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김기춘·김관진 사면 논란

2024-02-07 00:00:00 게재

수사할 땐 언제고 … ‘보수층 끌어안기’ 해석

재상고포기 ‘사전교감’ 의혹 … “약속 없어”

설 명절을 앞두고 정부가 단행한 특별사면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등 박근혜·이명박정부 고위 공직자들이 포함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국민통합’을 사면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을 끌어안기 위한 정치적 사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 전 실장 등은 사면전 재상고 등을 포기해 ‘약속사면’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정부는 7일자로 중소기업인·소상공인, 청년, 운전업 종사자 등 서민생계형 형사범과 특별배려 수형자, 경제인, 전직 주요 공직자, 정치인 등 980명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고 6일 밝혔다. 특별사면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네 번째다.

사면된 전직 주요 공직자는 8명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나 예술가 등을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돼 징역 2년이 확정된 김 전 실장과 이명박정부 시절 국군 사이버사령부에서 ‘정치댓글’을 달도록 지시해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김 전 장관은 형 집행을 면제받고 복권됐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 민간인 불법 사찰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된 김대열·지영관 전 기무사 참모장도 잔형집행면제 및 복권 대상에 포함됐다.

댓글공작에 가담한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확정된 서천호 전 부산경찰청장, 노동조합 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김장겸·안광한 전 MBC 사장은 형 선고실효 및 복권 대상에 올랐다.

경제인으로는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구본상 LIG 회장 등 5명이 복권됐다. 이우현 전 자유한국당 의원, 김승희 전 미래통합당 의원, 심기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야 정치인 7명도 잔형집행면제 또는 복권됐다.

복권되면 유죄선고로 제한된 피선거권이 회복돼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전직 주요공직자를 기존 사면과의 균형 등을 고려해 추가 사면하고 여야 정치인, 언론인 등을 사면대상에 포함해 갈등을 일단락하고 국민통합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최고 실세로 통했던 김 전 실장과 이명박·박근혜정부 국방안보 분야를 이끌었던 김 전 장관 등 보수정부를 상징하는 인물이 사면되면서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 민심을 끌어안기 위한 사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김 전 실장의 문화계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이었고, 서울중앙지검이 김 전 장관의 댓글조작 사건 수사해 기소할 당시에는 서울중앙지검장을 맡았었다. 검찰에서 수사와 기소를 주도하고선 대통령이 되자 이들을 사면해주는 셈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특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사면한 바 있다.

최혜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본인이 수사와 기소를 주도하고 실형선고 6개월 만에 사면하다니 황당무계하다”며 “정치적 이득에 따라 언제든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있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법과 원칙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재랑 새로운선택 대변인도 “정부는 국민통합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특사라고 했지만 이들이야말로 정치 이념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범죄를 일으킨 자들”이라며 “법치도 상식도 도의도 없는 불의한 특별사면”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김 전 실장과 김 전 장관은 사면 전 재상고를 취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통령실과 사전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김 전 실장은 지난달 24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재)상고해서 다시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지난달 31일까지 재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김 전 장관 역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지난 1일 재상고를 취하해 형이 확정됐다. 형이 확정되지 않으면 사면받을 수 없는데 공교롭게 이들은 사면 발표를 5~6일 앞두고 재상고를 포기해 형을 확정지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정부와 사면·복권 대상자들 사이에 사전교감이나 소통이 존재했다면 이는 명백하게 헌법에 반하는 행위에 해당하고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 책임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법적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권순정 법무부 검찰국장은 “외부 위원들로 구성된 사면심사위의 심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면을 약속받고 재상고를 포기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며 “사전교감을 하거나 약속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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