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건강한 '노인 돌봄'을 위하여 | 2부-④ 건강한 노인돌봄, 요양보호사 '근로조건' 개선에서

15년 일하나 이제 시작하나 똑같이 최저임금 받아

2023-10-10 11:51:25 게재

장기근속장려금은 '그림의 떡' … '인권 존중'해야 양질 돌봄, 요양보호사 인력충원·전문성도 강화해야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 이용도 급격히 늘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노인돌봄을 담당하는 요양보호사는 크게 부족할 전망이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 중 요양시설과 방문요양센터(재가) 등에서 실제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23.8%에 그쳤다. 1/4만 노인돌봄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다.
유휴인력을 노동시장으로 이끌어내고 양질의 노인돌봄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과 근로조건 개선은 물론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조를 통해 재가(방문)돌봄, 주간노인돌봄센터, 시설돌봄(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을 만나 노인돌봄 노동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재가돌봄만 해온 이은희(69·가명)씨는 2009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는 A재가센터 소속으로 2011년 6월부터 한집에서 할아버지에 이어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박정옥(62·가명)씨는 2021년 6월부터 B데이케어센터에서 7명 동료 요양보호사들과 어르신 50여명을 돌보다 최근 센터의 폐업으로 그만뒀다.
강미숙(67)씨는 2008년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해 2013년부터 경기 성남시노인보건센터(위탁)에서 동료 요양보호사 70여명과 어르신 150여명을 돌보고 있다.
이들은 어르신들이 편안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요양보호사가 건강하고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돌봄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충청남도 아산시의 한 방문(재가) 요양보호사가 가정을 직접 방문해서 노인돌봄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이의종


#. "15년 동안 돌보는 어르신은 같고 애경사만 빼고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는데 재가센터만 3번 바뀌었다. 임금은 15년이 지나도 최저임금이다. 지난 6월 직전 재가센터에서 근속 7년이 넘어 장기근속장려금 10만원을 처음 받았지만 이제 못받는다. 센터는 부조리로 문제가 되자 사무장에게 팔아 상호와 대표자가 바뀌었기 때문이다."(이은희씨)

#. "최저임금을 주면서 멀티업무를 시킨다. 요양보호사 업무가 아닌 어르신들의 등·하원을 돕는 승합차 운전과 송영 업무를 해야 한다. 또한 조리원을 도와 어르신 식사를 위한 주방업무도 한다. 그러나 별도 보상은 없었다. 게다가 운전과정에서 사고가 나거나 어르신이 다치면 수리비와 치료비까지 부담하라고 한다."(박정옥씨)

#. "공립인데도 기준인력만 빠듯하게 쓴다. 야간에는 그마저 인력을 줄여 1인당 어르신 13명을 담당한다. 일대일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이 계시면 1명의 요양보호사가 25명을 맡아야 한다. 일상생활 돌보기도 벅차다. 이런 상황에서 정서적 지원은 언감생심이다."(강미숙씨)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요양원 신입 종사자들이 입소자를 이동시키는 방법을 교육 받고 있다. 사진 이의종


◆재가 요양보호사, 남자 어르신 기피 =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가구방문 노동자 인권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요양보호사 42.6%가 성희롱 피해를, 9.3%가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이은희씨는 돌보던 남자 어르신이 일찍 돌아가시고 부인인 할머니만 돌보고 있어 성희롱 피해 경험이 없다. 이씨는 "재가 요양보호사들은 남자 어르신들을 기피한다"면서 다른 재가돌봄 요양보호사 사례를 소개했다.

5년차였던 이 요양보호사는 돌보는 할아버지가 매일 "안아달라, 뽀뽀해달라"고 요구하자 돌봄을 중단했다. 할아버지의 딸이 "아버지가 상사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 다시 돌봐달다"고 요청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딸에게서 "그게 어때서요"라는 반응이었다.

재가센터에 이야기 했더니 "그것도 못참느냐"며 이용자 교체 등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이 요양보호사는 "인간 대접도 못받고 모멸감을 느껴서 요양보호사를 더이상 못하겠다"며 아예 다른 일을 배우고 있다.

박정옥씨는 B주간보호센터에 일한지 3개월쯤 2명의 남자 어르신으로부터 폭언과 성추행을 당했다.

센터장은 이용자가 빠질 것만 걱정하고 김씨를 보호하기는커녕 해고를 통보했다.

교장선생님이셨던 한 어르신이 김씨가 옳다는 탄원서를 쓰고 다른 어르신들의 서명까지 받아 센터장에게 전달했다. 결국 사건 당사자인 어르신들이 그만두면서 일단락됐다. 센터장이 "계속 같이 일하자"고 했다.

◆장기근속수당 10명 중 1명 꼴로 받아 = 몸이 불편한 노인들의 일상생활을 돕고 인지학습 등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대화를 나누며 정서적 지원을 하는데 임금은 어떨까.

이은희씨는 15년차인데 8월달 1일 3시간씩 주 6일, 26일 일하고 91만원을 받았다. 박정옥씨는 2년 3개월 근속인데 1일 8시간 1주 6일씩 한달 일하면 200여만원을 받는다.

강미숙씨 요양원은 3교대로 한달 야근 6일 정도하면 270만원을 받는다. 그나마 노조활동으로 신설된 식대 위험수당 호봉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이씨는 "요양보호사로 15년 일하나 이제 시작하나 똑같이 기본급은 최저임금"이라고 한탄했다.

