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 농민 시위대 유럽연합 강타

2024-02-27 13:00:00 게재

EU 농업 장관회의 맞춰 900여대 브뤼셀 도심 집결 … 불지르고 방어벽 돌진

2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농업 장관회의에 항의해 유럽농민단체연합(FUGEA) 소속 농민의 한 트랙터가 벨기에 진압 경찰관 앞에서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랙터를 동반한 유럽의 성난 농민들이 26일(현지시간) 오전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본부 문턱까지 진격했다.

시위대는 이달 초 EU 정상회의 이후 약 3주 만에 다시 집결했으며 이번에는 EU 농업 장관회의에 맞췄다. 재집결한 농민들은 농산물 수입, 소득 감소에 격렬하게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브뤼셀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브뤼셀 EU 지구 일대에 집결한 트랙터는 약 900대다. EU 지구에는 집행위, 이사회 등 EU 본부가 모여 있다.

900여대 트랙터는 당초 예상치인 300대를 훨씬 넘어서는 수치다.

전날 밤부터 이날 오전까지 벨기에, 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서 속속 도착한 트랙터가 브뤼셀 도심을 다시 점령했다.

영국 언론 가디언에 따르면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의 농민들이 벨기에 농민들과 합류해 높은 비용, 낮은 제품 가격, 저렴한 비EU 수입품 및 엄격한 EU 환경 규정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다.

경찰이 오전 6시께부터 EU 본부 주변 도로를 통제했지만 트랙터는 바리케이드를 뚫고 집행위 건물과 약 300m 정도 떨어진 슈만 광장 인근까지 진격했다.

시위대는 병과 계란을 던지고 폭죽을 터뜨리고 진압 경찰은 물대포를 발사했다고 경찰은 말했다.

길게 늘어선 트랙터들은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렸고, EU 본부 주변에 배치된 진압경찰을 향해 돌진을 시도하는 위험한 장면도 보였다. 일부 농민은 도로 한복판에 타이어 수십 개를 쌓아 올린 뒤 건초를 덮고 불을 질렀다.

시위대 트랙터에는 ‘EU-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자유무역협정(FTA)을 중단하라’, ‘수입 농산물은 공해’ 등 현수막이 내걸렸다.

농민 시위에 앞서 EU는 농민들의 휴경 의무를 한시적으로 면제하고, 우크라이나 농산물에 대한 관세 면제 혜택을 사실상 제한하기로 하는 등 긴급 대책을 내놨고, 농가 행정부담 완화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성난 농심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벨기에 남부 왈롱지방 농민연맹(FUGEA) 소속 티모시 페텔은 “집행위는 우리가 요청하지도 않은 환경규제 보류, 행정부담 완화 등을 제안했다”며 “이는 물론 농민들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공정한 농산물 가격을 설정하자는 우리 최우선 요구사항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날 EU 본부 인근에서 차량을 통제하고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운행 중단 명령을 내렸다. EU 건물도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다.

EU는 이날도 농민들 달래기에 급급했다. 27개국 농업 장관들은 회의에서 “농민들의 행정 부담의 완화를 우선순위에 두기로 합의했으며, EU 집행위에 더 장기적인 해법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고 EU는 전했다.

마르크 페노 프랑스 농업부 장관은 “실용적이고 운영적인 것이 필요하다”며 “현재 규정 내에서 조정의 여지가 있지만 일부 요구사항을 충족하려면 법률 변경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농무장관은 “농민들이 생물다양성과 환경적 조치를 선택한다면 EU는 농민들이 공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벨기에 농업부 장관 데이비드 클라린발은 “농민 불만이 분명히 경청되었지만 폭력 자제를 촉구했다”고 말했고, 아일랜드 농업부 장관 찰리 맥코날로그는 “관료주의를 줄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폭력 시위에 EU가 굴복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시위대 일부가 경찰과 충돌하면서 최소 3명의 경찰관이 다쳤기 때문이다.

야누시 보이치에호프스키 EU 농업 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부 폭력사태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보면 우리는 시위 이면에 있는 원인을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고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