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외압'과 '항명' 어떤 게 신뢰가 가나

2023-08-23 13:58:23 게재
예상대로였다. 국방부는 21일,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에 구명조끼도 없이 투입됐다가 순직한 고 채수근 상병 사건과 관련해 상급부대인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과 박상현 7여단장 등 4명에 대해 혐의를 적지 않고 사실관계만 적시해 경찰에 넘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이 초동수사에서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8명에 대해 재검토한 결과 "4명은 문제가 식별됐으나 현재의 기록만으로는 범죄의 혐의를 특정하기에 제한됐다"고 수사결과 번복 이유를 설명했다. 조사본부는 대대장 2명에 대해서만 "'장화 높이까지만 입수 가능하다'는 여단장의 지침을 위반해 '허리까지 입수'를 지시해 채 상병 사망과 직접 인과 관계가 있다"며 범죄혐의를 적시해 경찰에 인지통보서를 넘기기로 했다.

'사단장 혐의내용 적시' 빠진 조사본부 재검토

상황은 '진실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외압' 주장과 국방부의 '항명' 주장 사이에 어느 쪽 말이 더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믿을만한가. 어느 주장이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는가.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사단장 등이 부하의 생명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할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고 무리한 수중수색을 지시했다고 판단했다. 이들에게 과실치사 혐의 결론을 내리고, 7월 30일 국방장관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았다. 그런데 다음날 상황이 갑자기 뒤집혔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장관 지시'라며 수사결과 이첩을 보류하라고 했는데 박 수사단장이 이를 어기고 경북경찰청에 이첩했으므로 항명이라는 것이 국방부 주장이다.

박 전 수사단장 주장은 전혀 다르다. 국방부의 전방위적 압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해병대사령관에게 이미 유족에게도 설명한 상태라며 해병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경찰에 빨리 이첩하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가운데 낀 사령관은 7월 31일과 8월 1일 오전과 오후 내내 참모들과 대책회의를 하는 등 고민하면서 결정을 못내렸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그 어떤 분명한 명령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전 수사단장 주장에 따르면 장관이 결재를 하면서 "수고했다"고 격려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밤새 입장이 바뀐 것은 더 높은 곳, 대통령실의 개입 없이는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정황증거도 뒷받침한다. 공교롭게도 7월 30일 대통령실에서 수사자료를 요청하면서 뒤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법에 따라 수사자료 전달을 거부했으나 사령관 지시로 언론브리핑 자료를 보낸 후부터 외압이 거세졌다고 한다. 차관과 법무관리관이 나서 사단장 여단장의 혐의를 뺄 것을 에둘러 종용해 외압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사건을 민간경찰에 넘기기 전 엄정한 초동수사를 한 수사단장이 왜 '항명'으로까지 몰리게 됐을까. 군의 반대라는 난관을 뚫고 지난해 7월 군사법원법이 개정되면서 성폭력이나 범죄와 연관된 사망사고 등 '3대 범죄'가 경찰로 이관됐다. 개정된 법을 어기고 전처럼 군 내부에서 축소하려하면 직권남용 등으로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이 '진실공방'으로 흐르게 된 까닭도 이 국방장관이 추후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뒤바뀐 명령을 분명한 문서로 남기지 않으려 한 탓이 커 보인다. 근거가 남지 않도록 구두명령으로 해병대에서 알아서 처리해주기를 여러 경로를 통해 압박했으나 수사단장이 반발하면서 일이 커졌을 개연성이 높다.

하루밤새 바뀐 국방장관 태도에 대통령실 개입 의혹

정부는 박정훈 전 수사단장의 외압폭로를 '군기문란'으로 몰아 제압하려는 모양새다. 과연 국민이 국방부와 전 수사단장 주장 중 어느 쪽을 더 믿을까.

윤 대통령은 그동안 수많은 사건·사고에 윗선의 책임을 묻지 않고 실무자들만 닦달했다. 잼버리대회 파행은 전 정부 탓으로 돌렸고, 충북 오송 지하차도 침수로 많은 인명이 희생됐음에도 충북도지사 행정안전부장관 등은 책임론에서 제외돼 있다. 지난해 이태원에서 159명이 떼죽음을 당한 참사에서도 책임진 고위 관료는 없다. 이런 식이라면 박 대령에 대한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 역시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