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시장 ‘종잡을 수가 없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기존방식으로 예측 어려워”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은 원자재시장의 새로운 ‘슈퍼사이클(장기적인 가격상승 추세)’에 대한 이야기로 들떴다. 일각에선 2000년대 초반에 시작돼 2007~09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지속됐던 원자재 가격 급등이 곧 반복될 것이라고 믿었다. 서구가 코로나19 봉쇄에서 벗어나면서 빠른 경제회복과 친환경에너지 전환이 맞물려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재연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랐다. 전기차 배터리에 필수적인 리튬과 니켈 가격은 2021~2022년 폭발적으로 상승했지만 그 이후에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니켈 가격은 2023년 초 대비 50%나 저렴해졌다. 리튬 가격은 같은 기간 80% 이상 하락했다. 식료품과 연료, 금속으로 구성된 블룸버그 원자재 지수는 2022년 중반 정점을 찍은 이후 29% 하락했다.
현재 석유수요 예측도 각국 정부의 석유소비 감축 계획에 대한 가정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하루 1억200만배럴(bpd)이었던 석유수요가 2028년 1억600만bpd로 약간 오른 뒤 그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서 수요정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산유국 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향후 5년 내 수요가 IEA 추산보다 2배 이상 빠르게 증가해 1억1000만bpd로 늘어난 후 최소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원자재시장은 경제사이클과 시추업체, 채굴업체의 생산능력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예측이 간단치 않다”며 “하지만 현재는 ‘악몽처럼(nightmarish)’ 극히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은 그같은 우려 외에도 배터리기술의 발전부터 정부 보조금 지급에 대한 의지까지 다양한 정치적, 기술적 불확실성에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그같은 요소들이 친환경 전환의 속도를 좌우한다.
대표적으로 전기차 시장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2023년 전세계적으로 1400만대의 전기차가 판매돼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하지만 얼마나 더 빠르게 성장할지는 불확실하다. 미국의 경우 신차든 중고든 전기차 재고소진 일수가 내연기관차량보다 많다.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인 폭스바겐은 2023년 전기차 매출 비중이 8~10%로, 전년 11%에서 감소했다고 밝혔다. 포드와 GM은 지난해 전기차 및 배터리 공장 건설을 연기했다. 전기차 성장세에 대한 불안감은 시장 선두주자인 테슬라의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테슬라의 올해 주가는 26% 하락했다.
배터리 원자재도 불확실하긴 마찬가지다. 새로운 나트륨이온배터리는 니켈이나 리튬이 필요하지 않다. 이 배터리가 기존 배터리를 대체하기 시작하면 니켈과 리튬 수요가 급감할 전망이다.
정치적 상황도 가변적이다. 경제선진국들은 에너지전환과 관련된 비용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지난해 9월 내연기관차량에 대한 판매금지 조치를 연기했다. 범유럽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은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내연기관차량의 전면금지에 반대하는 선언문 초안을 공개했다. 이런 상황이 일시적일지, 아니면 더 큰 변화의 시작일지 투자자들은 가늠해야 한다.
서구뿐 아니다. 중국은 지난 원자재 슈퍼사이클 동안 수백만채의 아파트와 수십만킬로미터의 도로, 기타 물리적 인프라를 건설하면서 원자재 수요를 폭등시켰다.
하지만 이제 중국의 경제성장세는 크게 둔화됐다. 중국정부는 부동산 거품을 빼기 위해 이 부문 투자를 줄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구리 가격은 지난 12개월 동안 9% 하락하는 데 그치며 놀라울 정도로 탄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태양열과 수력발전 등 중국의 에너지 자급자족 노력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원자재시장은 이같이 다양한 요인들로 가득하다. 기존의 방식으로 원자재시장을 읽기가 어려워졌다”며 “전기차에 대한 수요와 그 안에 담긴 기술, 탄소중립의 정치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원자재시장 미래에 대한 어떤 베팅도 추측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