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주노동자, 인신매매·강제노동 심각"

2024-01-15 11:43:45 게재

국가인권위·이주인권단체, 해남군 실태조사 … 건설업·어업·제조업 등 불법파견 임금착취도

농어촌 일손을 돕는 외국인 계절노동자에 대한 인신매매·강제노동·임금착취가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등 이주인권단체들은 1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절이주노동자들이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감독 소홀과 책임방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가인권위게 진정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외노협과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등 시민단체와 국가인권위는 4일부터 6일까지 전라남도 해남군(완도 일부) 지역에서 계절이주노동자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10일 국가인권위가 관련 시민단체와 함께 해당 지역 계절이주노동자 인권상황 모니터링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다.

2번에 걸쳐 조사팀은 25여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여권 등 신분증 압류가 브로커와 지자체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브로커의 임금착취, 고용주의 불법 파견으로 인한 피해가 만연함을 확인했다.

조사결과 계절노동자들은 1일 평균 12시간, 휴무없이 일하고도 월 평균 75만~95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이는 근로계약서에는 월 200만1000원 임에도 불구하고 브로커가 매월 1인당 3개월 동안 75만원을 자동이체해갔고, 고용주는 숙식비로 30만원(일부 25만원)을 공제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농업 노동자로 입국했지만 고용주의 요구에 따라 어업 제조업 건설업 등의 직종에서 일하기도 했고 일부는 해남지역을 벗어나서 일했다. 고용주는 계절노동자들을 인력시장에 내몰면서 급여의 절반 이상을 가져갔다. 인력시장에 나갈 때 지각하면 하루 일당을, 아파서 결근하면 3일치 급여를 공제해 노동을 강제했다.

또한 입국을 위해 가족과 마을 대표 등이 부동산을 담보로 잡혀야했고 그 총액은 계절노동자가 업체를 이탈할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주인권단체들은 "브로커와 고용주들은 계절노동자들을 돈을 뽑아 쓰는 ATM 기계 취급하듯 했고 인간이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고 있는 듯했다"면서 "하지만 관리감독을 책임져야 할 기초·광역 지자체와 법무부 등 공공기관은 수수방관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출입국법에 의하면 여권과 같은 신분증은 본인이 항상 보관해야 하며 타인이 보관해서는 안된다. 여권 등의 휴대 및 제시와 외국인등록증 등의 채무이행 확보수단 제공 등을 금지하고 있는 출입국관리법 제 27조·33조 위반이다.

이주인권단체들은 "해남지역 브로커는 계절노동자들의 여권을 압수한 후에 해남군청 계절노동자 담당자에게 전달했다"면서 "여권 압류가 군청의 지시였다면 공무원이 불법행위를 한 것이요, 브로커의 자발적 행위였다면 브로커와 공무원 사이에 긴밀한 유착관계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태조사팀은 "이런 현실이 해남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면서 "인터뷰 중 인근 지역 계절노동자들로부터도 구제 요청을 요구받고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계절노동자들은 국제협약이 정의하고 있는 인신매매 피해자들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강제노동 피해를 당하고 있었다"면서 "법무부가 폐지했다고 하지만 여전한 귀국보증금, 일상적인 여권압류, 부당공제와 임금착취, 이런 현실 때문에 계절노동자제도는 위헌 판결 받은 산업연수제보다 못하다"고 비판했다.

초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계절노동자 쿼터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부응해 정부는 농어촌 계절노동자제도를 계속 확대해왔다. 2015년 괴산 보은 2개 지자체 시범 사업으로 시작으로 2021년 7340명, 2022년 1만9718명, 2023년 4만647명, 2024년 131개 지자체에 4만9286명이 배정됐다.

이주인권단체들은 "지자체들은 실질적인 운영역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도덕 불감증과 책임감마저 의심스럽게 하는 관리감독으로 취약한 처지의 계절노동자들의 피해를 방기 혹은 자처하고 있고 정부 또한 다를 바 없다"면서 "계절노동자를 매년 대폭 확대하는 과정에서 법무부는 체류 관리를 목적으로 이탈율이 높은 국가를 제재하고 국내 지자체에는 쿼터를 줄이는 등의 불이익을 주지만 정작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과 농어민들의 겪는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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