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중단 위기 놓인 뉴욕시 '노숙자쉼터권'

2023-12-12 11:40:57 게재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

뉴욕시에는 '노숙자쉼터권 (Right-to-Shelter)'이라는 노숙자 보호정책이 있다. 갈 곳 없는 노숙인이 원하면 정부는 의무적으로 쉼터를 제공해야 한다. 미국 전역에서 유일하게 뉴욕시에만 있는 진보적인 정책으로 1981년 처음 시행된 이후 40년 넘게 계속돼 왔다. 하지만 최근 이 노숙인권리가 제한될 위험에 처해졌다.

지난 10월 뉴욕시는 노숙자에게 쉼터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한시적으로 중단할 수 있게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은 지난해 봄부터 텍사스 등 국경지대 주들이 난민들을 버스에 실어 대거 뉴욕으로 보내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노숙자쉼터권을 일시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숙자에게 안전한 쉼터를 보장해야 하는 시정부의 의무를 안전하고 적절한 쉼터를 유지할 수 있는 재원과 인력이 부족한 경우 유예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것이다.

뉴욕시만 가지고 있는 대표 진보정책

뉴욕시의 노숙자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쉼터권은 1979년 제기된 소송으로 시작됐다. 1970년대 경제위기로 뉴욕시의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증가했다. 비싼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거리로 쫓겨난 사람들은 열악한 생활뿐 아니라 길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또한 많은 노숙인들은 정신건강 면에서도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예를 들면 1965년에서 1977년 사이 10만명 이상의 환자가 주립 정신병원에서 퇴원했는데, 그중 거의 절반이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자가 됐다.

이런 사회문제에 대해 정부의 더 적극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소송이 1979년 뉴욕시와 주정부를 상대로 제기됐다. 역사상 최초로 노숙인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집단공익소송이었다. 당시 50대 노숙인 로버트 칼라한이 집단소송의 대표원고로 나서고 당시 뉴욕주지사 휴 캐리가 피고로 지명된 '칼라한 대 캐리 (Callahan v. Carey)'로 알려진 이 소송에서 원고들은 뉴욕주 헌법을 주장의 근거로 들었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보살핌과 지원은 공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에 의회 결정에 따라 뉴욕주 및 그 하위기관은 반드시 보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한 뉴욕주 헌법에 따라 뉴욕시는 노숙인에게 쉼터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받아들여 1981년 최종적으로 뉴욕시와의 합의안이 나왔다.

안타깝게도 칼라한은 소송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거리에서 숨을 거뒀다. 하지만 이 역사적인 소송으로 뉴욕시의 모든 노숙인들이 쉼터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본권이 확립됐다. 이로써 더 많은 노숙인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뉴욕시는 노숙인 문제에 대해 미국에서 유일하게 진보적인 정책을 가지게 되었다. 매사추세츠주가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뉴욕시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쉼터가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있는 가족 단위 노숙인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제공되고 있어 뉴욕시 정책과는 구별된다. 워싱턴DC도 비슷한 정책이 있지만 노숙인 쉼터는 혹한의 날씨에만 한시적으로 제공된다.

보수 시장들 중단 시도에도 법원이 제동

뉴욕시는 최근 발표한 입장문에서 42년 전에 나온 쉼터보장권이 결코 현재의 난민 대거 유입이라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에도 적용되도록 고안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 난민의 유입으로 쉼터에 대한 수요가 유래없이 증가했는데, 이런 문제들은 40여년 전 '칼라한 대 캐리' 소송을 합의할 당시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봄 이후 지금까지 12만명의 난민들이 뉴욕시에 들어온 상황에서 차별없이 모든 노숙인들에게 쉼터를 제공해야 하는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존의 노숙자 보호정책을 한시적으로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지사도 노숙자쉼터권 보장이 "전세계인들 모두에게 쉼터를 제공하자는 것은 아니었다"면서 뉴욕시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다.

이번이 노숙자의 쉼터 권리를 제한하려고 하는 첫 소송은 아니다. 이미 전에도 몇차례 시도된 바 있는데 특히 부유층과 친기업 성향의 줄리아니 시장과 블룸버그 시장 재직 시절 뉴욕시는 관료적인 쉼터 규칙을 지키지 않는 노숙자들의 쉼터 입소를 제한하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 하지만 번번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숙자 지원단체들은 즉각 공동성명서를 내고 뉴욕시장의 노숙자권리 제한 시도를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혐오스럽고 불필요한 책략은 어느 누구도 우리 도시의 거리에서 살다가 죽는 일이 없도록 보장하려는 시의 약속을 배신하는 것"이라면서 노숙자쉼터권리를 제한하려는 뉴욕시를 비판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노숙인 지원단체인 홈리스연합(Coalition for the Homeless)의 대표는 "뉴욕시를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구별하는 것은 진정으로 도덕적 철학적 기반, 즉 누구도 거리에서 잠을 자도록 강등돼서는 안된다는 근본적인 믿음"이라면서 물론 그 정책을 수행하는 데 상당한 예산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그 비용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번 난민위기 이전에도 이미 뉴욕시가 의무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있었는데 난민문제를 핑계로 쉼터에 대한 권리를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한다는 비판도 있다. 1979년 당시 26세의 젊은 변호사로 소송을 주도했던 로버트 헤이스는 "권리는, 특히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권리는 정부가 그것을 지키는 것이 너무 어렵거나, 도와줄 사람들이 너무 많다거나, 너무 바쁘다고 선언할 때 사라진다"고 일갈하면서 시장과 주지사를 비판했다.

이들은 모두 노숙자쉼터권리를 없앤다고 난민들이 저절로 사라지거나 노숙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한다. 뉴욕과 같은 노숙인을 보호하는 법이 없는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같은 다른 도시의 경우 공원이나 시내 공공장소에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의 텐트촌이 세워지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노숙인들이 쉼터에 갈 수 없게 되면 다른 대도시들처럼 뉴욕시에서도 결국 거리에 노숙인들 텐트가 세워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즉 뉴욕시가 원하는 대로 노숙인들의 쉼터권리가 제한된다면 이는 노숙인들뿐 아니라 모든 뉴욕시민들 전체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다.

또한 시장과 주지사에게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안전한 쉼터를 제공할 뿐 아니라 노숙자들을 가능한 한 빨리 영구주택으로 이주시킬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노숙인 문제 해결이 근본적으로 임시 쉼터만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홈리스연합은 "노숙자 문제의 해답은 결국 주택이다. 쉼터는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그리고 우리는 임시 쉼터가 필요하지 않은 날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은 적절한 주택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과 어떻든 파급력은 뉴욕시 넘어설 것

뉴욕시의 노숙자권리를 제한하려는 시도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현재로는 미지수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그 파급력은 뉴욕시를 넘어 확산될 것은 확실하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뉴욕시에만 있는 이 진보적인 노숙인 정책이 과연 지속될 수 있을지 미 전역의 노숙자권리 옹호단체들이 지켜보고 있다.

뉴욕시의 주장대로 노숙자 쉼터권보장에 대한 유예가 받아들여진다면 미국 유일의 적극적인 노숙인 보호정책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반면 뉴욕시가 위기 속에서도 정책을 계속 고수해 나갈 수 있다면 이 정책의 장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면서 늘어나는 노숙인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다른 대도시 지역에서 비슷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에 더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은 분명하다.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