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도의 중동 톺아보기

국제사회라는 말 부끄럽지 않은 팔레스타인 해법을

2023-12-11 11:51:18 게재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다시 팔레스타인문제가 급부상했다. 사실 팔레스타인문제는 최근 몇년 동안 아랍 세계의 현안에서조차 뒷전으로 밀려 있었다. 수십 년간 열심히 지원해도 민생고를 해결하지 못한 채 부패하기만 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불만을 표하며 이스라엘과 먼저 평화를 이루어 눈앞의 위협인 이란에 대응하려 했다.

하마스 기습에 허찔린 '네타냐후 독트린'

물론 아랍국가들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2년 베이루트 아랍 정상회담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로 아랍국가들은 다음과 같은 골자의 팔레스타인문제 해법을 채택했다.

이스라엘이 시리아 골란고원을 포함해 1967년 6일 전쟁에서 점령한 모든 영토와 레바논 남부 점령지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유엔총회 결의안 194호에 따라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하고, 1967년 전쟁에서 점령한 팔레스타인 영토(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받아들이면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제안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 정책을 택했다. 아랍국가와 먼저 관계를 정상화하고 가장 마지막에 팔레스타인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먼저 아랍국가와 평화 협정을 맺어야만 한다고 했다. 이른바 '네타냐후 독트린'이다.

지난 9월 22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네타냐후는 "아랍 먼저, 팔레스타인은 나중에"라는 네타냐후 독트린이 성공하고 있다면서, 더 많은 아랍국가와 평화를 이루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가 더욱더 실현 가능하리라고 역설한다.

네타냐후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미국과 협력해 2020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수단 모로코 등 4개 아랍국가와 4개월 만에 '아브라함 협정'이라는 역사적 평화 협정을 체결했고, 이제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 정상화라는 벅찬 희망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역사적인 평화라는 더 극적인 돌파구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평화는 아랍-이스라엘 분쟁을 종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아랍국가도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도록 장려할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평화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예루살렘과 메카, 이삭의 후손과 이스마엘의 후손이 폭넓은 화해를 촉진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엄청난 축복이다.

그러나 네타냐후의 접근법은 하마스의 기습으로 역풍을 맞았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수교협상을 중단했다. 하마스는 '선아랍 후팔레스타인'이라는 네타냐후 독트린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살만 사우디 국왕은 팔레스타인문제 해결 없이 이스라엘과 수교는 불가능하다고 오래전에 지침을 내린 바 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수교하려면 사우디가 만족할 만한 팔레스타인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유리한 방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공개적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마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아랍 세계에서 하마스는 골칫거리다. 이슬람주의에 기반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지지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개인의 이슬람 신앙과 이슬람 신앙을 바탕으로 한 나라는 전적으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우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고 한 것은 하마스가 아니라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뜻이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하마스를 굳이 싫다고 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민심 때문이다. 말로만 싸우는 아랍국가들과 달리 직접 이스라엘과 싸우는 하마스를 아랍 민심이 지지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여러 아랍국가는 민심의 동요에 민감한 반응이다. 특히 아랍과 순니 무슬림 세계에서 맏형 역할을 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왕정이 팔레스타인문제 해법을 잘 알고 있으니 국민 개개인이 저마다 나서서 이러쿵저러쿵하지 말라고 여론 주도층을 통해 조용히 알리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그만큼 민감한 주제다.

팔레스타인 해법 논의 본격화될 듯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마무리되면 국제사회는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문제 해법을 고민할 것이다. 이미 팔레스타인 독립이라는 주제를 두고 국제사회가 입을 떼기 시작했다.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현재 미국 내 반이스라엘 여론이 놀라울 정도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가자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면서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바이든행정부에 대한 민심은 무척 비판적이다. 11월 1일부터 21일까지 갤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52%), 젊은층(18~34세, 67%), 비백인(64%), 민주당 지지층(63%)이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반감을 표시한다.

심지어 유대계 젊은이들도 이스라엘에 비판적이다. 반이스라엘 뉴스를 걸러서 보도하는 기존 미디어 매체와 달리 틱톡이 전하는 적나라하게 잔혹한 팔레스타인 공습 피해자 사진으로 반전, 반이스라엘 감정이 크게 높아졌다.

지지받지만 현실화 어려운 '두 국가 해법'

팔레스타인문제의 교과서적 해법은 '두 국가론'이다. 말 그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이웃으로 공존한다. 그럼 국경은? 오랫동안 국제사회는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해 6월 10일 이스라엘의 완승으로 끝난 제3차 중동전쟁, 즉 6일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여겨 이스라엘이 이때 점령한 땅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늘날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를 팔레스타인에 돌려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양국의 국경을 1967년 6월 4일로 되돌린다.

그런데 하마스의 근거지 가자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요르단강 서안과 예루살렘에 들어선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이스라엘이 순순히 물러날까?

물론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2005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21개 불법 정착촌에서 9000명의 불법 정착민을 퇴거시킨 적이 있다. 하지만 서안(약 46만명)과 동예루살렘(약 22만명)의 불법 정착민은 현재 모두 70만명에 이른다. 게다가 가자에서 이스라엘군이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을 이주시킬 때 상황은 전쟁과 다를 바 없었다. 나가지 못하겠다고 버티면서 자국군에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의 80배에 달하는 사람들을 조용히 내보낼 수 있을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 포기할까? 독립 팔레스타인국가도,이스라엘도 모두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으려 한다. 두 국가 해결안은 교과서적인 해법으로 국제사회가 지지하지만 현실적으로 해결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예루살렘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해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고 두 나라로 나누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최근 교황 프란치스코가 선호하는 방식이다.

아니면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한측이 전부를 차지하는 비현실적인 방법이 있을 것이다. 또 아예 둘 다 세속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어 함께 사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유대국가를 만들겠다고 지금까지 달려온 시온주의자들이 받아들일 리 없다. 그렇다면 아예 가자는 이집트가, 요르단강 서안은 요르단이 가져가는 방법은? 이집트나 요르단 모두 고개를 내젓는다.

전쟁이 한창이지만 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팔레스타인문제를 두고 여러 말들이 오간다. 모두 말은 그럴싸하게 하지만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나서지 않았기에 팔레스타인 비극이 75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국제사회가 제대로 해결하길 바란다. 국제사회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도록.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