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폭몰이' 수사받은 노동자 32% "죽음·자해 생각"

2024-01-12 10:58:34 게재

스트레스·우울·불안 악화

알코올 의존도도 심화

2022년 12월부터 시작된 정부의 '건폭몰이' 수사로 경찰·검찰에 출석한 경험이 있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심리적 스트레스와 우울·불안 등 정신건강이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3명 이상이 자살 또는 자해를 생각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11일 건설노조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노조탄압이 건설현장 노동안전보건에 끼치는 영향'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심리치유단체 '두리공감'는 건설노조의 의뢰로 지난해 5~8월 1·2차례에 걸쳐 수사기관 조사를 받은 건설노조 조합원 가운데 411명의 정신건강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 평균 연령은 52.23세로 노조경력은 평균 10.34년이고 남성이 98.5%였다. 수사기관에 출석한 횟수는 '1~2회'가 78.8%로 가장 많았다. 3~4회(13.9%), 5~7회(2.9%), 8회 이상(4.4%)으로 조사됐다.

분석결과 31.9%(131명)가 '최근 2주간 자살 또는 자해를 생각했다'고 응답했다. '2주 중 2~6일'은 19.2%, '2주 중 7~12일'은 7.5%이었고 '거의 매일'도 5.1%나 됐다.

응답자의 57.7%는 사회심리 스트레스 고위험군에 속했다. 사회심리 스트레스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크고 작은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는 상태인지, 전반적인 행복감을 느끼며 생활하는지를 점검하는 도구다.

이번 조사의 고위험군 비중은 과거 '노조파괴 사업장'(23.1%)이나 '비정규직을 해고한 사업장'(48.6%)을 대상으로 같은 조사를 했을 때보다 높은 수치다.

지난해 건설노동자 양회동씨가 분신 직후인 지난해 5월 실시한 1차 설문조사(295명)와 양씨 장례식 이후인 지난해 6~8월 실시한 2차 설문조사(116명)를 비교해보면 고위험군 비중은 1차(55.3%)보다 2차(63.8%)가 8.5%p 높았다.

장경희 두리공감 상임활동가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트레스 등이 낮아지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라며 "노조탄압이 계속됨에 따라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건강 지표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응답자의 46.7%가 '중간정도의 우울' 또는 '심한 우울'을 겪고 있었다. 67.4%는 불안을 호소했다. 수면시간과 질이 나빠졌고 알코올 의존도가 심화됐다. 알코올 섭취량이 '늘었다'고 답한 경우가 62.0%였다.

하지만 심리상담 또는 병원진료를 경험한 비율은 4.9%에 그쳤다. 72.7%가 '심리상담 또는 마음건강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장 상임활동가는 "조합원들이 호소하는 증상 대부분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과 매우 흡사하다"며 "긴급한 심리지원과 조직차원에서 조합원의 불안감을 경감하기 위한 안전조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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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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