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양승태·이재용’ 2차전 돌입

2024-02-13 13:00:02 게재

1심 통무죄 완패한 검찰 잇따라 항소

‘무리한 수사’ vs ‘봐주기 판결’ 논란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의 1차 법정싸움에서 완패한 뒤 지난 8일 잇따라 항소하면서 2차 법정싸움이 전개될 예정이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와 법원의 ‘봐주기 판결’이었다는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검찰이 2차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관심을 끈다.

1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이 나온 만큼 검찰은 이재용 회장 재판에선 승계 작업과 합병에 대한 법원 판단을 뒤집을 증거와 법리를 제시해야 하고,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선 ‘재판에 개입할 직권’ 존재 여부와 직무권한을 벗어난 직권남용 행위를 밝혀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이 회장의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 1심에서 배척한 증거들과 승계 작업에 대한 대법원 판례 해석 등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항소심에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심이 승계 작업을 위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다는 기소의 전제사실부터 받아들이지 않은 만큼 이에 대한 판단을 2심에서 다시 받아보겠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검찰과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 해석에서부터 시각 차이를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고 판단했다. 이는 삼성물산 주식매수가격 결정사건 등 다른 관련 사건에도 적용됐고, 검찰의 경영권 부당승계 의혹 수사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1심은 “승계만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서 합병 과정의 불법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승계 작업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인정됐지만 개별 현안인 합병에 대한 청탁까지 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법원의 이런 논리는 ‘봐주기 판결’이라는 비판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인 이동구 변호사는 지난 7일 1심 판결 이후 “무죄를 선고한 1심 법원도 결국 승계작업 존재 자체를 완전히 부인하진 않은 것”이라며 “하지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회장) 승계만을 위한 건 아니었으니 문제가 없다고 한 부분은 처음부터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그럼 승계작업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고 주장만 하면, 그와 관련된 모든 불법행위가 용인된다는 말이냐”며 1심 법원이 봐주기 판결을 했다고 비판했다.

검찰은 이런 1심 판단이 승계 작업에 대한 기존 법원 판단과 배치된다고 보고 2심에서 다투겠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의한 그룹 지배권 승계 목적과 경위, 회계 부정과 부정거래 행위에 대한 증거 판단, 사실인정 및 법리 판단에 관해 1심 판결과 견해차가 크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특히 “앞서 그룹 지배권 ‘승계 작업’을 인정한 법원 판결과도 배치되는 점이 다수 있어 사실인정 및 법령해석의 통일을 기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항소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주요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받는 과제도 안고 있다. 검찰은 지난 2019년 5월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바닥을 뜯어내고 숨겨진 회사 공용 서버와 직원들의 노트북 등을 확보해 증거로 삼았지만 1심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유지 과정에서 관련성을 설명했는데 배척됐다”며 증거 판단에 대한 공방을 예고했다.

이 회장과 마찬가지로 모든 혐의에 무죄 판단을 받은 양 전 대법원장 2심도 검찰로선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전망이다. 핵심 혐의인 직권남용죄가 인정되려면 대법원장에게 재판에 개입할 직무권한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성립돼야 하는데 1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은 탓이다.

검찰은 사법행정권을 보유한 대법원장 등에게는 재판에 관한 직권이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설령 법적 권한이 없더라도 실질적으로 직권을 남용했다면 처벌해야 한다는 ‘월권적 직권남용’에 대한 논리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법원은 ‘재판에 개입할 수 있는 직무권한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법리를 일관되게 유지해온 만큼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모 관계에 대한 판단도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1심에선 일부 실무자의 위법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이에 대한 양 전 대법원장의 공모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검찰은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직무감독, 인사 등에 대한 체계를 고려했을 때 공모 관계가 성립한다고 보고 2심에서 이에 대한 새로운 판단을 구할 계획이다.

일부 유죄를 선고받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항소심도 직권남용 혐의 관련 법리를 중심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1심에서 공판 갱신 절차 등을 통해 재판을 장기화한 것을 근거로 양형 판단도 다시 받겠다고 밝혔다.

이번 검찰의 항소를 놓고 일부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항소가 지나치게 기계적”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취임할 때 “무죄 사건에 대해 기계적 항소를 지양하겠다”며 무리한 항소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어서다.

1심 법원이 두 사건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하면서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비난 여론을 받은 검찰이 2차 법정싸움에서는 유죄 판단을 받아낼지 주목을 끈다.

김선일·구본홍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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