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지연 해소책’ 법원장 재판 확산

2024-02-19 13:00:19 게재

서울 이어 광주·부산 고·지법원장도 직접 재판

법관선발제도, 법관 증원 등 논의 필요성 확대

조희대 대법원장 “300명 증원 법률안 통과 절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장기 미제 사건 재판을 법원장에게 맡기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전국 법원장들의 직접 재판 참여가 확산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장과 서울중앙지방법원장에 이어 광주·부산 고등법원장과 지방법원장도 ‘재판지연 해소’를 위해 직접 재판을 진행한다. 재판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고육책인 법원장 재판과 함께 법관선발제도와 법관정원 증원 등 논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법조기자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부산고법은 전날 김흥준 부산고등법원장이 일부 재정신청 사건 재판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재정신청은 고소나 고발이 있는 특정 범죄 사건을 검사가 불기소처분했을 때 당사자가 고등법원에 문제를 제기해 재판받을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박형준 부산지법원장도 직접 재판을 맡는다. 부산지법은 이날 민사29단독 재판부를 신설해 박 원장이 재판을 담당한다고 밝혔다. 기존 민사소액 재판은 민사24~28단독이 진행했는데 재판부를 하나 신설한 것이다. 박 원장은 접수된 지 1년을 초과한 장기 미제 사건 중에 3000만원 이하의 소액 사건을 담당한다.

이에 앞서 윤 준(사법연수원 16기) 서울고법원장은 올해 민사60부 재판장을 맡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민사사건을 맡기로 했다. 또 김정중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올해 민사단독 재판부에서 장기미제 사건의 재판 업무를 담당하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에서 정한 자동차, 철도 등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및 채무부존재 확인 사건 등을 맡는다는 방침이다.

조 대법원장이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해 장기 미제 사건을 법원장에게 맡기겠다는 방침을 밝힘에 따라 광주고법과 지법에서도 법원장들이 민사재판을 직접 진행한다.

배기열 광주고법원장과 박병태 광주지법원장도 19일 법원 정기인사 시작일부터 재판장을 맡아 항고사건과 장기 미제 사건 등을 맡아 재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광주고법은 민사합의부를 기존 3개에서 민사4부와 민사5부 등 2개 늘린다. 민사5부는 배기열 광주고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아 항고사건을 처리해 기존 항고 사건을 병행한 재판부의 부담을 덜어준다. 민사4부는 기존 행정재판만 담당하던 고법 수석판사가 민사 재판을 추가로 담당한다.

광주지법은 박병태 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는 민사항소5부를 신설해 기존 항소 재판부가 오랫동안 보유한 장기 미제 사건 등을 일부 재배당해 담당하고, 신건 민사재판도 일정 비율 배당받는다.

다만 법원장들은 사법행정 업무도 병행해야 해 다른 재판부와 배당 비율은 상대적으로 적게 할 예정이다.

이런 일선 법원장들의 재판 참여는 조 대법원장이 밝힌 ‘재판지연 해소’를 위한 고육책 중 하나다. 앞서 조 대법원장은 후보자 당시 국회 청문회 때부터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미제사건을 각급 법원장에게 분담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달 법원행정처는 법원장이 재판 업무를 맡을 수 있도록 예규를 개정하기도 했다.

다만 법원장들은 사법행정 업무도 병행해야 해 사건 배당 비율은 다른 재판부보다 상대적으로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조 대법원장은 지난 15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재판 지연을 해결하려면 법관 증원이 절실하다며 올해 300명 이상 늘리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조 대법원장은 “장기적으로 재판 지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관 증원이 절실하다”며 “오래전부터 추진하고 있다. 국회 통과가 안 되고 있는데,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국회에는 판사 정원을 300여명 증원하는 내용의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 개정안이 상정된 상태다. 다만 검사 정원을 늘리려는 ‘검사정원법’과 맞물려 있는 탓에 야당의 거센 반대를 받고 있는 상태다.

법조일원화제도에 따라 경력법관 채용 시 임용조건을 조정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법조일원화제도는 법관을 일정한 경력의 변호사 자격자 중에서 선발하는 제도로, 2011년 법원조직법 개정으로 실시됐다.

처음에는 최소 법조경력 10년 이상 변호사자격자를 경력법관으로 선발하도록 했지만 이후 법안 개정을 거쳐 2024년까지는 5년 이상의 경력자를 선발하고, 2028년부터는 7년 이상 경력, 2029년부터는 10년 이상의 경력자를 선발하도록 했다.

조 대법원장은 “실제 우수한 법관 자원을 뽑는 데 많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며 “각 담당업무에 맞는 경력대로 법관을 뽑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를 들어 배석판사는 3년 이내, 단독법관은 7년, 합의부 재판장은 10년 등의 방식으로 입법할 수 있다”며 “다만 이런 문제는 행정처가 중심이 돼 일방적으로 할 수 없다. 국민, 언론 등을 상대로 공개적 설명하고 공론화된 상태에서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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