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한국 기업, 총체적 위기다

2023-08-09 12:04:42 게재

하루가 다르게 문 닫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중소기업 1500개사가 매물로 나와 있다. 살 사람이 없어 대부분(99%) 청산으로 마감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다. 창업자의 고령화, 상속세 부담과 각종 규제, 기업의 비전 불확실 등이 주요인이다. 그중에서도 코로나19 이후 높은 이자를 못 견디고 '한계기업'으로 내몰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계기업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외부감사기업(2만3273개)을 대상으로 재무상황을 조사했다(한국경제연구원). 외감법에 따라 회계법인으로부터 의무적으로 감사를 받아야 하는 기업은 자산총액이 500억원 이상이거나 매출액 500억원 이상의 기업들이다. 비교적 규모를 갖추고 있는 기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중에 한계기업으로 판정된 곳이 지난해는 3017곳이었다. 올해, 불과 1년 만에 3258개 사로 241곳이나 늘었다. 한계기업이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대출받은 돈의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다. 외부감사기업 10곳 중 1곳(12.9%)이 이 같은 실정이다.

대기업 집단 제외하고 절반 이상이 한계기업

한국 기업의 총체적인 위기 징후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상장기업들의 사정은 어떨까?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1278개사 중 지난해 한계기업으로 분석된 기업은 518개사다. 전체의 40.5%다. 올 1분기 기준으로 보면 현재 60%가 넘는 상장기업이 한계상황이라는 분석이다(한국상장회사협의회 2023년 1분기 조사).

대기업 집단은 어떨까?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지정하면서 자산 10조원 이상을 대기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매년 100개 내외가 대기업집단 지정을 받는다. 대기업 중에서 올 1분기 한계기업은 32곳으로 분석되었다. 전체 대기업의 21.3%다.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위기 상황은 절박하다. 상장사협의회 기준에 따르면 453개 중소기업 중 올해 1분기에 271개사, 60%가 한계기업으로 판정되었다. 10곳 중 6곳은 한계기업인 셈이다.

종합하면, 한국 기업은 대기업 집단을 제외하고 절반 이상이 한계상황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높은 금리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와 고물가를 잡기 위해 2021년 8월부터 17개월간 기준금리를 3.0% 올렸다. 현재 3.5%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에는 큰 부담이다. 금융 등 각종 비용이 늘면서 이익이 줄게 된다. 높은 이자율이 계속되면 경기도 위축된다. 한계기업이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은의 기준금리가 3% 오르는 동안 한계기업은 3000곳 이상 늘어난 것으로 증명된다.

정상적인 기업은 금리가 오르면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다. 이때 정부는 경제 전반에 낀 버블을 걷어내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기업 대출은 금리인상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도리어 민간부채(가계와 기업)가 375조원 늘어 5000조원에 이른다. 기업부채는 금융업을 제외하고도 2573조원으로 늘어났다.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없었다는 증거다.

이 같은 기업 환경에서 금리가 낮아지면 어떻게 될까? 한계기업은 연명할 시간을 벌게 된다. 더 큰 부실덩어리가 될 것이다.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대외적인 변수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그 첫번째 난제는 미국 경제 상황이다. 통화긴축은 마무리 수순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게 되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우려된다. 미국 금융기관의 연쇄 파산사태다. 이미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예상과 달리 미국이 고금리 기조를 계속 끌고 가는 경우다. 그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과연 우리 기업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한계기업 느는데 기업구조조정법은 수명 끝나

이 와중에 한국도 금리인상 종료가 임박했다는 예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 정책 당국의 대비는 허술하다. 그중 한 예가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다. 기촉법은 한계기업의 사업 재편과 워크아웃(구조조정)을 위해 만든 법이다. 올해 말로 수명을 마친다. 한계기업은 느는데 기업구조조정법이 사라진다.

한계기업은 정상기업에 돌아갈 인적·물적 자원을 가로챈다. 국가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그런데 누구도 이 법의 존치를 따지지 않는다. 정책 기관의 대응이 너무 안일하다. 더 늦기 전에 기업을 위기에서 구할 대책과 한계기업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김명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