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 141년 비사 | (17) 제일 오래된 서기관 장봉환의 관용여권 이야기

오늘날 여권과 별 차이없는 '집조(執照)'

2024-01-05 11:01:30 게재

한종수 한국 헤리티지연구소 학술이사

요즘에는 대한민국 여권으로 전세계 227개국 가운데 189개국을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다. 192개국인 싱가포르, 190개국인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여권 파워다. 오늘은 가장 오래된 여권 이야기다.

1893년 5월 1일자 시카고 만국박람회(The World's Columbian Exposition in Chicago) 개관식에 맞춰 3월 28일 출품대원 정경원(鄭敬源), 수원 박용규(朴鎔圭), 주사 최문현(崔文鉉), 통역 안기선(安琪善), 악공(樂工) 10명과 함께 주미조선공사관에 부임하는 참무관 이승수(李承壽), 서기관 장봉환(張鳳煥) 이현직(李顯稙) 일행은 조선을 출발, 요코하마(橫濱)에서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다.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4월 28일 시카고 유니온역(Chicago Union Station)에 도착해 미국 현지 실무 책임자인 서리공사 이채연과 개막식에 참여한다.

필자는 2013년 3월 문화재청이 매입한 주미조선(대한제국)공사관을 '주미대한제국공사관박물관'으로 개관 준비하던 중 서기관 장봉환 후손이 소장하던 집조(執照), 오늘날 여권을 실견한 바 있다. 1893년 3월 12일에 발급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관용여권'이다.

1893년 3월 발급된 장봉환 집조(관용여권)


1893년 3월 주미조선공사관 서기관으로 파견된 장봉환(1869~1929)은 1886년 개설한 최초 관립근대교육기관인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영어 및 서양 학문 등을 수학하고 1889년 의친왕궁에서 의친왕과 함께 공부했던 인물이다.

미국 워싱턴DC 재임시절의 서기관 장봉환

장봉환은 1893년 3월 주미조선공사관 서기관 발령 직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참가하는 정경원 일행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이후 박람회에 참가, 조선관의 전시물품을 클리블랜드 미 대통령에게 설명하고 주미조선공사관 서기관으로 소임을 다한 뒤 1894년 10월 귀국한다.

1897년 영선사장(營繕司長, 왕실관련 건물관리부서)을 맡은 후, 1900년 평리원(平理院) 검사(檢事)를 거쳐, 중추원 의관(議官), 육군 참령(參領) 등을 두루 역임한다. 1901년 대한제국 군악대 창설에 참여해 초대 군악대장을 역임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인 협률사(協律社) 창설을 주도하는 등 근대적 제도 마련에도 앞장섰다. 1905년 을사늑약 순국자 추도식을 주도했으며 이후 육군 부령, 헌병 부령 등으로 재직하며 의병봉기를 도모했고 의병 활동 가담자들을 풀어주는 등 의병활동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상단 왼쪽 사진은 1893년 주미조선공사관의 서기관으로 미국 부임을 위해 장봉환에게 발급된 집조(執照)다. 현재 의미로 공무를 위해 부임하는 관용여권이다. 오른편 세로에 '제31호'로 적혀 있어 31번째로 발급한 문서임을 알 수 있다.

조선 말기 최초로 발급된 1호 집조는 1887년 6월 흠차변리대신(欽差辨理大臣)으로 임명돼 일본에 간 민영준(閔泳駿)이 발급받았다. 1887년에 집조 제1호 발급이후 1893년 장봉환에게 제31번까지 발급됐으니 매년 5건 내외의 여권이 발급됐다고 볼 수 있다.

장봉환 집조의 발급일은 '대조선국개국오백이년정월이십사일(大朝鮮國開國五百二年正月二十四日)', 양력 1893년 3월 12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집조 중에서 가장 오래됐다. 30번째까지 발급된 집조는 기록만 남아 실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 후기에는 '여권(旅券, Passport)'이란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관청에서 일반적으로 발급되는 '증명서'를 뜻하는 '집조(執照)' 혹은 '빙표(憑標)' 등으로 불렸다. 발급은 독판교섭통상사무아문(현재 외무부)에서 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부터 '집조'를 공식적으로 '여행권(旅行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1887년 6월 처음 발급하기 시작한 집조 형식은 오늘날 여권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한문과 영문, 불문 3개 언어로 표기해 방문 국가와 방문자 발급일 발급자 발급호수 등을 추가로 적도록 했다.

장봉환의 집조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왕태자궁 부첨사(副詹事)이자 종2품인 윤헌의 집조(1895. 9. 17. 발급, 40.0×51.8㎝)와 모든 형식은 같지만 크기가 조금 다르다. 아마 장봉환 후손이 집조를 표구하는 과정에서 일부를 자른 것으로 추측된다.

장봉환의 집조에는 앞쪽 우측에 '집조 제 삼십일호(執照 第三十一號)'라 하여 발급번호가 있고 이어서 "'대조선흠차전권대신 서기관(大朝鮮欽差全權大臣 書記官)'으로 미국(美國)에 부임하는 장봉환(張鳳煥)에게 발급"한다고 적혀 있다. 집조는 공문서 형식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나는 길의 각 관리들은 혹 관섭(關涉)이 있으면 그 人員(장봉환)이 편하게 하여주시고, 막힘과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하여 주시고, 만약 절박한 일이나 중요한 경우에는 별도의 도움을 주고 보호를 해주시기 바랍니다.(望須 沿途各官 或有關涉 可任便廳 其人員 經過勿致阻碍 若係切要境遇 別幇助保護)"

집조 끝에는 '대조선국(大朝鮮國) 개국(開國) 502년(年) 정월(正月) 24일(日)'의 날짜와 '대조선국 대군주폐하 외무독판 조병직(大朝鮮國 大君主陛下 外務督辦 趙秉稷)'의 이름이 적혀 있다. 집조의 날짜와 발급대상자(장봉환), 부임지역(주미조선공사관) 등은 집조를 발급하면서 적어 넣은 것이고 나머지는 집조의 양식으로 본래 적혀 있던 것이다.

영문 상단에는 먼저 'Passport No 31'라는 집조번호가 적혀 있고 본문은 '독판교섭통상사무(The President of the Foreign Office of His Majesty the King of Korea)는 미국(United States)에 가는 장봉환(Chang Bong Whan)에게 발급하니 여정에 있는 관련 기관 혹은 개인들은 장봉환을 방해하지 말고 자유 방행하게 할 것이며 필요한 경우 도움을 주고 보호할 것을 명한다'고 적혀 있다. 끝으로 'Seoul, Korea, 12 March 1893'의 발급일자 및 장소, 'Seal of the President of the Foreign Office(독판교섭통상사무)의 서명 혹은 인장', 'Seal or signature of the Bearer' 즉 소지자가 서명을 하게 되어 있다. 한편 뒷쪽 하단의 불문으로 표기된 부분은 영문으로 표기된 부분과 동일한 양식으로 되어 있다.

장봉환은 1893년 주미조선공사관 서기관으로 미국 워싱턴에 부임해 서양 선진문물을 직접 접할 수 있었다. 이 집조는 생산연대와 사용처 등이 분명하고, 보존 상태도 매우 양호해 조선정부 주미공사관의 역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판단된다.

참고자료
1. 김도형, 〈한국 근대 여행권(집조) 제도의 성립과 추이〉, 《한국근현대사연구》(2016)
2.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자주외교와 한미우호의 상징, 주미대한제국공사관》(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