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러스 녹취 유출’ 논란 일파만파

2024-03-04 13:00:01 게재

독일 국방장관 “푸틴의 정보전 일부” … 러시아 “답을 회피하면 유죄인정”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이 3일 베를린에서 ‘타우러스 지원 녹음 유출 파문’에 대해 언론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dpa=연합뉴스
독일군 고위 간부들이 장거리 순항미사일 타우러스를 사용해 크림대교를 폭파하려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유출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에 대해 독일은 처음에는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있다가 하루 만에 대화 내용이 도청당했다고 확인했다. 그런 다음에는 곧바로 푸틴이 진행 중인 정보전의 일부라고 비난의 화살을 러시아로 돌렸다.

AFP 등 외신에 따르면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이 3일(현지시간) 타우러스 녹취 파문과 관련 “푸틴이 진행 중인 정보전쟁의 일부”라고 비난했다. 이어 “이것은 하이브리드 허위정보 공격이다. 분열에 관한 것이고, 우리의 단결을 훼손하는 것이다”면서 “우리는 푸틴의 계략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독일 당국은 러시아 국영 언론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치명적인 지원을 논의하는 고위 군 관리들 간의 녹음된 전화 통화를 유출할 가능성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그동안 독일 정부는 타우러스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지원 요청에 대해 확전을 우려한다며 선을 그어왔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지난달 26일에도 “전쟁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며 타우러스 지원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고, 사흘 뒤에는 “잘못 설정될 경우 모스크바 어느 곳이든 도달할 수 있다”고 거듭 경고했다.

그런데 이번 녹취록에는 군 간부들이 구체적인 활용방안을 논의하는 것처럼 들리는 대목들이 많다. 우크라이나에 대해 지원은 하되 직접 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들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크림대교는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와 동쪽 러시아 본토를 잇는 다리로 전쟁 발발 이후 보급로를 끊으려는 우크라이나군의 핵심 표적이 됐다. 이번 녹취록 파문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회원국 사이에 분열 가능성도 제기된다. 피스토리우스 장관도 이를 의식한 듯 “군 기밀이 추가로 유출된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면서 “현재 진행 중인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녹취록을 근거로 러시아는 정치 공세를 펼치고 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녹취가 공개된 뒤 “독일에 설명을 요구한다”며 “질문에 답을 회피하려는 것은 유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텔레그램에서 “우리의 오랜 라이벌 독일이 다시 원수로 변했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한편 러시아 미디어 그룹 로시야 시보드냐와 국영 방송사 RT의 편집장인 마르가리타 시모냔은 앞서 지난 1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독일군 고위 장교 4명이 어떻게 크림대교를 폭파할지 논의하는 내용이라고 주장하며 녹취를 공개했다.

38분 분량의 녹취에는 잉고 게르하르츠 독일연방 공군 참모총장과 작전·훈련 참모인 프랑크 그래페 준장, 또 다른 장교 2명이 지난달 19일 암호화되지 않은 화상회의 플랫폼 웹엑스에서 나눈 대화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녹취에서 이들은 “크림대교는 매우 좁은 목표물이어서 타격하기 어렵지만 타우러스를 이용하면 가능하다”, “프랑스 다소의 라팔 전투기를 사용하면 타우러스로 크림대교를 공격할 수 있다” 등의 대화를 나눴다. 타우러스 미사일의 기술적 운용과 함께 “미사일이 어린이집에 떨어져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언급도 있다. 타우러스 배치를 전제로 했다기보다 혹시 있을지 모를 정부 결정에 대비해 필요한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며, 정치권이 타우러스 지원에 회의적이라는 언급도 등장한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5월 대반격을 앞두고 독일에 사거리가 500㎞에 달하는 타우러스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야권은 물론 연립정부 내 찬성 의견에도 불구하고 확전 우려를 이유로 1년 가까이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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