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중국 공급망 문제생기면 베트남 통해 한국도 영향

2023-12-01 10:39:21 게재

아세안의 전기차 생태계 개발은 한국에 절호의 기회 … 한-아세안 관계의 성공을 위해 중요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전략실장

한국과 아세안 간의 무역은 한-아세안 대화 관계가 시작된 1989년 82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2022년에는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2022년 하반기부터 한국의 대아세안 수출과 아세안의 대한국 수출이 전년 대비 감소세를 보였다. 다행히 최근 들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양 지역간 안정적 무역 확대를 위한 방안을 고민할 때다.

마침 다가올 2024년은 한·아세안 대화 관계 수립 35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양 지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려 한다. 2010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한 후 양 지역 간 협력의 폭이 경제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었지만, 부족한 점을 돌아보고 다시 협력의 폭과 깊이를 더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과 아세안이 다양한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양 지역간 무역과 투자를 촉진하며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세안 지역이 한국 제조업에 있어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싱가포르, 아세안,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과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메가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발효되면서 역내 거래 비용과 무역 장벽 완화되고, 투자 환경을 개선할 수 있었다.

◆대아세안 수출, 베트남 넘어 확장해야 = 실제로 한국과 아세안 간 교역에서 중간재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고 있다. 중간재는 한국의 대아세안 수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한국의 대아세안 수입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한국과 아세안이 공급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아세안 수출의 약 50%가 아세안 10국 가운데 베트남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된다. 특히 아세안과의 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로 격상할 때 아세안의 특정국에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아세안 회원국으로 협력의 폭을 확장해야 한다. 이는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주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관과 주아세안 한국 대표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주최한 '2023 한국·아세안 연계성 증진 포럼'이 29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과 전쟁을 경험하면서 회복력 있고 안정된 공급망의 확보가 지역 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였다.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대부분 국가들이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경제 및 기술의 자립을 강조하며 산업의 내재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믿을 수 없는 경쟁자로 인식하고,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및 IRA 등을 통해 고기술 및 전략 산업을 지원하는 정부 주도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따라서 인구감소와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 아세안과 함께 안정적이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의 구축은 더욱 중요해졌다. 그러나 아세안의 공급망이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아세안의 총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던 비중은 2012년 14.4%에서 2021년 23.9%로 급증했고, 총수출에 있어서도 2012년 11.3%에서 2021년 16.4%로 증가했다. 중국에서 부품을 조달하지 않으면 생산이 어렵다고 말하는 동남아 기업인도 현지조사 과정에서 종종 만날 수 있었다.

◆한국기업, 베트남서 중국기업과 치열경쟁 = 수출입 품목 수를 비교해 보아도 아세안의 중국의존도 확대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과 가장 경제교류가 긴밀한 베트남의 2016년과 2020년 수입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중국의존도 증가가 눈에 띈다. 2016년에서 2020년 사이 베트남 수입시장에서 5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한 한국산 제품 수는 'HS 6단위'(원산지 결정 기준 중 하나) 기준으로 193개에서 146개로 감소했지만, 중국산 제품 수는 1328개에서 1795개로 급증했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한편, 2020년에 한국과 베트남의 수입 시장을 연계해서 분석하면, HS 6단위 기준으로 2020년 한국이 베트남으로부터 수입한 상위 100개 제품 중 25개 제품이 한국 수입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했고, 이 25개 제품에 대해 베트남 수입시장을 분석해 보면 11개 중국산 제품이 5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즉, 한국이 베트남에 의존적인 25개 제품 가운데 11개 제품이 베트남에 의해 중국에 다시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중국에서 만약에 공급망 문제가 발생한다면 베트남을 통해 한국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아세안 지역 가치사슬 구축 중요 = 따라서 공급망 이슈에 대응할 때 아세안과 한국은 더 이상 분리된 시장이 아니므로 한국과 아세안은 공급망의 안정성과 회복력 높이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아세안은 국가별로 비교우위 산업이 다르다는 점에서 다각화를 통해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아세안 간 '프렌드쇼어링'을 기반으로 한-아세안 지역 가치사슬을 구축할 수 있다. 각국이 보유한 비교우위 산업을 토대로 공급망을 연계한다면 지리적 인접성을 고려할 때, 더욱 회복력 있고 안정된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 및 반도체 산업과 같은 미래 산업도 아세안 지역이 보유한 핵심 광물 개발과 함께 고려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아세안 역내 가치사슬 참여 비중과 아세안 역내 무역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그 가능성을 방증한다.

다만 아세안 회원국들은 새로운 공급망에서 핵심 노드 역할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규제 개선 및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때로는 서로를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싱가포르는 지식재산권 체제를 강화하여 역내 공급망의 허브가 되려는 전략을 발표했다. 인도네시아는 옴니버스법을 통해 법규와 규제를 간소화했고, 베트남은 다양한 산업정책과 함께 더욱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방하고 있다. 이러한 아세안 회원국간의 경쟁은 공동체로서 지녔던 아세안의 힘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를 나았다.

◆아세안의 '글로벌 전기차 허브전략' 주목 = 그러나 올해 초 미래 산업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에서 아세안의 변화가 관찰되었다. 아세안의 전기차 배터리 기술과 관련하여 태국 에너지저장기술협회(TESTA)의 주도로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관련 협회가 배터리 개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아세안 역내 배터리 생태계를 공동 개발하기로 하였다. 또한 올해 5월 아세안 지도자들은 '역내 전기차 생태계 개발에 관한 아세안 지도자 선언'을 발표했고, 아세안을 글로벌 전기차 허브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어서 올 9월에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아세안+3 지도자들도 유사한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아세안 회원국들이 미래 산업 분야에서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 새로운 공급망을 형성하려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아세안의 변화는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에서 강점을 보유한 한국에 기회이다. 두 지역 간 상호 보완성을 기반으로 전기차 및 배터리와 같은 미래 산업에서 새로운 협력 틀을 형성한다면 호혜적인 이익의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계 격상만큼 중요한 것은 상대 존중 = 다행히 한국은 공급망과 미래 산업 부문 이외에 더욱 넓은 영역을 포괄하는 아세안과의 협력 틀로 신남방정책에 이어 '한-아세안 연대구상'을 2023년 4월에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한-아세안 연대구상'은 자유·평화·번영이라는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3대 비전에 맞춰 경제협력 이외에 다양한 중점 과제를 담고 있다. 국방, 해양 안보, 방위산업, 경제 안보, 미래통상 및 산업, 기후변화·환경, 보건, 소지역 협력, 정무, 인적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한-아세안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이행하는 실질적인 방향타로 기능할 것이다. 그리고 아세안 회원국과의 맞춤형 양자 협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아세안 연대구상'을 통해 양 지역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부합하는 실질적인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 양 지역 관계의 격상만큼이나 더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한-아세안 연대구상은 한-아세안의 공동번영을 위해 아세안 중심성과 'AOIP(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에 대한 확고한 지지의 뜻을 밝혔다.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의 격상 이후에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속에서 협력한다면 양 지역 관계의 지속가능성 고양과 신뢰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지난 35년간 한국과 아세안은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 왔지만, 한국의 대아세안 협력은 경제 부문에 천착되었고, 특정국에 쏠려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다가올 2024년에 한국과 아세안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는 만큼, 양 지역 간 상호 보완성을 증진하고, 맞춤형 협력을 강화한 가운데 지속가능한 신뢰 형성을 바탕으로 미래 산업 협력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