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인가 ⑨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소장

“국회, 생초짜 훈련장 아냐 … 전문가 내놓을 책임은 정당에”

2024-03-04 13:00:25 게재

청년, 당직·기초의회 거치며 민주주의·국가재정 등 훈련 절실

“의사는 환자, 교수는 학생, 정치인은 5000만 국민의 삶 책임”

양극화 탓에 민주주의 추락 … 정치가 ‘새로운 의제’ 따라잡아야

‘물갈이’도 좋지만 세금으로 키운 유권자에게 이유 공개해야

오랫동안 ‘청년 정치’를 강조해온 서복경(54) 더가능연구소 대표가 거대양당뿐만 아니라 소수정당에서도 선거 때마다 유행처럼 끌고 오는 ‘인재 영입’에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 서 대표는 훈련되지 않은 ‘생초짜’를 내리 꽂는 정당의 무책임과 ‘정치 한 번 해 볼까’하며 찾아다니는 비정치인들의 행태들을 유권자 무시 행위로 봤다. 세금을 들여가며 국회를 초짜의 정치 훈련소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3선 이상 출마 불가’나 ‘운동권 퇴진’ 등 ‘물갈이론’에 대해서는 원인과 증상의 인과관계에 대한 진단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청년들도 자신의 실력과 능력이 아닌 ‘넘겨받는 방식’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결국 유권자의 피해로 돌아간다고 봤다.

그러면서 각 정당이 정체성을 명확히 하면서 자기 정책을 내놓고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수정당일수록 의제설정에 중심을 둬야 한다고 했다. 특히 정의당 등 진보진영이 시대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변화에 실패했고 이는 결국 정체성 부재로 이어졌다고 봤다.

또 현재 우리나라가 맞고 있는 수많은 위기와 문제를 제시하면서 결국 우리나라 정치권이 뒤쳐진 의제 따라가기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서 대표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26일 내일신문 본사에서 이뤄졌다.

사진 이의종

■정치 양극화가 심각하다. 원인은 무엇인가.

글로벌한 맥락에서는 유튜브 트윗 등 매체 환경이 사회 집단들의 양극화를 굉장히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 위에 2000년대 후반 이후 사회 변화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에 점령하라 운동, 유럽의 채무위기로 이어졌다. 이후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세계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경고가 나오면서 기후위기 대응이 글로벌한 제 1 의제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서 변화에 적응하는 블록과 못하는 블록이 생기면서 양극화가 더 벌어졌다. 세계가 각자도생하고 있는 와중에 코로나가 터졌다. 백신 양극화로 번졌다. 이제는 AI 쇼크까지 왔다. AI 기술에 적응하는 나라와 못하는 나라가 생길 게 뻔하다.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상황 진단을 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자원을 어디에 배분할 것인지, 지금 어디서부터 해야 되는지 등을 정하는 게 정치다. 이 쇼크와 변화가 만들어낸 속도를 어느 나라 정치권이건 못 쫓아가고 있다. 이럴 때 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려면 정치 세력들이 각자 시대 진단을 통해 해법을 내놓고 이 해법을 사회적인 공론화나 논쟁을 통해서 합의를 만들어내고 그 합의에 따라서 법을 만들고 법에 따라 정책을 만들고 국가 재정을 배분해야 된다. 하지만 합의를 만들어내기도 전에 잇달아 쇼크가 쌓이면서 미디어 환경 변화가 사회를 양극화 시키고 정치의 양극화로 결착되는 악순환에 들어가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짧은 민주주의 역사’까지 더해졌다. 민주주의가 사회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치가 사회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의미는 사회적으로 중대한 경제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가 정치 의제로 들어온다는 것을 뜻한다.

■공약들이 비슷비슷한 것도 이러한 이유인가.

전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하지만 그 얘기는 ‘우리 당은 정책의 정체성이 없어요’라는 의미다. 한 발 더 들어가면 ‘우리당은 누구를 대표해야 될지 몰라요’다.

민주당이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걸 표방한다면 중산층과 서민의 어젠다가 가시화돼 있어야 한다. 문재인정부의 경우에도 민주당의 정체성에 기반해서 무엇을 했냐에 답해야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든 노란봉투법이든 중산층과 서민 또는 노동자 농민 등 당의 정체성을 표방했던 영역에서 모두 미뤘다. 대신 붙들고 있었던 게 검찰 입법이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놓고 보면 검찰 문제는 정부 조직의 구성과 운영에 관련된 문제다. 먹고사는 문제, 생계의 문제를 대변하는 것은 우선순위에서 떨어져 있었던 거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쩌겠다는 거냐’고 묻는 것이다.

■민주당이 정체성에서 다소 혼란스러운 것 같다.

민주당은 중도화나 보수화의 문제보다는 ‘집권하면 뭐 하겠다는 것’인지 정체성이 모호하다. 가장 답답한 부분이다. DJ정부는 중산층 서민의 정당이라는 방향이 있었고 노무현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을 얘기했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부터 모호해졌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정체성이 없는 정당들의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정당이 어렵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나.

우리나라의 제도적 조건이 작은 정당의 생존을 굉장히 어렵게 한다. 사회적 기반을 갖기에도 정당법이나 선거법의 비민주적인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패를 결정하는 건 주체의 능력이다. 주체가 제도적 또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결국은 전략적인 실패를 거듭했고 그 결과라고 봐야한다.

