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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체 분석기술, 맞춤의료 시대를 열다

2023-04-18 11:53:45 게재
김 준 충남대 교수 생명시스템과학대학

유전체 기반 맞춤의료란 사람마다 다른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환자에게 가장 최적화된 처방을 제공해주는 방법이다. 사람은 생김새만 다른 게 아니라 유전자, 즉 DNA 수준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이로 인해 때로는 특정한 약물에 대한 반응성도 달라진다. 같은 병을 앓는 환자라고 해도 어떤 사람은 A라는 약물이 더 잘 듣는 반면, 다른 사람은 A는 별 소용이 없고 B라는 약물이 더 잘 들을 수 있다. 그러니 DNA 정보를 이용해 환자마다 어떤 약물이 더 잘 들을지 예측하고 그에 맞춰 약을 처방할 수 있다면 치료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한 환자별 맞춤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첫단계로, 많은 연구자들은 환자가 저마다 지니고 있는 DNA의 차이를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DNA 차이를 알아내는 연구는 지금껏 진행된 수많은 연구들 덕분에 가능해졌다. 20세기 말 3조원 가량 투입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 그리고 그 결과 작성된 인간 유전체 지도가 대표적이다. 유전체란 생물이 지니고 있는 모든 DNA 정보를 통째로 가리키는 용어인데, 이 프로젝트 끝에 사람이라는 생물이 지닌 DNA 정보를 거의 온전한 형태로 완성한 첫번째 지도가 탄생했다.

수십만원이면 개인 DNA정보 알 수 있어

이렇게 막대한 예산과 시간, 엄청난 수의 연구자들이 노력한 덕분에 탄생한 인간 유전체 지도는, 이후 연구자들이 그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인간 DNA를 연구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 관련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한 덕분에 현재는 수십만원 수준에서 한 사람의 DNA 정보를 대략적으로나마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더해 이렇게 모은 DNA 정보 중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부분, 즉 유전변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쉽게 검출할 수 있게 됐다. 적은 비용으로 환자의 유전체 정보와 유전변이를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환자별 맞춤의료로 향하는 길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이런 환자별 유전변이 정보를 기반으로 맞춤 약을 제공하는 맞춤의료 연구 결과는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 가장 엄밀하게 검증된 사례 중 하나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전이성 유방암에 대한 유전체 기반 맞춤의료 결과다.

연구진은 유전체 정보 분석을 활용해 환자들의 유전변이 정보를 확보하고, 이중 실제로 유전자의 기능을 바꾸는 변이를 추렸다. 그리곤 환자마다 기능이 바뀐 유전자를 표적으로 삼는 맞춤 약물을 준비하고, 환자마다 바뀐 유전자에 맞춰 개개인에게 맞는 약물을 처방했다. 그 결과 이런 맞춤의료를 처방 받은 환자들이 기존 화학요법을 처방 받은 환자들보다 보다 오래 암 전이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맞춤의료가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것이 본격적으로 검증된 것이다.

맞춤의료 관련 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유전체 분석 기술이 가장 대표적이다. 기존 기술로는 명확하게 분별해낼 수 없었던 유전변이가 DNA 곳곳에 남아있었는데, 이를 분석하기 위한 고도화된 기술이 지속 개발되고 상용화되고 있다. 이전 기술은 수십만원 정도로 확보한 짧은 DNA 정보를 3조원짜리 유전체 지도에 검색하고, 그 결과 유전체 지도와 문자 1개 정도 다른 작은 유전변이를 대량으로 확보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

지금 발전하고 있는 기술은 아예 3조원짜리 유전체 지도에 준하는, 또는 그보다 더 품질이 높은 유전체 지도를 개인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일을 목표로 한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20세기 말 3조원이 들었던 유전체 지도를 현 시점에서 수천만원, 가까운 시일 내에 수백만원 정도면 작성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DNA 문자가 수백에서 수만개 이상 차이 나는 거대한 유전변이까지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암세포처럼 복잡한 돌연변이가 나타나는 경우에도 모든 유전변이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개인 맞춤형 유전체 지도 제작도 가능

20세기 말 진행된 인간 유전체 지도 사업의 결과물이 그러했던 것처럼, 새로운 유전체 분석 기법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유전체 지도 제작은 맞춤의료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인류가 유전변이에 맞춰 활용할 수 있는 맞춤의약품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그 기여도는 커질 것이다.

보다 다양한 맞춤의약품과 보다 정교해진 유전변이 분석 기법을 기반으로, 인류가 맞닥뜨리고 있는 다양한 질환에 대한 치료 효과를 보다 높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