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사기는 '나도 모르게' 당한다

2023-11-10 11:06:00 게재
유명 국가대표 운동선수가 관련된 사기극에 관심이 집중됐다. 취재원이나 지인들을 만나면 십중팔구 이 주제로 대화가 시작된다. 그는 국제대회 메달리스트인데다가 각종 방송에 등장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재혼하겠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상대가 이성이 아닌 동성이었다는 점, 과거 범죄이력이 있는데다 범행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다. 알아보니 국가대표의 피앙세였던 이는 다수 형사사건에 피고인으로 이름을 올렸고 채무관계 등으로 민사재판을 받기도 했다. 결국 국가대표는 구속된 피앙세와 대질까지 했고 지금 공범으로 지목된 상태다.

이번 사건은 공범여부를 떠나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요소를 갖췄다. 어이없는 사기극에 일부는 눈살을 찌푸리고, 공인으로서 사리분별을 하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혹자는 "체육인들이 세상을 너무 모른다"며 엘리트 체육을 비판한다. 그런데 수많은 사기사건 피의자와 피해자들을 보아온 기자 입장에서는 별 감흥이 없다. 한발 뒤에서 보면 농도에 차이가 있을 뿐 여느 사기극과 별반 차이가 없다.

'사기결혼' '전직 대통령 비자금' '블랙머니' 등 말도 안되는 사기극들은 피해자의 심리를 교묘히 파고드는 재료들을 가지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보이스피싱이나 리딩방은 물론 상대방을 만나지도 않았는데 '사랑한다' '결혼한다'며 거액을 송금하는 스캠피싱까지 모두 같다. 모르는 이들에게 금품을 넘기는 경우도 있지만 친족은 물론 지인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은가.

사기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지역주택조합에 돈을 날린 법조인도 있고, 보이스피싱을 당한 서울대 교수도 있다. 최근에는 경찰관이 '대부업에 투자하라'는 탈북민에게 수억원을 뜯기기도 했다. 사기범의 마수에 들어가면 아무리 설득을 해봐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리는 주변인과 관계를 끊기도 한다.

사기극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나도 모르게"라고 한다. 대부분 사기극은 한번에 성공하지 않는다. '설계'라는 준비과정이 철저할수록 '작업'은 피해자 주변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뇌와 척수까지 파고든다. 사기피해를 뒤늦게 알아차려도 "피해를 보전해줄게"라는 사기범의 회유에 다시 넘어간다. 이제 2차피해를 입거나 공범이 되는 단계다. 기획부동산이나 유사수신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흔히 사기피해자를 '멍청하다'고 책망한다. 국가대표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더 큰 피해자가 나오지 않고 중단됐다는 데 안도할 뿐이다. 손가락질 하는 당신도 방심하면 안된다. 그 손가락이 본인을 향할 수도 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오승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