■어떤 전략적 실패인가

정의당이 ‘이중대 논란’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된 근본 원인은 시대 변화에 맞는 자기 정체성 갱신에 실패해 어느 순간부터 내놓을 게 없어진 때문이다. 이 편이냐 저 편이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이 편도 아니고 저 편도 아니고 우리의 것은 이것’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반복해서 얘기를 했어야 했다. 정체성이 있어야 정책적인 비전이나 지향도 나오고 그 정책이나 비전을 담은 새로운 후보자 그룹을 발굴하고 정당 리더십도 교체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청년 정치 현주소를 짚어 달라.

지금까지 청년 정치가 필요하다고 목 놓아 외쳤던 사람 중 한 명으로 ‘미래 세대 정치인을 키워야 한다’가 포인트라고 말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각 정당이 미래세대 정치인을 당원으로 받아들이고 당직자로 발탁하고 지방선거에서부터 훈련을 시켜서 중앙 정치를 담당할 수 있도록 차세대 정치인 그룹을 찾아 훈련을 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아무 훈련이 안 된 비정치인을 그냥 후보로 내리 꽂으라고 얘기한 게 아니다. 정치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봤으니까 정치나 한번 해볼까’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의사는 찾아온 환자한테만 책임지면 되고 교수는 자기 수강 신청한 학생한테만 책임지면 되지만 정치인은 5000만명에 대해서 책임져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책임 범위가 넓은 직업이다. 당연히 훈련돼야 된다. 청년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당에서 정당의 당직 활동을 통한 훈련이 돼 있어야 된다. 지방선거 나와야한다. 적어도 국회의원 선거 나오기 전에 지방선거 경험은 해봐야 한다. 대한민국 민주 시스템이 어떻게 구성이 돼 있는지 국가 재정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볼 줄 아는 사람이 5000만명의 생계와 생활을 책임지는 정치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정치에 생초짜인 기업인, 변호사, 의사 이런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 정치나 해볼까’해서 나오면 안 된다. 세금으로 초짜 정치인을 훈련시킬 수는 없지 않나. (정치에) 전문적인 사람이 와도 내 생활과 생계가 안정적일지 모르겠는데 생초짜들로 국회를 구성해서 어쩌자는 말인가. 국민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행정부와 입법부에 능력 있는 훈련된 전문가들을 선택지로 내놓아야 될 책임은 정당들에 있다.

그런 청년 정치인들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정당이 키울 생각은 안 하고 비정치인을 데려다 내리 꽂아놓고서는 ‘이들이 이럴 줄 몰랐다’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 청년 정치인들을 그렇게 소비한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정당의 당대 리더십은 욕을 먹어도 싸다.

■정당에 청년양성 프로그램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청년 정치인 공천 비율이 조금 늘었고 당선자 비율도 조금 늘었다. 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 청년 정치를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각 정당에서 지역위원회 활동하고 당직 활동도 하고 지방선거에 도전하면서 성장한 정치인들이 제법 많이 있다. 이 사람들 중에서 골라야 한다.

■초선 교체 비율이 50%에 달한다. ‘물갈이’를 혁신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3선 이상 물갈이’ 얘기를 하는데 말도 안 되는 프레임이다. 기본적으로 재선 이상 국회의원은 국민이 세금 들여 키운 거다. 당이 키운 게 아니다. 그 사람들 월급을 세금으로 줬다. 의정활동 제대로 안 한 사람은 쳐 내야 한다. 다만 세금으로 키운 사람들인 만큼 그 사람들을 자르는 과정은 유권자들이 투명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 컷오프 됐으면 왜 컷오프 됐는지, 경선을 해서 떨어졌으면 왜 떨어졌는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그 사람들에 대한 궁극적인 권한자는 유권자다. 국회의원은 당직자가 아니다.

■운동권 청산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프레임을 나이나 과거의 행적 같은 것으로 하는 것은 ‘3선 이상 물갈이’보다 더 나쁘다. 이빨이 썩어 진단을 해봤더니 단 사탕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하면 의사가 ‘앞으로 사탕을 끊으세요’라고 처방한다. 그런데 운동권 청산론은 아무런 전제가 없고 진단도 없다. 그러고는 그냥 ‘사탕 끊으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운동권이 만들어낸 병증이 있어야 한다.

■너무 많이 해먹었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누가 하든 간에 능력 있는 사람이 해서 최대한 나한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게 중요하다. 다만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성별, 연령별, 자산 그룹별, 직업별로 다양하게 만드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용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건 경쟁에서 따내야 되는 거다. 청년 정치도 마찬가지다. 청년 정치인 그룹들이 60년대생이나 70년대생과 대결해서 그들을 넘어설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야 된다.

■한국 정치, 앞으로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준비해 가야 하나.

빨리 의제를 전환해야 된다. 우리 정치의 시계가 적어도 한 10년 정도 뒤쳐져 있다. 기후, 에너지 전환, 산업 전환, 인구 감소 시대에 대응할 사회보장 인프라 구축, AI가 가져올 일자리 변동과 먹고 살 거리 문제 등에 각 당이 입장을 내놔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갖고 경쟁해야 한다.

서 대표는 서강대 현재정치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을 맡기도 했다. 청년 정치와 함께 기후위기 등 미래 의제에 대한 정치의 역할을 강조해왔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박준규 기자 기사 더보기