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현장 리포트

친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에 가해지는 매카시즘

2023-11-21 11:26:55 게재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대응을 두고 국제사회의 입장이 첨예하게 나뉜 가운데 미국에서도 친이스라엘과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각자의 의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입을 막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가 진행되면서 매카시즘 재연의 우려까지 낳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대한 보복이라는 명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지금까지 1만5000명 이상의 가자 주민들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잔해에 묻혀 아직 수습되지 못한 시신까지 더하면 사망자 수는 2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병원과 학교 등 민간인 시설을 가리지 않고 폭격하면서 사망자의 70% 가까이가 아이들과 여성들인 상황이다. 즉각적인 휴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스라엘 공격반대가 인종혐오로 해석돼

이런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을 미국정부는 전폭 지지하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많은 미국인들은 가자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이스라엘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학살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항의시위에 유대계 미국인들 또한 많이 참여하면서 이스라엘정부에 대한 반대가 반유대인 인종혐오(anti-semitism)라는 우파의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 좋은 예가 지난달 뉴욕의 그랜드센트럴역을 기습점거해 시위를 벌인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Jewish Voice for Peace)' 소속 유대인들이다. 이들은 체포를 불사하고 "우리의 이름으로 (팔레스타인을) 공격하지 마라"고 외쳤다.

이런 여론에도 불구하고 미연방의회는 최근 유일한 팔레스타인계 하원의원인 라시다 탈리브 의원에게 징계 중 하나인 '견책(Censure)' 처분을 내렸다. 탈리브 의원이 소셜미디어(SNS)에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올린 영상이 반유대주의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다. 영상에 나오는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의 대표적인 구호인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해방될 것이다'라는 구호가 요르단강에서 지중해 사이에 있는 유일한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을 없애고 유대인 인종청소를 선동한다는 것이다. 문구 자체에 직접 이스라엘이나 유대인을 공격하는 내용이 없지만 친이스라엘 측의 자의적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반면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은 그 구호가 수십년 간 고통과 억압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해방돼 그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면서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것이지, 현 이스라엘의 정책처럼 특정인종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탈리브 의원은 '이스라엘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유대인 전체에 대한 혐오로 낙인 찍는 것은 위험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징계를 피하지 못했다.

이러한 입막음 시도는 영향력 있는 인사뿐 아니라 일반시민들, 특히 다양한 의견이 토론돼야 할 대학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무고한 가자 주민 학살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인 혐오표현으로 규정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표현이나 문구를 검열, 삭제하고 학내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콜럼비아대 등 일부 학교에서는 아예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학생조직들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플로리다주에서는 주지자가 직접 나서 플로리다의 모든 공립대학교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그룹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인권단체들은 이런 조치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며 즉각 플로리다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번 사태 이전에도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에 대한 반감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진행속도가 훨씬 빨라서 1950년대 악명 높았던 매카시즘의 복귀를 염려할 정도다. 팔레스타인 지지성명이나 집회에 가담하는 학생들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작성되고, 이들의 신변에 대한 위협과 징계, 해고 등 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압력과 불이익이 가해지고 있다.

뉴욕대 로스쿨 학생회장인 리나 워크맨은 이스라엘의 불법점령에 맞선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지지한다는 공개서한을 학생들에게 보냈다가 엄청난 곤경에 빠졌다. 흑인이자 성소수자인 리나는 인종과 성소수자 혐오가 가득 찬 위협적인 메시지를 수없이 받았을 뿐 아니라 예정됐던 대형로펌의 취업을 취소당했고 현재 학교로부터 징계 조사를 받고 있다. 리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개인적으로 당하고 있는 고통도 힘들지만 자신에게 가해지는 위해가 '칠링이펙트(chilling effect)', 즉 비슷한 처지에 놓일까 두려워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위축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올 것을 염려한다고 밝혔다.

불행히도 리나가 예외는 아니다. 하버드대 학생연합단체 '하버드 팔레스타인 연대위원회'는 하마스 테러가 진공상태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수십년 동안 자행된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게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냈다. 이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소수 백인정권이 흑인들을 대상으로 행한 악명 높은 인종분리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는 국제법상 범죄행위다. 학생들의 주장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등을 비롯한 여러 인권단체들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주민 정책을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비판해온 바 있다.

하지만 성명서가 공개된 후 학생들은 엄청난 공격에 직면했다. 월가의 유력기업과 후원자들이 학교측에 학생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징계하지 않으면 거액의 기부금을 중단하겠다는 압력을 넣었다. 연관된 학생들의 이름과 심지어 가족사항이 온라인에 공개되고, 한 대형로펌 역시 연루 학생들에 대한 채용 취소를 통보했다. 일부 기업들은 반유대인 학생들의 취업을 불허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혔다. 한 보수단체는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펜실베이니아대 등 대학캠퍼스 앞에서 이른바 '반유대주의자' 학생들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는 대형전광판이 설치된 트럭을 세워두는 위력시위까지 벌였다. 미 상원은 만장일치로 '반이스라엘, 친하마스' 학생들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타깃은 학생으로 그치지 않고 있다. 코넬대 역사학과 러셀 릭포드 교수는 집회에서 팔레스타인 저항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또 다른 콜럼비아대 교수는 하마스의 공격을 모호하게 표현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해고 요구와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해고·입사취소 등 생계 끊는 불이익

미국의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을 지원하는 법률단체인 '팔레스타인 리걸(Palestine Legal)'에 따르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인 표현의 자유가 팔레스타인 문제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이전에도 빈번했지만 10월 7일 이후 특히 더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불과 2주 동안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 해고 등 부당행위에 처해진 사건이 300여건 넘게 접수됐다고 한다. 예년의 경우 이는 한 해 동안 들어오는 전체 사건 분량과 맞먹는 엄청난 증가 속도다. 또 하나 두드러지는 특징은 직장 동료들과의 대화나 소셜미디어 포스팅 때문에 해고되거나 징계조사에 회부되고, 입사를 취소당하는 등 사람들의 생업을 타깃으로 삼는 경향이라고 한다. 대학뿐 아니라 일반 기업과 문화 예술계 등 사회 곳곳에서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불이익을 겪고 있다.

팔레스타인 리걸 소속 변호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공범이 되는 것이라 생각해 탄압에 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고 말을 맺었다.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