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농민 시위 EU까지 '불똥'

2024-02-01 00:00:00 게재

우크라산 수입제한 추진

휴경 의무 한시 면제도

트랙터를 동반한 프랑스 농민 시위가 갈수록 거세지면서 프랑스 정부와 유럽연합(EU)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시위대 일부가 전국 최대 규모 농산물 도매시장인 렁지스 입구에 다다르면서 시위대의 시장 접근과 봉쇄를 막기 위해 장갑차를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면서 EU에 대해서는 농민설득 방안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1월 31일(현지시간)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동부 지역에서 출발한 농민 트랙터 시위대 일부가 이날 오전 파리 남부 외곽에 있는 렁지스 시장 남쪽 입구에 도착했다.

이들은 입구 봉쇄를 시도하다 경찰에 제지당했고 15명이 체포됐다.

트랙터를 세워 두고 걸어서 렁지스 시장에 도착한 또 다른 시위대는 대형 유통업체 창고에 침입을 시도하다 79명이 체포됐다.

남부에서 올라온 트랙터 시위대는 렁지스 시장으로 연결되는 6번, 10번 고속도로에서 경찰차, 장갑차 등과 일정 거리를 두고 대치했지만 물리적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이날 방송에 나와 “(농민 시위대는) 파리에 들어가지 말고 렁지스와 공항도 막지 말라”면서 “이를 어기거나 경찰을 공격한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렁지스 시장을 봉쇄해 정부를 압박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시위대는 도로를 느리게 달려 차량 흐름을 정체시키는 이른바 ‘달팽이 작전’을 펼치면서 렁지스 시장과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렁지스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국제 농산물 시장으로 파리의 식량 허브 역할을 한다. 이곳이 막히면 유통업체, 식당 등의 재료 수급에 큰 차질이 생긴다. 시위대 접근 소식에 평소의 2~3배 물량을 미리 구입해 비축해 두는 식당 주인도 늘고 있다. 시장 뿐만 아니라 인근엔 오를리 국제공항도 있어 자칫 항공기 운항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농민들의 이번 시위는 값싼 외국산 농산물 수입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프랑스 농민들은 EU와 정부의 각종 규제를 따르면서 농작물을 재배하고 판매하지만 정작 시장에서는 낮은 관세로 들어오는 외국산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프랑스 정부는 EU의 농업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며 EU 측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마르크 페스노 농업부 장관은 “농부들이 EU의 공동농업정책(CAP)에 따라 지원받으려면 농경지의 4%를 휴경해야 하는데 이 비율을 3%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또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입에 대해서도 “곡물, 설탕, 가금류에 수입 쿼터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브뤼노 르메르 재정경제부 장관도 “EU와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간 자유무역협정(FTA)은 우리 농민에게 좋지 않다”며 “이 협정에 서명할 수도 없고, 서명해서도 안 된다”고 EU를 압박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1일 EU 특별정상회의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을 만나 메르코수르와의 FTA 반대 등 농민들 의사를 강하게 전달한다는 입장이다.

프랑스 만이 아니다. 독일, 벨기에, 폴란드, 루마니아 등 유럽 각국에서 농민 분노가 커지면서 EU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르가리티스 스히나스 EU 부집행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우크라이나·몰도바산 수입품 급증에 대비한 조치를 발표했다. EU 집행위는 또 ‘휴경지 4%’ 의무도 올 한해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 조치는 EU 전체 27개국의 최종 합의가 있어야 확정된다.

농민들은 EU 정상들을 압박하기 위해 정상회의장 주변에서 각국 농민들의 대규모 ‘트랙터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벨기에 농민단체인 FWA·FJA를 비롯해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농민단체들은 정상회의 당일 브뤼셀 EU 기관이 몰려있는 도심까지 트랙터 시위계획을 밝혔다. 실제로 전날 저녁부터 최소 60여대 트랙터가 브뤼셀 순환도로에 진입했다고 브뤼셀타임스는 전했다. 현지 경찰은 시민들에게 교통 혼잡에 대비해 대중교통을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재철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