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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가격 인하 압박에 유통업체 ‘콧방귀’

2024-02-05 13:00:01 게재

캐나다 일부 품목 10% 넘는 가격 고공행진 … 연방정부 “대책 내놓으라” 연일 압박

캐나다 통계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식료품 비용은 4.7% 올라 전체 인플레이션 3.4%보다 큰폭으로 상승했다. 작년 하반기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둔화 조짐을 보였지만 12월 보고서는 이러한 추세를 거스르는 모습을 보였고, 특히 식료품 가격의 상승폭이 커지면서 논란이 됐다. 과일주스가 전년 동기 대비 17.5%, 전월인 11월 평균보다도 3.5%나 올랐다. 야채도 전년 대비 8.3%, 식용지방과 오일가격은 12.8%나 뛰었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가 이끄는 연방자유당정부는 이민자 폭증에 따른 주택난 심화에다 생활물가까지 치솟자 위기를 느꼈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작년 9월 캐나다의 주요 식료품 체인점 대표들을 오타와 연방의회로 불러 가격인하 대책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연방정부의 물가안정 노력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집권 자유당에 대한 지지율은 계속 떨어지고 정치권 안팎의 비판이 거세다.

트뤼도 총리는 지난해 9월 “대형 식료품 체인점들이 추수감사절까지 가격 안정화 계획을 공유해야 한다”며 “업계가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중과세를 비롯해 어떤 수단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또한 그는 “국민들이 식탁에 음식을 올리기 위해 애쓰는 동안 대형 식료품점이 기록적인 이익을 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수아 필리페 삼페인 산업부장관은 러블로(Loblaw) 메트로(Metro) 엠파이어(Empire) 월마트(Walmart) 코스트코(Costco) 등 캐나다의 5대 식료품체인 최고 경영진을 의회로 불러 면담한 뒤 “식품체인점들이 가격안정을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으며, 다음 달에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당정부는 식료품업계를 압박하는 동시에 법적 장치 마련에도 착수했다. 대형 체인점들이 가격을 올리기 위해 담합하지 않는지 감시하고, 그런 사례가 적발될 경우 취할 수 있는 강경한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공정거래법 개정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변호사 출신인 삼페인 장관은 “캐나다의 공정거래법을 검토하고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된 일을 살펴보면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식료품 분야의 가격담합 조사에 나섰지만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한 사례가 있다는 점에 불만을 드러냈다.

연방정부가 이런 조치에 나선 것은 작년 3월 공개된 연방의회 보고서 때문이다. 당시 의회는 “대형 식료품점들이 인플레이션으로 과도한 이익을 얻고 있다고 판단할 경우 정부는 초과 이익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6월, 주요 식료품 체인 3곳이 직원들에게 지급하던 시간당 2달러(약 2000원)의 추가 보너스를 취소했다. 이후 이들 업체의 최고경영자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밝혀져 거센 비판이 일었다.

결국 지난해 6월 공정위는 “캐나다의 식료품 사업은 경쟁이 충분하지 않으며, 몇몇 거대 기업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정부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대형 식료품점들이 소규모 경쟁자들의 시장진입을 방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식료품 체인점들의 반발

연방정부는 식료품 유통에 대한 공정한 경쟁을 유도한다는 명목으로 일종의 ‘행동 강령’을 만들어 대형 체인점이 먼저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5대 업체 가운데 2곳이 서명을 거부했다. 게다가 정부가 마감시한으로 설정했던 지난해 추수감사절까지 대형 식품체인점들은 명시적인 가격인하 대책을 내놓지도 않았다.

그러자 삼페인 장관은 “주요 식료품점이 이 규정에 서명하지 않을 경우 지방정부와 협력해 추가 옵션을 논의할 것”이라고 또 한번 압박에 나섰다. 덧붙여 연방정부는 캐나다 식품업계의 불합리한 담합을 막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해외 유통업체의 캐나다 진출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에 유통업계는 “식료품업체 행동강령이 가격을 낮추지 못하고 오히려 인상을 부추길 수 있다”며 반발했다. 오타와 의회에 출석했던 대형식품점 러블로(Loblaws)의 갈렌 웨스턴 대표는 “정부가 도입하려는 규정의 일부 조항은 대규모 다국적 제조업체에 너무 많은 협상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에 식료품가격 상승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월마트캐나다의 곤잘로 게바라 대표도 “현재로서는 이 규정을 준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면서 “관료주의의 부작용이 크고, 이는 유통업계의 비용부담을 늘려 필연적으로 소비자물가를 밀어 올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캐나다 비정부기관인 미래연구소(Center for Future Work)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식료품 업계는 약 60억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이는 코로나 이전과 비교할 때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보고서는 통계청 데이터를 인용해 식음료 소매업의 순이익이 2021년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총 수익의 3%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5년에서 2019년 사이 평균 마진의 2배 이상이다.

작년 캐나다의 식품물가는 한때 11% 안팎까지 치솟았다. 그럼에도 야당 의원들은 정부와 식료품점이 내놓은 가격안정 약속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보수당의 스캇 데치슨 의원은 “자유당이나 식품업계의 약속을 믿는 캐나다인이 얼마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야당인 신민당(NDP)의 알렉산드레 부레리스 의원은 “당장 식품업계의 막대한 이득에 대한 횡재세를 도입하라”면서 공정거래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즉각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존 맨리 전 자유당 부총리조차도 식료체인에 초점을 맞춰 식품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연방정부의 노력을 비판했다. 그는 블룸버그(BNN Bloomberg)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정말로 식품가격 안정에 뭔가 조치를 취하고 싶다면 공급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법 전문 법무법인인 코젠 오커너(Cozen O‘Connor)의 마이클 오스본 변호사는 식료품점의 전체 마진은 약 3.6% 수준이라는 통계를 인용하면서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려는 연방정부의 정책은 쓸모 없는 일이며, 인플레이션 압력을 해결하는 데 적합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공정거래법 자체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라면서 “인플레이션은 거시경제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반면, 공정거래법은 가격담합이나 경쟁적 합병 등을 다룬다”고 말했다. 가격담합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법 개정은 근본대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온타리오 구엘프대학의 식품경제학자 마이클 폰 매스오 교수는 “식품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노력이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기는 힘들 것”이라며 “가격 문제는 주로 공급과 유통 과정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식품점 유치가 해결책 될까

연방정부의 가격 안정화 압박이 효과를 내지 못하자 다급해진 삼페인 산업부장관은 최근 일간지 ‘토론토스타’와 인터뷰에서 “국내 식품유통업의 80%를 장악한 대기업에 맞설 수 있도록 전세계 식료품 대기업 경영진과 접촉했다”고 전했다. 아시아와 미국 호주 등에 진출한 독일 할인업체 알디(Aldi)와 타겟(Target) 등 구체적인 업체의 이름까지 흘러나왔다.

하지만 캐나다 진출 계획을 명시적으로 밝힌 식품체인은 아직 없다. 트레이더 조(Trader Joe’s) 관계자는 삼페인장관의 제안을 받아들였는지 묻는 질문에 “현재 미국 내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미국 체인점 웨그먼스(Wegmans) 측도 “우리는 항상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지만 임대 또는 구매 계약을 협상하지 않는 한 특정 지역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토론토대 로트먼 경영대학원의 데이비드 소버만 교수는 “만약 연방정부가 식료품 부문에 더 많은 경쟁을 유도하려는 계획을 실제로 추진한다면 아마도 국내 유통업체의 지분이나 자회사 일부를 매각하도록 강제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외국업체가 캐나다에 진출했을 때 필요한 부지 확보나 건축비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김용호 언론인 캐나다 토론토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