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형제복지원 국가 배상책임 첫 인정
법원 "국가 범죄는 시효없다"
26명에 146억원 배상
법원이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9부(한정석 부장판사)는 21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하 모씨 등 26명이 제기한 국가 손해배상 소송에서 청구 금액 203억원 가운데 70%가 넘는 145억8000만원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피해자 한 명당 최소 8000만원에서 최대 11억2000만원을 받게 됐다.
선고에 앞서 재판부는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돼 그 기간의 고통과 아주 어려운 시간을 보내신 원고분들께 위로 말씀을 먼저 드린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 당시 박정희 정부가 대대적인 부랑아 단속을 시행하면서 내무부 훈령을 바탕으로 운영된 전국 최대 규모 부랑인 수용시설이다. 1975~1987년 형제복지원에서는 납치된 일반인들을 불법감금·강제노역·성폭행·암매장 등 반인륜적 범죄 행위가 벌어졌으나 철저히 은폐됐다. 1987년 3월 22일 직원들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집단 탈출하면서 마침내 그 실체가 처음 드러났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결과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입소자는 총 3만8000여명에 달했다. 사망자 수는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여명 늘어난 657명으로 집계됐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8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에 의한 총체적 인권침해'라고 결정하자 국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이날 첫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훈령은 법률유보원칙,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원칙, 적법절차 원칙,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해 위헌·위법하다"면서 "원고들은 신체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당해 피고는 원고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국가가 주장하는 손해배상 소멸시효 완성에 대해선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해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과 인권 침해 사건에서 민법상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위자료 액수 산정 기준에 대해선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원고들 상당수가 미성년자였기에 학습권이 침해당한 점, 유사한 인권침해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억제·예방할 필요성이 큰 점, 불법 행위로부터 35년이나 지났지만 배상이 지연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날 법원 판결은 앞으로 진행될 다른 피해자들의 소송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는 다른 피해자들이 낸 소송 2건이 내년 1월 31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