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역대급 규제 해제, PF의 유혹

2024-02-29 13:00:01 게재

그린벨트·절대농지·군사보호구역 등 국토 전반의 규제가 역대급으로 풀린다. 보존가치가 떨어진 토지를 유용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건설시장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아직 예측하기 힘들다.

정부가 규제를 해제하기로 한 토지는 그린벨트 2429㎢, 농업진흥지역 2만1000㏊(210㎢), 군사보호구역 339㎢ 등이다. 여의도 면적 837배의 그린벨트와 117배의 군사보호구역이 해제되는 것이다. 여기에 절대농지로 묶인 자투리땅까지 포함하면 역사상 최대규모인 9억평의 규제가 풀린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풀린 땅이 어떻게 활용될지 의문이다. 정부는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배후주거·상업시설과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문화·체육시설 등을 공급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지방산업단지와 배후단지에서 미분양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산업단지 조성을 마친 곳 중 분양을 100% 채우지 못한 곳이 152곳(2023년 6월 말 기준)에 달한다. 특히 미분양 산업단지 152곳 가운데 141곳(약 93%)이 지방에 있다. 미분양 중 분양률이 70% 미만인 산업단지도 41곳으로 조사됐다. 주택용 단지도 비슷한 실정이다. 지방 미분양주택은 지난해 말 기준 6만2489호까지 늘었다.

이번에 해제된 땅 가운데 국·공유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지방공사 등 공공기관이 개발 가능한 땅으로 바꿔 민간사업자에 매각하는 절차를 밟는다. 사유지는 신탁을 통하거나 민간사업자가 땅을 사들여 산업단지나 주택, 배후상업시설 등을 지어 공급하면 비로소 개발절차가 마무리된다.

그런데 지금 민간개발사업자 돈줄은 말랐다. 이미 건설업계와 금융권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가 있다. 이런 마당에 적극적으로 개발에 나설 민간사업자는 없을뿐더러, 민간사업자에게 토지 대금을 빌려주겠다는 금융권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도 지방에서는 주택인·허가를 받은 후 착공에 들어가지 않았거나 착공 이후에도 분양에 나서지 않은 ‘그림자 미분양’으로 불리는 공급대기물량이 100만호나 된다. 이처럼 땅을 사놓고도 분양을 하지 못하는 곳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전국에 9억평을 개발용지로 공급한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정부의 규제 해제 발표 이후 지역별로 용적률 인센티브와 금융지원 등 각종 혜택 제공을 내세워 개발사업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개발에 들떠있는 사업자에게 이같은 인센티브는 무리하게 금융대출을 일으키도록 유혹한다. 연명치료 수준으로 버티는 건설시장이 한번 더 PF 사태를 일으켜 경제가 휘청인다면 이번에는 정부 책임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김성배 산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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