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재벌의 은닉계열사 더 없을까

2023-10-16 15:21:51 게재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1일 구광모 LG 회장에게 경고처분을 내렸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지정자료'를 제출하면서 계열사 2곳을 빠뜨렸기 때문이다. 지정자료는 공정위가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위해 재벌로부터 받는 계열사와 총수친족 등의 현황자료를 말한다. 그런데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4월 2개의 계열사 자료를 빼먹었다. LG 계열사와 사외이사가 3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회사들이다. 다만 구 회장 본인 또는 친족 보유회사가 아니고 매출이 작은 회사라는 점이 참작돼 '경고'로 마무리됐다.

재벌기업 계열사 자료 제출 누락 계속 벌어져

실제로 이번에 문제가 된 회사들은 그다지 큰 기업들은 아니다. 그렇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도 없다. 재벌기업이 지정자료를 제출하면서 계열사를 누락시키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 들어서는 줄을 잇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금호석유화학그룹의 박찬구 회장이 공정위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다. 검찰은 박 회장을 벌금 1억50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박 회장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면서 친족이 보유하는 회사 4곳을 누락시켰다는 혐의를 적용받았다. 처남들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이다. 보도에 따르면 박 회장은 자료를 보완제출하라는 요청을 공정위로부터 받았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8월에는 카카오가 다시 등장한다. 김범수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그룹 소속 친족회사 2곳과 친족 명단을 2019~2021년 자료를 제출하면서 내놓지 않은 것이다. 이에 공정위는 김 전 의장에게도 경고장을 보냈다.

이렇듯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재벌이든 젊은 재벌이든 막론하고 법적으로 반드시 제출하게 돼 있는 계열사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법을 너무 가벼이 여기고 쉽게 어기는 것 같다. 법을 경시하는 한국 재벌의 오래된 풍토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비슷한 일이 자꾸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단호한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

한국의 재벌들이 법을 경시하다 보니 각종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지난 13일에는 카카오와 카카오엔터 임직원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지난 2월 SM엔터 경영권 인수를 둘러싸고 하이브와 경쟁을 벌일 때 2400여억원을 투입해 SM엔터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 가격 이상으로 끌어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서였다고 금감원수사팀과 검찰은 판단했다.

이런 사건에 비해 계열사 자료제출은 얼핏 보아 사소해 보이는 측면도 있다. 그렇기에 재벌 총수가 그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그런 사소한 법규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준법경영도 정착될 수 있다. 일반 시민들이 교통신호 하나라도 잘 지켜야 교통법규 준수에 익숙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작은 법규라고 자꾸 어기다 보면 습관이 된다. 다른 중요한 법규에도 둔감해진다. 그래서인지 총수일가의 횡령배임 사건은 그치지 않는다. 공정위가 현장조사하러 나갔을 때 자료를 은폐하는 일도 허다하게 발생한다.

공정위 요청에도 자료 제출 않으면 의심해봐야

나아가서 재벌들이 계열사를 숨겨뒀다가 어떻게 악용할지 알 수 없다. 회사 자금을 합법 또는 비합법적으로 유출하는 통로로 활용할지도 모른다.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나 총수의 지배력 확장에 악용될 개연성도 있다. 특히 공정위가 요청했는데도 제출하지 않은 경우 그런 의심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다.

만약 다른 뜻이 없다면, 재벌과 그 지배자인 총수들은 계열사 모든 현황자료를 당국에 성실하게 제출해야 마땅하다. 이들 계열사를 활용하더라도 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정정당당하게 하면 된다.

자료은닉 사실을 찾아낸 공정위 직원들의 노고는 박수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은닉 사례가 더 없는지 찾아내야 한다. 지금까지의 사례로 미뤄볼 때 재벌 스스로 은닉 계열사를 신고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은닉 사실이 드러난 계열사들은 더 철저하게 감시할 필요가 있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