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고발사주’ 판결 ‘윤석열 검찰’ 곤혹

2024-02-01 00:00:00 게재

‘양승태 무죄’ 무리한 검찰 수사 비판

‘손준성 유죄’ 정치검찰 도덕성 타격

‘윤석열 검찰’이 곤혹스런 상황에 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검찰의 정치개입을 사실상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어서다. ‘사법농단’ 사건의 최고위직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47개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으며, 지난 21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고발사주’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의 정치중립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법원이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고발 사주’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검사장)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 사건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옥곤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공직선거법 위반과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검사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다만 증거를 인멸할 염려나 도주할 우려가 없다며 법정에서 구속하지는 않았다.

법원이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에 있었던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으로 기소된 손 검사장(당시 대검 수사정보검책관)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검찰 내부에서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검찰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고발사주 의혹은 21대 총선을 앞둔 지난 2020년 4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던 손 검사장이 당시 미래통합당에게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황희석 전 열린민주당 최고위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당시 범여권 인사들에 대한 검찰 고발을 사주했다는 내용이다.

법원은 이날 손 검사장이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였던 국민의힘 김 웅 의원에게 고발장을 직접 전송했을 뿐 아니라 검찰이 고발장 작성에도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고발장의 작성·전달만으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객관적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법리적 이유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손 검사장이 고발장을 전달한 배경에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손 검사장은 당시 여권 정치인이나 언론인을 고발하며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거나 그 시도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질타했다.

법원은 검찰이 지난 총선을 앞두고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의 주요 내용을 사실상 인정해 파장이 예상된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26일 5년 가까이 진행된 ‘사법농단’ 의혹 사건 재판에서 ‘몸통’으로 알려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 검찰이 기소한 47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사법농단’ 의혹 사건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법원행정처를 앞세워 행정부·입법부에 로비를 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심지어 청와대와 ‘재판거래’까지 했다는 의혹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2018년 문재인정부의 적폐 청산 기조 아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를 대거 투입해 사법농단 수사를 진행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수사팀장을 맡았었다. 수사 전반 실무를 담당한 것은 당시 특수1부장이었던 신자용 대검찰청 차장검사다.

검찰은 수사 개시 한 달만인 2018년 7월 2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10월 27일 그를 구속했다.

같은 해 11월 1일 박병대 전 대법관을, 같은 달 23일에는 고영한 전 대법관을 각각 소환했고 이듬해 1월 11일에는 양 전 대법원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2주 뒤인 1월 24일에는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하기도 했다.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하지만 사법농단 관련자들이 줄줄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검찰은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실제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 1심 재판에서 재판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등 검찰이 기소한 47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역시 무죄로 판단했다. 박·고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시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법원이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 14명 가운데 1·2심이나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는 11명으로 늘어났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다소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해도 형사처벌까지 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검찰이 무리하게 짜맞추기식 수사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법원이 직권남용 혐의를 엄격하게 따져본 것 같다”며 “법원이 제식구 감싸기를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검찰이 너무 광범위하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한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