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가공식품 '꼼수' 가격 인상에 곤혹스런 정부

2023-11-14 10:53:52 게재

가격인상 통제, 전부처 나서자, 식품업계 용량·갯수 줄이고 가격은 그대로

공정위 앞세워 대책 마련 고심하지만 … 고시개정만 수개월, 실효성 난망

고물가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는 정부가 곤혹스럽다. 물가 자체가 시장에서 확정되는 것이어서 제재수단이 마땅치 않아서다. 업계 간담회 등으로 우회 압박하고 있지만 큰 실효성이 없다. 특히 식품업계를 중심으로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용량이나 개수를 줄이는 눈속임 상술까지 성행하고 있다.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다.
치솟는 먹거리 물가 | 정부가 빵과 우유를 비롯한 농식품 28개 품목의 물가를 매일 점검하기로 한 가운데 12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빵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소비자가 상품 '단위가격' 변화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마저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당장 관련 고시 개정에만 수개월이 걸린다. 제재방안도 마땅치 않다. 14일 경제부처 관계자는 "정부가 시장에서 확정되는 물가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이 별로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면서 "결국은 편법이나 꼼수 가격인상을 제재하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슈링크플레이션 성행 조짐 =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을 줄인다는 의미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말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기업이 제품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제품 크기·중량을 줄여 사실상 가격을 올리는 상술을 말한다. 실제 일부 제품은 이미 시장에서 '꼼수 가격인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씨제이(CJ)제일제당은 이달 초부터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간편식품 '숯불향 바베큐바'의 중량을 280g에서 230g으로 줄였다. 가격은 봉지당 5600원으로 같다. g당 가격은 20원에서 24.3원으로 21.5% 올랐다.

해태제과는 올해 초 고향만두와 고향김치만두 가격을 10% 인상한 데 이어 지난 7월에는 고향만두 용량을 한 봉지에 415g에서 378g으로, 고향김치만두는 450g에서 378g으로 줄였다. 오비(OB)맥주는 지난 4월 카스 맥주 묶음 팩 제품의 캔당 용량을 375㎖에서 370㎖로 줄였다.

동원에프앤비(F&B)는 지난달부터 '양반김' 중량을 봉지당 5g에서 4.5g으로 줄였지만, 가격은 700원으로 유지하고 있다.

농심도 양파링 한 봉지를 84g에서 80g으로 줄였고, 오리온은 개당 50g이던 핫브레이크를 45g으로, 롯데웰푸드는 72g이던 꼬깔콘 한 봉지를 67g으로 줄였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7월 델몬트 오렌지·포도주스의 과즙 함량을 기존 100%에서 80%로 낮췄다.

◆꼼수인상은 글로벌 현상? = 다른 나라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 100년 역사를 가진 과자 '오레오'가 슈링크플레이션 도마에 올랐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오레오가 사상 최대 슈링크플레이션 스캔들에 휩싸였다"고 보도했다. 논란을 제기한 소비자는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이베리아에 사는 셰인 랜소넷(47). 함유된 크림의 양이 줄었다는 주장이었다. 북미 최대 커뮤니티 레딧의 슈링크플레이션 포럼에도 오레오 크림의 양이 줄었다는 글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오레오의 오랜 팬들이 경쟁사 제품인 '하이드록스'를 홍보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오레오는 매년 100여개국에 약 400억개가 팔려 40억달러(약 5조3000억원) 규모의 글로벌시장을 갖고 있다.

또 외신에 따르면 펩시코가 생산하는 스포츠음료 게토레이의 경우 미국에서 판매되는 1병 용량은 원래 32온스(1온스=28.3g)였으나 지난해부터 28온스로 줄었다. 미국 소비자보호단체 컨슈머월드에 따르면 과자 도리토스 한 봉지 용량도 9.75온스에서 9.25온스로 줄었다. 이는 칩 5개가 빠진 수준이다.

영국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2017년 사이 영국에서 판매된 2529개 제품에서 용량이 줄어든 사실이 확인됐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해외에서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각종 대책도 줄을 잇고 있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9월 기업들에 제품 용량에 변화를 주는 경우 이 같은 사실을 고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도 제품 용량을 몰래 줄이면서 포장재는 그대로 두는 과대 포장을 금지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이미 제품 용량과 함량에 변화가 생길 경우 이를 제품 외관에 6개월간 표기하도록 하는 법이 시행 중이다.

◆공정위도 대응방안 검토 = 소비자 정책 총괄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도 슈링크플레이션 관련 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정위는 상품의 단위가격 변화를 소비자가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추가 제공하는 등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가 가격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산업통상자원부 고시(가격표시제 실시요령)에 따라 대형마트 등이 이미 상품 단위가격을 표시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 고려한 조치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가 상품의 단위가격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할지 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도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될지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부처 관계자는 "관련 고시를 개정하고 시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수개월이 걸린다"면서 "대책이라고 해야 이미 시행 중인 단위당 상품가격을 소비자들이 좀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 정도인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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