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커지는 국제유가, '상저하고' 최대 복병

2023-10-24 11:49:44 게재

주요국 석유 감산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겹쳐

국제유가 급상승하면 한국 물가·내수·수출에 직격탄

IMF의 경고 "저성장 대표국 일본보다 성장률 낮아져"

국제석유가격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9월 이후 다소 진정세를 보이던 국제유가가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이 격화되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가 급상승하면 한국 경제엔 직격탄이다. 석유류 소비자가격만 올리는 게 아니라 연동된 생산자물가를 끌어올린다. 내수는 물론 수출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6~7월 2%대로 내려 앉았다가 다시 3%로 올라선 물가에도 악영향을 준다. 물가 기조가 흔들리면 한껏 높아진 금리를 정상화시키기 어렵게 된다. 국민들은 고물가와 고금리에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24일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불안한 중동정세가 국제유가는 물론 한국경제의 불확실성까지 끌어올리는 요인"이라고 우려했다.

◆'상저하고' 전망, 기대에 그칠까 = "한국경제가 지난 1년간 힘든 시기를 지나 '긴 터널의 끝'이 보이는 지점에 왔다" 지난 7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3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브리핑'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한 말이다. 추 부총리는 최근까지도 이런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물가 역시 10월에는 2% 후반대로 진입하고 연말까지는 2% 초중반대에서 안정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었다.

하지만 돌발변수가 생겼다. 격화된 중동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가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무력 충돌, 이란의 원유 수출 중단, 호르무즈 봉쇄 등으로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란이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35%를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통상적인 전쟁 프리미엄 20달러를 크게 웃돌면서 (유가가) 최고 150달러까지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배럴당 150달러 육박할 수도 = 국제금융센터는 지난 16일 이번 사태에 대한 '시나리오별 영향 점검' 보고서에서도 "사태의 특이성을 감안할 때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이란이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35%를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통상적인 전쟁 프리미엄 20달러를 크게 웃돌면서 (유가가) 최고 150달러까지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사태가 단기전에 그칠 경우에는 연말까지 100달러 이내에 머무르고, 전선이 제한적으로 확대될 경우에는 100달러를 다소 상회하는 수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는 전개 방향을 가늠하기에 매우 유동적"이라며 "이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한편 그로 인한 영향을 지속해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도 이날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10월말 종료예정이었던 유류세 인하조치를 연말까지 재연장키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10월말에는 유류세 인하조치를 종료한다는 것이 내부 분위기였지만, 이번 사태로 없던 일이 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만큼 정부도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말인 셈이다.

◆90달러 돌파한 국제유가 = 수입 원유가격의 기준인 두바이유는 7월까지만 해도 배럴당 70달러선을 오갔다. 하지만 산유국들의 감산 영향 등으로 지난 8월 배럴당 86.46달러까지 올랐다.

여기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으로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지면서 이날 오전에는 배럴당 90.08달러로 다시 90달러선을 돌파했다.

국제유가가 오르자 수입물가도 영향을 받았다. 한국은행이 지난 17일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를 보면 9월 수입물가는 8월보다 2.9% 상승했다. 수입물가는 통상 한두 달의 시차를 두고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물가 상승 요인은 더 있다. 공공요금 인상 여파다. 서울 지하철 기본요금은 지난 7일부터 1250원(교통카드 기준)에서 1400원으로 인상됐다. 앞선 8월엔 서울 시내버스 기본요금이 1500원으로 300원 인상됐다. 올 1월엔 가정용 상수도 사용요금도 20.8% 인상됐다. 전기요금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5월까지 5차례에 걸쳐 약 40% 인상됐다. 공공서비스 요금은 시차를 두고 누적되면서 국민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취약계층에 더 큰 영향 = 문제는 이같은 경제상황이 취약계층에 더 타격을 준다는 점이다.

물가 안정기조가 유지되어야 금리인하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지면 금리인하는 더 요원한 일이 된다.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0.50%인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리기 시작해 현재 3.50%까지 올린 상태다. 은행권 대출금리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금리 상승으로 이자 상환 능력이 낮은 취약계층은 직격탄을 맞았다. 2분기 말 현재 국내 가계대출 차주 수는 모두 1978만명, 이들의 전체 대출 잔액은 1845조원에 이른다. 이중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최대한 대출을 끌어 쓴 다중채무자는 448만명이다. 1분기보다 2만명 늘었는데, 분기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다. 전체 가계대출자 4명 중 1명이 대출과 상환에 한계를 맞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의 전체 대출 잔액과 1인당 평균 대출액은 각 572조4000억원, 1억2785만원으로 추산됐다. 다중채무자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61.5%다. 최저 생계비 정도를 빼고 거의 모든 소득을 원리금 상환에 써야 하는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과 같은 1.4%로 유지하면서도, 내년 전망치는 기존 2.4%에서 2.2%로 하향조정했다. IMF는 지난해 7월부터 5차례 연속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반대로 일본의 올해 성장률은 1.4%에서 2.0%로 0.6%p 상향 조정했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일본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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