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탄소세 리베이트 선심성 논란

2024-01-08 11:25:30 게재

온실가스 저감 취지에도 정치색 따라 형평성 의문 제기

김용호 언론인, 캐나다 토론토 거주

과학작가 가이아 빈스는 최근 펴낸 책 '인류세, 엑소더스'에서 '기후난민' 문제를 다뤘다.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아시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에 해수면 상승이나 사막화 등으로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역이 생겨날 것이고, 이주야말로 인류가 기후위기를 극복할 거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후난민이 정착할 후보지로 그린란드 러시아 캐나다를 꼽았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고위도 지방에 농업이 가능해지며, 이들 지역은 북극항로 활성화로 무역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후변화로 몸살 앓는 북극

하지만 캐나다 역시 기후재앙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해 남한 면적의 80%, 약 2000만에이커(8만937㎢)를 잿더미로 만든 산불 때문에 3분기에만 경제성장률이 0.6% 하락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최근 CBC 방송은 누나부트 준주의 폰드 인렛(Pond Inlet)이라는 북극 인근 마을의 기후변화 실태를 전했다. 보통 이 지역은 11월 초에서 중순 사이에 빠르게 얼음이 얼어 7월 초까지 단단한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올해는 12월 초까지도 얼음이 단단하게 얼지 않았다. 북극 원주민들은 얼어붙은 호수 대신 육지로 이동하며 사냥을 하다 보니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해빙을 연구하는 앤드류 아렉(Andrew Arreak) 씨는 CBC와 인터뷰에서 "고정식 및 이동식 센서를 설치해 실시간 데이터로 얼음과 눈 상태를 측정하고 있는데, 매년 얼음이 조금씩 늦게 얼고, 좀 더 일찍 녹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처럼 얼음이 더디게 어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과 캐나다에는 몇년 전만 해도 지구온난화를 사기극이라고 매도하는 일각의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가속화하는 재난 때문에 이제 기후변화는 피치 못할 현실로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온난화에 따른 해결책을 찾고, 예상되는 피해에 대응하는 일에 좀처럼 합의된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보위협 요소로 등장한 기후변화

캐나다정보국(CSIS, Canadian Security Intelligence Service)은 최근 내부 보고서에서 기후변화 때문에 캐나다가 식량과 물 공급, 에너지 안보, 북극 주권 등 여러 측면에서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구온난화가 국가안보를 위협할 요소라는 지적이다.

캐나다통신에 따르면 CSIS는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는 국가 간 경쟁을 고조시키고, 불안정을 야기하며, 국제적 긴장을 조성하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CSIS는 기후변화라는 영역에 참여하는 범주를 넷으로 분류했는데 지도자(국가 단체 개인 모두 포함)와 스포일러(spoilers), 조력자(enablers), 무임승차자(free riders)다.

지도자들은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며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한 세계적인 노력을 이끈다. 스포일러는 리더의 노력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이익을 우선 보호하며 심지어 악의적인 활동도 서슴지 않는다. 조력자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리더(leaders)나 스포일러 또는 둘 모두의 노력을 지원하는 반면, 무임승차자는 기후변화에 맞선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활동 결과로부터 이익만 챙긴다.

CSIS는 "적대적인 행위자는 기후변화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특정 부문을 표적으로 삼아 캐나다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예측했다. 예를 들어 화석연료 쟁탈전 과정에서 세계 4위 산유국인 캐나다의 에너지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캐나다의 식량생산량이 날씨패턴의 변화로 불안정해질 수 있는데, 이때 일부 적대국에서 자체 식량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대량의 비료를 가로채려 시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CSIS는 특히 중국을 대표적인 '스포일러'로 지목했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파괴적인 규모로 전세계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기후변화 공동대응에 대한 국제적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국의 경제발전을 이유로 탄소에너지를 최우선시하고 있으며, 중국의 강력한 재생에너지 공급망이 캐나다와 동맹국의 탄소배출 저감노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CSIS는 또 캐나다 북부의 영구 동토층 해빙으로 이 지역에서 더 많은 해양여행이 가능해짐에 따라 다른 국가들도 캐나다의 북극 주권에 도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동시에 북극에서 새롭게 채굴이 가능해진 천연자원을 둘러싼 분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윌프레드로리어대학교의 톰 델리기아니스(글로벌 연구학과) 교수는 "기후변화가 미치는 직접적 위험은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면서 "작고 취약한 개발도상국과 비교한다면 캐나다에는 상대적으로 큰 위협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에너지 농업 신기술 등 각 분야별로 국제사회가 움직이며 상호작용하는 틀 안에서 볼 때 캐나다가 직면할 수 있는 위협 요소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를 찾아내 미리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자유당정부 향한 야당 보수당의 공세

캐나다 야당인 보수당의 피에르 폴리에브 대표는 "세금을 찍어내라(Axe the Tax)"라는 구호를 기치로 내걸고 지난해 하반기 내내 전국을 돌았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가 이끄는 자유당정부를 향해 탄소세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한 것이다.