강씨는 "나랑 같은 시기에 친구는 보육교사로 시작해 경력 15년이다. 아기냐 어르신이냐 대상만 다를 뿐이고 기저귀를 가는 등 비슷한 일을 하는데 친구는 월 300만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요양보호사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2013년 처우개선비를 도입했다가 2017년부터 '장기근속장려금'으로 변경해 지급하고 있다. 단 동일기관 소속이어야 한다. 한 기관에서 3년 이상 근무하면 6만원, 5년 이상은 8만원, 7년 이상은 10만원을 보험재정에서 매월 지급한다.

하지만 잦은 휴·폐업 등으로 실제 요양보호사 중 장기근속장려금을 받는 경우는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장기근속장려금을 받으려고 악착같이 일했다는 이은희씨는 지난 6월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받을 수 없다. 상호만 바뀌었을 뿐인데 근속기간 계산을 새로 해야 한다.

박정옥씨도 몇개월만 더 하면 B주간센터에 3년 이상 근속으로 월 6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부조리 문제로 폐업하면서 센터장이 딸의 이름으로 2호점을 오픈했다. 기존 어르신과 직원을 2호점에서 승계했지만 기관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요양보호사들은 3년 근속을 새롭게 쌓아야 한다.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 호소 =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돌보다보니 요양보호사들은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산다.

강미숙씨는 "요양보호사들은 보통 어깨 허리 손목 손가락 무릎 등 아픈 부위가 똑같다. 그러면 직업병"이라며 "하지만 요양보호사들이 보통 50~60대이다 보니 '그 나이되면 다 그런 거다'고 치부한다"고 말했다. 특히 시설돌봄의 경우 식사 때마다 어르신들을 휠체어에 태워서 식당으로 옮기고 다시 침대에 눕혀드리기를 반복한다. 또한 프로그램이나 목욕이 있으면 횟수가 늘어난다.

강씨는 "쉬는 날이 많든 적든 인력은 정해져 있어 동료 한명이 쉬면 어르신들 일상생활은 똑같아 노동강도가 쎄진다"고 말했다.

이은희씨가 돌보는 할머니 집에는 세탁기가 없다. 할머니가 세탁기에 세균이 많다며 세탁기가 고장난 뒤에 새로 사질 않았다. 더욱이 할머니가 설사를 자주해 매일 손빨래해야 한다. 이씨는 "손목이 엄청 아프다"면서 "지난 토요일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부황을 떴다"고 말했다.

◆7명 일하는데 6개월 동안 15명 그만 둬 = 요양보호사의 이러한 노동환경과 근로조건은 이직률이 높고 젊은 층이 기피하는 원인이다.

박정옥씨는 "주간센터에서 요양보호사를 시작할 때 '하루를 일할 수 있을까' '3일을 버틸 수 있을까' '일주일을 채울 수 있을까'하면서 버텼다"고 말했다. 박씨는 "입사 6개월 동안 요양보호사를 비롯해 돌봄노동자 15명이 그만뒀다"고 소개했다.

강미숙씨는 "반나절 일하고 갑자기 없어지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힘들고 일한 것에 비해서 급여가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은희씨는 "재가의 경우 파출부 취급을 받은데 차라리 청소일을 하는 게 낫다며 그만두는 경우가 가끔 봤다"며 "건물 청소 등은 정신적 스트레스는 덜 받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특히 재가 요양보호사는 '파리목숨'이라 예고없이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이씨는 "어르신 마음에 안들어서 또는 건강상태가 나빠져 요양원으로 옮기거나 돌아가시면 갑자기 일자리를 잃는다"고 말했다.

그는 "소속 재가센터에서 마땅한 새로운 이용자를 못 구하면 다른 수입구조가 없으니 다른 재가센터로 옮기게 된다"면서 "그러면 장기근속장려금은 물 건너가고 1년을 못 채울 경우 퇴직금도 못 받는다"고 말했다.

◆재가요양보호사 교육시간, 급여제공해야 = 양질의 노인돌봄과 지속적 가능한 돌봄노동을 위한 돌봄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강미숙씨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양보호사는 노인의 삶을 이해하고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도록 도와드리는 전문직"이라면서 "가치 평가를 통해 올바른 사회적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일한 대가로 100만원을 주면서 1000만원의 노인 돌봄서비스를 요구해서는 안된다"며 "기본급을 최저임금이 아닌 생활임금으로 삼아야 한다. 성남시 생활임금이 월 240만원이다"고 덧붙였다.

특히 강씨는 "어르신들이 원하는 것은 대화다. 현재 인력구조로는 일상생활 지원하기에도 벅차다. 정서적 지원과 요양보호사의 건강을 위해 인력충원이 시급하다"며 "사실 노인 학대나 방치도 많은 경우 인력부족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박정옥씨는 "이용자와 그 보호자에 대한 교육과 요양보호사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체계적인 전문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면서 "기관들의 자격조건을 높이고 노동권 준수와 부정수급에 대한 행정기관의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희씨는 "한 기관의 근속기간이 아닌 요양보호사로서 경력을 인정해 줘야 한다"면서 "그 연장선에서 장기근속장려금을 1년 단위로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가요양보호사의 교육시간을 급여제공시간으로 인정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창간 30주년 기획특집] 건강한 '노후 돌봄'을 위하여" 연재기사]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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