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핸드폰번호를 국정원이 위법하게 수집

2024-05-29 13:00:01 게재

대한민국에서 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변호사 활동을 10년 이상 해야 하는 등 법원조직법에서 규정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대법원의 법관인사규칙에서 규정하는 신원조사도 받아야 한다.

법관인사규칙에 의하면 법원행정처장은 법관인사위원회의 최종심의 대상이 된 판사임용 대상자에 대한 신원조사를 국가정보원장에게 의뢰해야 하는데, 이때 반드시 법원행정처장이 정하는 서식의 신원진술서 1부를 첨부해서 의뢰해야 한다.

법관 신원조사, 헌법 제37조 제2항 위반

따라서 법관인사위원회의 최종심의 대상이 된 판사임용 대상자는 신원조사를 받기 위해 신원진술서를 작성해 법원행정처에 제출해야 하고, 법원행정처는 이 신원진술서를 국가정보원(국정원)에 보내서 신원조사를 의뢰한다.

신원진술서에는 판사임용 대상자 본인의 연락처(핸드폰 직장 자택 이메일) 주민번호 혈액형 주소 병역 학력 경력 등의 개인정보는 물론이고 부모와 배우자, 자녀, 배우자 부모의 성명 생년월일 직업 거주지 등도 기재해야 한다.

그런데 신원조사에는 다음과 같이 심각한 문제가 있다. 먼저 법관으로 임용되기 위해서는 신원조사를 받아야 하고 받지 않으면 임용될 수 없으므로 신원조사는 헌법 제25조가 보장하는 공무담임권을 제한한다.

다음 신원조사는 판사임용 대상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도 제한한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그 정보주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이며 헌법 제10조 등에 의해 보장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 판례다.

신원조사를 받기 위해서는 신원진술서에 핸드폰번호 등 다수의 개인정보를 기재해 제출해야 하므로 신원조사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도 제한한다.

가장 큰 문제는 법관에 대한 신원조사에 관해서는 법원조직법 등 법률에 아무런 근거 규정이 없고 대법원규칙에 위임한 규정도 없다는 점이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반드시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법관인사규칙에 의해 국민인 판사임용 대상자의 공무담임권과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라는 기본권을 제한하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돼 위헌이고 위법하다.

국정원이 보유한 개인정보 폐기돼야

법관에 대한 신원조사는 위와 같이 위법하므로 즉시 폐지해야 한다. 대법관회의에서 대법원규칙인 법관인사규칙을 개정하면 가능하다. 대법원규칙 개정은 대법관회의 소관사항이다. 법관신원조사를 폐지하면 법관 임용예정자의 공무담임권·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권 보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신원진술서는 위법한 신원조사를 위해 국정원에 위법하게 제출된 것이므로 작성·제출자인 현직 법관들에게 반환되어야 한다. 국정원이 현직 법관들의 핸드폰번호 등 개인정보를 보유하는 것도 역시 위법하므로 개인정보도 폐기되어야 한다.

대법관회의에서 법관인사규칙을 개정해 법관 신원조사를 폐지하고 나서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을 대표해 국정원에 신원진술서를 반환하도록 요구하고 아울러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는 법관들의 핸드폰번호 등 개인정보도 폐기하라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법원행정처가 판사임용 대상자들로부터 신원진술서를 제출받아 국정원에 보냈기 때문에 반환요구와 폐기요구도 법원행정처가 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엄기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