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PF 부실에 커지는 제2금융권 위기 | ① 폭탄돌리기

증권사 위험노출액 48조원 … 만기연장으로 근근이 버티는 중

2023-09-06 10:55:53 게재

고금리 장기화·경기침체로 잠재 부실 사업장 증가

투자회수지연·이자급증 등 추가 손실 가능성 높아

국내 증권사의 부동산금융 위험노출액(익스포저) 규모는 48조원 규모로 지난 1년간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신규 부동산금융 영업이 사실상 전무했던 점을 감안하면 과거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지 못한 채 만기연장으로 근근이 버티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무한정 만기연장을 할 수는 없는 일. 전문가들은 부동산 경기침체로 공사가 중단된 잠재 부실 사업장이 증가하고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이자부담 증가로 증권사들의 최종 손실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부동산PF 사업 지지부진 … 73% 만기 이월 = 6일 나이스신용평가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25개 증권사의 국내외 부동산금융 위험노출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47조6000억원으로 작년 3월 말 47조9000억원에서 3000억원 감소에 그쳤다. 분석대상은 나이스신용평가가 유효등급을 보유한 국내 25개사로 자기자본 5조원 이상인 8개사(미래, NH, 한투, 삼성, KB, 하나, 메리츠, 신한)를 초대형사로, 자기자본 1조원 이상인 10개사(키움, 대신, 한화, 유안타, 교보, 신영, 현대차, 하이, IBK, BNK)를 대형사로, 자기자본 1조원 미만인 7개사(유진, 이베스트, DB, 다올, 부국, SK, 한양)를 중소형사로 분류했다.

국내 부동산PF 위험노출액은 33조5000억원으로 익스포저의 약 70%를 차지한다. 해외 익스포저는 14조1000억원으로 초대형증권사들이 집중해 투자했다. 증권사의 국내 부동산 익스포져는 주로 우발부채 및 대출·사모사채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외는 편드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

나이스신평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 만기도래 예정이던 국내 PF 사업장 5조2000억원(618건) 중 약 73%(3조8000억원, 490건)는 만기연장을 진행했다. 구체적으로는 올 상반기 만기도래 브릿지론 사업장(3조7000억원) 중 약 80%(3조원)는 본PF로 전환하지 못하고 만기연장 됐다. 나머지 20%는 차주 변경이나 외부 매각 등을 통해 상환된 것으로 나타난다.

본PF사업장 만기도래 금액(1조5000억원) 중에서는 약 56%(8000억원)가 만기연장 됐다. 나머지는 미분양 담보대출 혹은 상각 처리로 해소된 사업장이 상당했다.

국내 부동산 가격급락세는 진정되었지만, 2021년 이후 금리인상 기조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비교적 높은 가격에 토지를 매입한 사업장들은 공사비 부담 증가 등으로 사업성이 악화된 상황이다. 공사 중단 등 부동산PF 사업 진행이 더디게 진행되고, 만기연장에 따라 손실인식 또한 이연되는 실정이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부동산 불황과 고금리 상황에 겨우 만기연장을 하는 상황은 폭탄돌리기와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며 "만기연장에 따라 건전성과 손실의 인식을 다음 회기로 넘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브릿지론과 달리 본PF는 전체 PF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기 때문에 본PF 부실화는 증권업 전반에 분명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준공 후 미분양이 상승하지 않으려면 준공이 완료되는 시점에 분양에 대한 수요가 회복되어야 하는데, 국내도 해외와 마찬가지로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과 이에 따른 경기 둔화가 나타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해외 부동산 투자 대부분 중후순위 = 해외 부동산 투자도 만기연장으로 버티고 있다. 투자시점별로 보면 2018~2019년도에 투자한 해외사업장이 6조4000억원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에 투자한 사업장의 투자기간이 대부분 5~6년이기 때문에 해외 익스포저의 만기는 2023~2026년도에 집중되어 있다. 만기도래 시점에 만기연장이나 자금재조달이 불발된다면, 저하된 시장 환경 때문에 낮은 가격에 부동산을 팔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올 상반기 중 만기도래 했어야 할 2조6000억원(73개) 해외 사업장 중 약 90%(2조4000억원, 57개)는 만기연장을 진행했다. 우발부채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 사업장에 대한 만기연장이 가장 많았다. 이 중 일부는 최근 유럽 경기침체 등으로 자산가치가 하락한 사업장에 대한 익스포저가 해소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해외부동산의 경우 1~2년 넘게 장기간 만기연장한 사업장들이 가장 많다. 시장상황에 따라 추가적으로 만기가 연장될 수도, 선순위 채권자의 권리실행 및 LTV(주택담보대출비율)요건 발동 등으로 만기가 축소될 수도 있다.

해외 부동산 투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대주가 구성되어 있어 채권자간의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존재하며, 선순위 채권자의 상환요청에 따라 실질만기가 축소되거나, 선순위 담보권 권리행사로 중후순위 대주 및 지분투자자의 손실이 크게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과거 선순위 대주들은 비교적 낮은 가격에 담보권 처분을 결정한 후 대부분 원금회수를 했지만 중후순위 및 지분투자자는 손실을 보는 사례가 많았다.

문제는 국내 25개 증권사가 투자한 해외부동산 채무보증과 대출 익스포저가 대부분 중후순위라는 점이다. 선순위 채권자가 주로 해외 금융기관으로 조성된 사업장에 증권사가 지분투자 및 중후순위로 참여하거나, 타 금융기관에 선순위 채권의 셀다운(sell-down)이 이루어진 것이다.


증권사가 투자한 해외부동산 중후순위 규모는 2조원(중순위 1조2000억원, 후순위 8000억원)으로 전체 해외 부동산 우발·대출 익스포저의 약 1/3을 차지하고 있다. 부동산펀드의 경우 상환순위에 대한 정확한 수치 집계가 어렵다.

이예리 나이스신평 선임연구원은 "국내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으로 회복되지 않고, 고금리 장기화로 해외 부동산 역시 본격적인 반등세를 나타내지 않으면서 과거 투자액이 여전히 회수되지 않고 있다"며 "부동산 경기 회복이 지연될 경우, 만기연장으로 인한 이자부담 증가와 사업성 하락 등으로 최종 손실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잠재부실 가능 익스포저 매년 1조원 만기도래 예상 = 부동산금융 잠재부실 가능 익스포저는 약 6조원으로, 2023년 6월말 부동산PF 고정이하여신인 1조2000억원보다 5배가량 크게 나타났다. 올해부터 오는 2026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자산은 연간 1조원에 달한다.

잠재부실 가능 익스포져는 해외지역이 3조원 내외로 절반 이상이다. 미국의 호텔, 미국·유럽의 오피스에 투자하는 부동산펀드에서 평가손실이 크게 발생하고 있다. 국내는 만기연장 등을 잠재 부실로 가정한 요주의이하 익스포저를 포함할 경우, 경기, 대구, 부산지역의 잠재 부실 가능 익스포져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기 지역에서 아파트 등 주거용 부동산PF 규모가 큰 가운데, 이들 사업장의 사업기간 연장 등 만기연장되는 비중이 높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이 선임연구원은 "분양을 통한 투자자금 회수가 지연되고 있는 현 시장상황을 감안하면, 이들 지역의 추가 손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부동산 경기 회복이 지연되어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거나 자금재조달이 원활이 이루어지지 않아 자산매각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사례가 확대될 경우, 실제 증권사가 부담해야 하는 손실액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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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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