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로 돌아온 이태원특별법 재협상 '난망'

2024-01-31 10:50:45 게재

민주당 홍익표 "재의결 부결 시, 22대 국회서 재추진"

유족들 "진상규명 요구를 가장 모욕적으로 묵살해"

윤석열 대통령이 10.29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해 재의요구를 하면서 공이 다시 국회로 넘어왔다. 정부는 여야 재협상을 요구했지만 양당 입장의 간극이 크다는 점에서 재협상 결렬, 법안 재의결 후 폐기 수순으로 갈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아 보인다.

31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재협상은 해봐야겠지만 합의가 쉽게 이뤄질까 싶다"며 회의적인 전망을 내놨다.

홍 원내대표가 재협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기존 협상 때 여당이 제시했던 안이 사실상 특조위를 무력화하는 안이었고, 이 경우 유족들도 야당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홍 원내대표는 "가장 문제가 된 것은 특조위 운영 구성과 관련해 여당이 자신들의 동의 없이는 위원장을 임명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며 "여야가 각각 (특조위 위원) 4인을 (추천하고), 의장이 추천한 1인은 상임위원 겸 위원장으로 하자는 안까지 갔는데 (중략) 여당 측에선 끝까지 여야 '합의'로 위원장을 임명하자고 고집했다"고 설명했다.

특별법상 설치되는 특조위의 위원장을 여야 합의로만 선임할 수 있다면 최악의 경우 위원장 선임이 되지 않아 특조위가 공전하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세월호 특조위 때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추천 몫의 특조위원들은 갑작스럽게 사퇴하거나 결근하는 방식으로 특조위 활동에 동참하지 않았다.

홍 원내대표는 "(여당과) 한 번 협상은 해보겠지만 기존의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면 사실상 재협상의 실질적인 진전이 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재의결 시 부결됐을 경우에는 22대 국회에서 특별법 재추진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재의결 시점은 2월 말 정도가 거론된다.

유족들의 반발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는 전날 거부권 행사 직후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과 정부 관료, 국민의힘 의원들은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결정으로 역사에 남을 죄를 지었다"고 비판했다. 이정민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유가족들이 오직 바라는 건 진상 규명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묵살했다"고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거부권 행사 후 정부는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보상책을 제시했는데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거부권 행사 이유로 밝힌 이유에 대해서도 의문점을 제기했다. 특히 정부가 특별법이 헌법가치를 훼손하고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특조위의 '동행명령'과 '압수수색 의뢰' 권한을 들었는데 이같은 권한은 과거에 출범한 조사위원회가 모두 갖고 있던 권한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동행명령권의 경우 바로 직전에 설치된 바 있는 사회적참사 특조위, 세월호 특조위는 물론 현재 활동중인 여수·순천 사건 관련 위원회도 갖고 있다. 특조위의 동행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도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처분은 할 수 없다.

압수수색 영장 의뢰권의 경우에도 특조위는 영당을 의뢰만 할 수 있을 뿐, 영장청구 의뢰를 검찰이 거절하면 그만이다. 혹시 검찰이 받아들여 영장을 청구하더라도 법원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윤복남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이태원참사대응TF 단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동행명령권이나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권은 세월호 특조위나 사회적참사조사위원회(사참위) 등 유사한 조사위원회에 모두 있었던 권한"이라며 "과거 조사위들이 활동하는 동안에도 위헌성이 문제가 된 적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태원특별법 거부권 여파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취임 21개월 만에 9개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신기록을 세운 데다 기존 거부권 행사 법안들과 이태원특별법 법안의 무게가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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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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