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부실기업 회생과 노란봉투법

2023-06-19 11:45:13 게재

지난 15일 대법원은 노조쟁의에 대해 중요한 판결 2건을 내놨다. 옛 쌍용자동차와 현대자동차의 파업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판결에서 노조와 노조원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린 원심을 파기했다.

쌍용차 사건은 2009년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가 회사측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대법원은 회사측이 요구한 손해배상 청구 원금 33억1140만원 중 18억8200만원을 깎았다. 현대차의 경우 조합원들이 2010년 11~12월 비정규직 파업에 참여해 울산공장 일부 라인을 점거했던 사건이다. 대법원은 조합원의 손해발생 책임을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며 사건을 2심재판부로 되돌려보냈다. 파업 이후 노조가 잔업특근을 통해 생산차질을 보충한 점도 다시 살피라고 주문했다.

KG모빌리티와 한화오션, 과거와 화해하기를

이번 판결은 노조원 개인에 대한 막무가내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취지와 상당히 유사하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법안도 힘을 얻게 됐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과 노란봉투법 문제는 오랜 부실경영의 터널을 빠져나와 최근 회생의 길로 접어든 두 대기업과 직결돼 있다. 바로 KG모빌리티와 한화오션이다. 이들의 전신은 쌍용자동차와 대우조선이다.

쌍용차는 1997년 외환위기 무렵 부실화된 이후 4반세기 동안 유랑해왔다. 회사도 노동자도 그동안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런 생활을 청산하고 새출발하게 됐다. 그렇지만 유랑 과정에서 정리해고 문제로 발생한 노사분쟁의 후유증은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그 후유증을 빨리 털어낼 필요가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를 위한 기회를 준 셈이다.

전세계는 지금 전기차 시대로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이럴 때 회사의 조속한 정상화와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노사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니 과거 힘들었던 시절 발생한 노사분쟁의 상처를 하루빨리 털어내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서 출범한 한화오션 역시 마찬가지다. 한화오션의 경우 지난해 6월 2일 하청노조가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조합원 7명이 도크에 들어가 점거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진통 끝에 노사가 임금 4.5% 인상 등에 간신히 합의하며 파업은 51일 만에 종료됐다. 그렇지만 사측은 하청노조 간부 5명을 상대로 47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미뤄볼 때 한화오션이 하청노조 노조원들로부터 470억원 손해배상을 받아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설사 승소한다고 해도 하청노동자로부터 그런 거액의 배상을 받아낼 수는 없다. 불법대부업자나 불법추심업자처럼 행동하기 전에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려운 시절에 겪었던 일들을 지꾸 되새기는 것보다는 물결에 흘려보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화그룹은 대우조선을 인수하면서 새롭게 키워보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화오션의 수주실적은 조선3사 가운데 가장 부진하다. 내부전열을 재정비하고 본격적으로 수주활동에 다시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하청업체 노동자들과도 잘 지낼 필요가 있다.

최근 조선업계는 일손부족이 심각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래서 정부도 외국인 노동자 고용확대 등 해결방안을 강구중이다. 그렇지만 그런 고식적인 방법으로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는 조선산업의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근본적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한화오션은 향후 노동자들의 파업을 억제하기 위해 손해배상 소송을 더 끌고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할지도 모르겠다. 족쇄를 계속 채워두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완강한 자세가 노사화합이나 인력부족 해결에 유익한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조선소 취업을 고려하는 노동자의 발길을 돌려세우고 인력난을 가중시키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진지하게 숙고해봐야 한다.

갈등해결과 화합 빠를수록 알찬 열매 딸 것

KG모빌리티와 한화오션의 새출발에 대해 온국민은 축하하고 장구한 발전을 기원하고 있다. 공적자금으로 연명하며 국민들에게 부담을 주었던 지난날에 대해 굳이 따지려 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두 기업 역시 과거와 화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갈등해결과 화합이 빠르고 진실할수록 더 알찬 열매와 보람을 선사할 것이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