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태원참사

2023-10-27 10:53:15 게재

책임자 형사처벌 답보 상태

주요 피의자 줄줄이 보석

감사원, 이제야 기초조사

"1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지만 결정권 없는 실무자에만 책임을 지우고 실질적 책임자들은 면피성 발언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진상규명은 재발 방지 대책의 초석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특별법뿐이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의 책임소재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데 대한 답답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실제로 국회가 참사 책임을 물어 탄핵소추했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7월 헌법재판소에서 청구가 기각되면서 복귀했다. 감사원은 이제야 '재난·안전관리체계' 감사를 위한 자료 수집 등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연내 1심 판결 어려울 듯 = 경찰·자치단체 관계자들의 형사책임을 가리는 재판이 그나마 진행되고 있는 진실규명 작업이다.

현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이태원 참사 관련 재판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박희영 용산구청장(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정보경찰(핼러윈 보고서 삭제 혐의) △해밀톤 호텔 대표(불법 증축) 등이다.

하지만 재판 속도가 느려 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흐른 지금까지 책임자 누구도 처벌 받지 않았다. 유사한 전례가 없는데다가 주요 피고인들이 범의나 과실을 부인하고 있어 재판이 지연된다. 특히 피고인들은 '참사 최종 책임자는 윗선'이라며 이구동성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법조계에서는 가장 속도가 빠른 해밀톤호텔 건축법 위반 사건 정도만 연내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매달 1~2회씩 진행하는 경찰 정보라인과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등의 피고인의 경우 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관련자들 책임회피에 급급 = 업무상과실치사,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무전만으로 참사를 조기에 인지해 대처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참사 5분 만에 경찰 무전망(용산서 자서망)에 비명 소리가 계속 나왔다고 반박한다.

이 서장측은 또 "다중 운집 행사 관리에 필수적인 경찰관 기동대는 전적으로 서울경찰청장의 소관"이라고 주장한다. 서울경찰청장의 업무상 과실이라는 의미다.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도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제작됐던 경찰 정보 보고서를 통해 사고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혐의를 부인한다. 정보 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일도 규정에 따른 올바른 직무수행이라는 입장이다.

박희영 구청장 등 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주최가 없는 행사로 지자체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인파 관리 권한은 경찰에 있어 자신들에게 책임을 물을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 행정안전부, 서울시가 정한 인파 관리 지침의 범위를 벗어나 계획을 세울 수 없어 지침에 따라 시설물 안전 관리에 집중했다고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경찰 피의자 중 최고위급인 김광호 서울청장은 검찰 수사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 기소 여부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참사 당일 서울청 상황실에 근무한 류미진 전 인사교육과장 등도 검찰 수사 단계에 있다.

재판이 길어지자, 구속됐던 주요 피의자들은 줄줄이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이 전 서장과 송병주 전 112치안종합상황실장, 박 구청장, 용산구청 최원준 전 안전재난과장, 서울경찰청 박성민 전 정보부장, 용산경찰서 김진호 전 정보과장이다.

◆유족·시민단체, 추가조사 요구 = 사정이 이렇자 시민사회단체들은 진상규명을 위한 추가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보고회를 열고 '이태원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30대 과제'를 발표했다.

이날 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최희천 박사는 "기존 조사는 현장에 각 기관의 담당자들이 몇 명이 있었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등 기초적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못했다"며 "참사 과정 중 위법행위를 부각하거나 입증할 수 있는 특정 주제들에 치중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형사적 책임 유무에만 집중한 기존 경찰 조사와 국정조사만으로는 왜 참사가 일어났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설명할 수 없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며 "추가 조사는 모든 기관의 활동을 '피해 최소화'라는 일관된 관점에서 확인하고 재난안전법상 '예방·대비·대응·복구'의 재난관리 개념과도 부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답답한 유족과 생존자들은 "기억 않는 참사, 반복될 수 있다"며 자신들의 기억 속 희생자와 그날을 기록한 책을 출간했다.

희생자 김의현씨 누나 김혜인씨는 "왜 매년 하던 핼러윈 인파 관리를 하지 않았고, 왜 사고 초기 신고 전화를 무시했고, 왜 사고 이후 처리 과정이 불투명한지, 왜 책임자들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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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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