연방정부는 '기후행동인센티브(Climate Action Incentive Payments)'라는 이름으로 탄소세를 환급한다. 탄소세 부과에 따른 주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준다며 분기별로 나눠 연간 500~600달러(50~60만원)가량을 가구소득에 따라 리베이트 형식으로 지급한다. 다만 리베이트 지급은 온타리오 앨버타 사스캐처원 노바스코샤, 매니토바 등 8개 주에만 해당된다. 캐나다에서 인구가 많고 경제력도 큰 BC주와 퀘벡 등은 주 자체로 탄소세 제도를 운영 중이어서 환급대상에서 빠졌다.

최근 각 주지사 회의에서 탄소세 환급이 도마에 올랐는데, "천연가스도 탄소세 면제 조치에 포함돼야 한다" "효과적이지 않은 탄소세를 없애야 한다" "모든 캐나다 국민들은 공정한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등 비판이 쏟아졌다.

탄소세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지난해 10월 트뤼도 총리가 가정용 난방유에 대한 탄소세 부과를 3년간 유예한다고 발표한 이후다. 야당인 보수당은 자유당 지지세가 비교적 강한 대서양 인근 주민들에게만 유리한 정책이라며 날을 세웠다.

평원지대가 많은 캐나다 중부는 보수당 색채가 뚜렷한 곳이다. 이 지역 농부들은 창고와 농산물저장고 등에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지만 이들은 등유나 경유 대신 주로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고, 더 나아가 북극권 근처에 사는 온타리오 원주민(Ontario First Nations)들은 탄소가격 책정이 부당하고 불균형적이며, 지역사회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연방정부를 대상으로 한 법적 소송을 검토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탄소세를 부과하는 취지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데 있다. 현재 캐나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을 기준으로 톤당 65달러의 세금을 매긴다. 2030년에는 톤당 170달러로 탄소세가 올라간다. 국민들이 져야 하는 부담이 거의 3배 가까이 늘어나는 것이다.

캐나다 연방의회 사무처는 탄소세 부과와 리베이트에 따른 영향을 분석했는데, 가구별 소득에 따라 손익이 확연히 달랐다. 온타리오 매니토바 사스캐처원 앨버타에 거주하는 고소득자 60%는 탄소세 시행으로 부담을 졌다. 반면 소득하위 40%는 납부하는 세금보다 리베이트가 더 많았다. 의회보고서는 탄소비용 증가 때문에 고용과 투자가 감소할 수 있다고 예측했으며, 또한 캐나다 지역별로 동일한 탄소세를 부과하는 데 의문을 나타내기도 했다. 각 주별로 산업구조나 기후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형평성 논란이다.

캐나다통계청도 탄소세 리베이트 관련 자료를 발표했는데 가구소득이 5만달러(약 5000만원) 미만인 가구의 94%는 지난해 납부한 탄소세금보다 더 많은 리베이트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탄소세 부과와 리베이트 환급 과정에서 월 20~40달러, 최저 소득층에서는 월 70달러 이상의 순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반면 연소득 25만달러(2억5000만원)를 넘는 고소득가구 중 부담했던 탄소세보다 20달러 정도 많은 리베이트를 환급 받는 비중은 절반에 그쳤다. 일부 고소득자들은 매달 100달러 이상 탄소세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탄소세 논란이 거세지면서 일각에서는 "미국은 탄소세 없이, 다시 말해 석유 및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제한 없이 기후변화 대응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캘거리대학교의 트레버 톰베 교수는 "탄소세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설령 동의하더라도 그것이 곧 기후변화 정책 모두를 없애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곤란하다"면서 "우리는 여전히 탄소배출 감소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기업이나 개인 모두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적어도 현 단계에서 탄소세는 가장 효율적인 온실가스 저감 대책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