장 기조에 물가상승까지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 발생이다.

디플레보다 더 고통주는 스태그플레이션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외의존도가 높지만 내수시장이 크다. 더구나 당시 더 많은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외부적인 가격상승 요인을 바로 반영하기보다 내부화하고 안정적인 고용구조 하에 저임금 저물가를 유지했다. 더욱이 일본은 높은 저축과 해외투자로 국가신뢰도가 세계 수위권으로 평가받던 상태에서 고령화를 경험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은 당시의 일본과 차이가 있다. 앞서 보았듯이 우리의 물가나 성장이 모두 대외적인 여건이나 충격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향후 이러한 공급충격이 빈번히 발생할 경우 저성장 기조아래 스태그플레이션 발생이 나타날 수 있다. 대외 충격에 국내 성장이나 물가가 영향을 많이 받는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고이자 고환율이 지속되고 성장이 구조적으로 낮게 유지된다면 대외충격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더 많이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상황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국민에게 안겨준다. 민간부채 원리금 상환부담은 고금리 상황에서 커져 내수부진의 한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고환율로 수입물가가 높아져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 기후플레이션이라고 부를 만큼 잦은 기후변화로 인해 농산물을 중심으로 식품가격 상승이 빈번하게 야기돼 상시적 물가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곡물 원자재 원유 등을 수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서 역내 기후충격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 발생한 충격이 우리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최근 더 많이 실감한다.

경제 기초체력 확보와 구조개선이 관건

결국 관건은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 확보와 이를 위한 구조개선이다. 구조적 저성장을 피하기 위해 반도체 자동차 이외의 신성장산업 육성과 기업들의 경쟁력 확보는 물론 부채의 디레버리징과 같은 가계 재무구조의 건전화도 필요하다.

이와 같은 중장기적 체질개선 노력도 중요하지만 현재로서는 국민이 체감하는 헤드라인 소비자물가 관리는 물론 현재의 낮은 근원 CPI 수준을 고려할 때 내수확대를 위한 재정의 역할 강화, 그리고 선제적인 통화금융정책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유경원 상명대 교수 경제금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