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47개 혐의 모두 무죄

2024-01-26 20:48:25 게재

검 "곧 항소여부 결정" … 양 "당연한 귀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등 혐의에 대해 무죄 판단을 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당연한 귀결"이라며 "이렇게 명쾌하게 판단해 주신 재판부께 경의를 표한다"는 소회를 밝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1부(이종민 부장판사)는 26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이 2019년 2월 기소된지 1810일, 4년 11개월만에 1심 판단이 나온 것이다. 검찰의 구형량은 양 전 대법원장 징역 7년, 박 전 대법관 징역 5년, 고 전 대법관 징역 4년이었다.

이날 선고는 오후 2시부터 4시간 25분 동안 진행됐다. 오후 4시1 0분쯤이 되자 재판부가 10분간 휴정을 선언하기도 했다. 선고 도중 휴정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011년 9월부터 6년간 대법원장을 지내면서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2019년 2월 구속기소됐다.

검찰이 공소사실에 기재한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47개에 달한다. 죄명 기준으로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위작 및 행사,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이 공소장에 적시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역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 등을 위해 각종 재판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소송,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등 박근혜 정부의 '관심 재판'에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봤다. 또 파견 법관을 통해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와 동향을 수집하게 하고, 특정 판결에 비판적인 의견을 낸 판사들의 명단,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도 있다.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쟁점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성립 여부였다. 그간 재판부는 관련 사건에 대해 '직권 없이는 직권남용도 없다'는 법리로 무죄를 선고해왔다. 법원행정처 법관들이나 수석부장판사 등에게 일선 재판부의 판단에 개입할 권한이 없고, 각 재판부는 법리에 따라 합의를 거쳐 판단했을 뿐, 권리행사를 방해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날 재판부도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마다 "범죄 혐의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다"고 판시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하급자들의 직권남용죄 등 혐의가 일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지시?가담 등으로 공모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각 무죄"라고 말하자 방청석에서는 일부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 피고인 3명은 선고까지 무표정으로 일관하다가, 무죄 공시 안내문을 받자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이에 검찰은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1심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 "사법농단은 헌법이 보장한 개별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이고 조직적인 범죄였고, 그 최고 책임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었다"며 "1심 법원의 황당하고도 기나긴 무죄 선고로 이와 같은 위헌적인 범죄가 '관행'이었다는 피의자들의 궤변은 '합법'으로 둔갑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연 법과 양심에 기초한 판결인가"라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 무죄 선고는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판결의 최정점으로 사법 역사에 수치로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
서원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