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1년, 교훈 얻지 못한 대한민국

2023-10-27 11:16:20 게재

대책마련 호들갑에도 오송참사 등 비극 잇따라

유가족·전문가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못한 탓"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10.29 이태원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참사 두달 만에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에서 화재참사가 발생해 5명이 목숨을 잃었고, 홍수 특보가 내려졌던 올해 여름에는 오송지하차도 참사로 14명이 사망했다. 정부가 이태원참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비극적인 참사를 막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대형재난을 막기 위해 보다 정교한 예측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에서는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못한 것에서 참사 반복의 원인을 찾는다.

◆속도 못내는 제도 개선 = 정부는 이태원참사를 계기로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참사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종합대책 이행률은 여전히 10%대에 머물러 있다. 우선 정부가 법령개정을 추진한 법안 19건 중 12건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특히 인파사고 재발방지와 직접 관련된 △주최·주관이 불명확한 축제·행사에 대한 지자체의 안전관리 의무 강화 △지자체장 재난안전 관련 교육 의무화 등은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여야가 이태원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등을 놓고 대립하면서 지난달 20일에야 겨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시·도지사에게 재난사태 선포권을 부여하거나 △인파사고를 사회재난 유형에 포함하는 내용 역시 재난안전관리기본법 개정 사항이다. 이 밖에도 △재난의료지원팀(DMAT) 구성·운영 근거 마련 △응급의료종사자의 응급처치 및 의료행위에 대한 업무상 과실 감면 등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 사안도 제자리걸음이다.

근거 법률이 만들어지지 않은 탓에 경찰의 인파 안전관리 매뉴얼,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연장·경기장 위기관리 표준매뉴얼 개정, 행정안전부의 다중이용시설 위기상황 매뉴얼 표준안 등이 개정되지 못한 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지자체 "책임 과도하다" 반발 = 지자체 반발도 법안 개정 지연의 원인 중 하나다. 안전관리를 책임져야 할 대상에 '지역축제'를 포함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지자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실제 이태원참사가 벌어진 지역인 서울 용산구 공무원들 상당수가 '핼러윈 안전관리는 구청 업무가 아니다'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구 공무원들은 지난해 참사 때도 개인들이 모여 발생한 사고까지 자치구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을 비롯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현장 대처에 나선 일선 공무원들만 탓하는 것이 반복돼 이런 반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본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이태원참사를 계기로 자치단체장의 재난안전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지자체 현장 공무원들에게 과도하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불만이 쌓이고 있다"며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아무리 새로운 대책을 마련해도 이를 추진해 나갈 동력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감사원, 참사 1년 만에 감사 착수 = 이 같은 상황은 이태원참사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참사 관련 책임자 처벌은 더디기만 하다. 감사원 감사만 하더라도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예비감사에 착수했을 정도다. 아직까지 감사의 구체적인 범위와 대상조차 정하지 않은 셈이다. 또한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1년 가까운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는 2014년 세월호참사 당시 13일 만에, 지난여름 새만금 잼버리 파행 때는 행사가 끝난 지 나흘 만에 참사에 착수한 것과 비교된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참사 1주기가 다가와서야 감사를 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가식적이고 형식적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진상규명 노력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특별법)'이 지난 6월 말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 4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지정됐다. 이후 지난 8월 말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의결됐지만 여전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위원회 등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참담했던 기억을 뒤로 한 채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이렇게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도, 처벌받은 이도 없다"며 "정부와 여당은 국민 159명이 희생당한 참사에 대해 반성하고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이를 왜곡하고 국민의 기억에서 참사를 지우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국회와 정부의 책임을 따져 묻고 있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안전해지려면 근본적으로 국가 시스템의 전반적 수준과 국민들의 안전의식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결국 제도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의미다.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자체와 정부부처 등이 합심해 방역활동을 했던 것처럼 다양한 사회적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위기를 예측하고 대응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 국회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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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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