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 20%·여론조사’ 논란 키운 민주당지도부…의원들 “모욕”

2024-02-23 13:00:03 게재

김영주 의원 탈당계도 안 냈는데 ‘전략지역구’ 지정

공관위 열지도 않고 박용진 재심 결과 ‘불가’ 통보

감정 다툼으로 번져 … 공관위·시스템 ‘원칙’만 강조

‘사퇴 불가’ 이재명 “동료평가 0점, 짐작할 수 있는 분”

더불어민주당의 ‘선출직 하위 20% 선정’ ‘정체불명 여론조사’ 논란 등 공천파동 사태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이재명 당대표의 당 운영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공천 파동 과정에서 ‘하위 20%’에 속한 의원들은 ‘모욕적’이라는 말을 쏟아내면서 반발하고 있고 당의 대응이 오히려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다.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이재명 대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2일 국회 당대표실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23일 민주당에 따르면 탈당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김영주 의원은 아직 탈당계를 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은 김영주 의원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갑 지역을 전략지역구로 못 박아 발표해 버렸다. 전략지역구라고 하더라도 김 의원의 출마 자체를 곧바로 박탈한 것은 아니지만 김 의원을 단독 후보로 지명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컷오프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 발표는 김 의원이 스스로 선출직 평가 ‘하위 20%’에 해당된다는 점을 공개하면서 탈당 의사를 밝힌 직후였다. 탈당하지도 않았는데 탈당한 것으로 간주해 전략지역구로 지정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재명 대표는 페이스북에 “제 개인이 주관적으로 점수를 드렸다면 (김영주) 부의장님은 분명 좋은 평가였을 것”이라면서도 “선출직 평가에서 사감이나 친소관계가 작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위로와 함께 김 의원의 반발에 “민주당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정당”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에 부작용만 낳았다. 이 의원은 “저를 조롱하는 말로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는 “민주당이 의정활동 하위 20%를 통보했다”며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김영주 의원이 자존심이 매우 강한데 자신을 뺀 여론조사를 돌리거나 전략지역구로 서둘러 지정하는 모습이 감정을 건드렸다고 볼 수 있다”며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당 지도부가 대응을 너무 거칠게 아마추어처럼 하고 있다”고 했다.

‘하위 10%’라고 공개한 의원 중 가장 억울할 것으로 평가받는 박용진 의원의 재심 결과를 공관위 회의 전에 전달한 것도 당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결론을 정해놓고 공천을 진행하고 있다는 의심마저 갖게 할 수 있다. 이재명 대표에게 쓴 소리를 내왔던 박 의원은 전날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오후 2시에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중앙당 공관위에서 논의도 되기 전에 재심신청의 결과가 나온 상황을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했다. “당 공천관리위 회의가 2시에 열리는 데 논의가 시작도 되지 않고 결정이 문자로 오는 것이 황당할 따름”이라며 “이것이 당의 절차냐.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재심 신청자에게 소명의 기회도 보장되어야 한다”며 “그런 소통은 전혀 없었다”고도 했다. 그는 ‘하위 10% 통보’ 사실을 알리면서도 “부당함과 불의”를 언급하며 “모욕적”이라고 했다.

현역의원들의 자존심을 가장 강하게 건드린 것은 ‘무더기 여론조사’였다. 당 공관위나 전략공관위 차원이 아닌 지도부에서 진행된 여론조사는 ‘친명’(친이재명) 인사들을 대거 집어넣은 채 ‘반명’ 또는 ‘비명’ 의원 지역구에서 주로 이뤄졌다. ‘하위 20%’로 분류됐다고 스스로 밝힌 6명 중 김영주 송갑석 의원 등의 지역구에는 현역 의원을 뺀 당 차원의 여론조사가 진행되면서 논란을 키웠다. 이외에도 친문계의 홍영표 의원, 86세대인 이인영 의원, 도덕성 논란의 노웅래 의원 지역구에서도 ‘정체불명 여론조사’가 돌았다.

여론조사 경위를 잘 아는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 주도로 이뤄진 여론조사인데 너무 많은 여론조사를 마구 돌리니까 현역의원 입장에서는 황당하기도 하고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민감한 여론조사가 돌면 지역에서는 금방 알려지고 이게 경쟁자에게 들어가 활용되기도 하고 본인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부분들을 제대로 모르거나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에 있는 모 의원 역시 “당에서 몇몇 지역의 민심을 알아보는 방식은 여론조사 외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면서 “또 여론조사는 일단 어느 정도 전략지역으로 가닥을 잡아놓은 후 해당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돌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번처럼 대규모로 여기저기 찔러보는 식으로 하는 것은 의원들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진화과정도 미숙했다는 평가다. ‘하위 20%’의 불공정‧불투명성과 ‘정체 불명 여론조사’에 대한 해명 과정에 ‘사과’는 없었고 해명 내용은 공격적으로 이뤄졌다. 지난 21일 의원총회에서 홍익표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반발에 “공관위 재심을 신청할 경우 공관위원장이 직접 어떻게 평가가 진행됐는지 설명하도록 요청하겠다”며 “당에서 진행한 여론조사는 사실관계 파악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밝히고, 문제 있는 여론조사 기관은 제외하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용진 의원 재심과정에서 공관위원장의 직접적인 설명은 없었다. 당 여론조사와 관련해서도 아직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공개되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는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 여론조사 관련 불만이 분출된 것에 대해 “일상적으로 해오던 정당 내 조사업무인데 과도하게 예민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 평가’에 대해서는 “5대 비리에 해당한다면 도덕성 평가 50점을 0점을 하게 돼 있다고 한다. 채용 비리가 문제 됐는데 소명하지 못하면 0점인 것”이라며 “동료 의원 평가에서 거의 0점을 맞은 분도 있다고 한다. 짐작할 수 있는 분일 것 같다”라고 했다. 여론조사나 선출직 평가엔 아무 문제가 없는데 과도하게 시끄럽다는 반응으로 읽힌다. 문희상 전 의장, 김부겸 전 총리, 정세균 전 총리 등 당 원로들의 불공정 공천 비판에 대해서도 “공관위에서 국민들, 원로들이 걱정하지 않으시도록 해주실 것”이라며 책임을 피해갔다.

수도권의 민주당 중진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사무적이 아니라 정무적으로 당을 운영할 필요가 있는데 여전히 성남시, 경기도에서 하던 대로 관료적으로 처리하는 것 같다”면서 “당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만나고 소통하고 이해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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